동물들의 다양한 처지를 엿보다

 돼지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그것도 실사로 만든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돼지 같지 않은 돼지를 가지고 만든 ‘옥자’가 미적지근하게나마 흥행한 것도 돼지가 아니라 커다란 하마 같은 가상의 가축으로 만들어서 일 것이다. 사람들에게 돼지, 닭, 염소 같은 동물들은 그저 가축의 이미지로만 너무 오랫동안 고착화되어 있어 그들이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나 미래에도 개나 고양이 같은 인기 연기자나 반려동물 반열에 오르기는 좀처럼 쉬울 것 같진 않다. 물론 전혀 희망이 없다는 건 아니다. 그리고 돼지의 경우는 좀 그럴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기도 한다. 며칠 전 산책을 나갔더니 돼지를 반려동물처럼 데리고 다니는 커플을 보았고 난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반려동물로서 돼지를 찾아보니 세계적으로 꽤 인기 있는 반려동물에 속해 있었다. 돼지가 가능하다면 염소나 닭, 거위나 소들도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을 해본다. 그들 중 단 몇 마리라도 지위가 상승된다면 가축들의 복지수준도 덩달아 올라갈 것이다. 그들의 복지향상은 인류의 복지와 지구 전체 환경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바로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더 주목하게 만든다.
 
▲동물농장에 들어간 천애고아 꼬마돼지
 
 ‘꼬마돼지 베이브’(1995년, 호주. 미국, 크리스 누난 감독)는 일단 그의 출산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시다시피 돼지는 다산동물이다. 그래서 젖꼭지가 좌우해서 12~16개 가량이나 된다. 즉 최대 이 정도 규모의 새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쌍둥이를 가진 베이브가 맨 처음에 본 풍경은 출산하고 젖을 물린 지 2~3일 만에 엄마가 도축장으로 실려 가는 끔직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나서 베이브는 인공포유로 자라나게 되고 어느 날 시장의 경품으로 팔려 나가 한 농부(하겐)의 집으로까지 우연히 흘러들어가게 된다. 하겐의 주업은 양 목축업이지만 어느 시골집에서나 그렇듯 그의 집에는 계란과 고기를 얻기 위한 닭 여러 마리, 우유를 위한 젖소 한 마리, 수레를 끌기 위한 말 한 마리 그리고 역시 고기용의 오리들 같은 다양한 가축을 비롯해 목축을 위한 암수 양몰이 개 두 마리, 그리고 아무 일도 안하면서도 평생 목숨을 보장받고 사랑까지 듬뿍 받는 얄미운 고양이 한 마리… 이렇게 작은 규모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삶들을 누리고 있는 동물농장에 베이브가 떨어진 것이다.

 천애고아 신세인 베이브는 암컷 양몰이 개 ‘플라이’의 보살핌으로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며 지낸다. 베이브는 차츰 농장생활에 적응하고 플라이 같은 말이 통하는 동물들과는 친구가 되지만 여전히 말을 걸어도 대답 없는 고양이나 닭들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 어느 날 집에서 탈출을 시도한 오리를 쫓아 집 근처 양 방목장까지 가게 됐는데 거기서 ‘마’라는 양을 사귀게 된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양떼들 사이에 들개들이 들어온 걸 베이브가 용감히 싸워 물리치지만 결국 마는 희생양이 되고 만다. 하겐은 베이브의 소행으로 오해하고 베이브를 죽이려 하지만 동네에 들개가 돌아다닌다는 아내 말을 듣고 베이브의 누명도 풀고 양몰이로서 베이브의 특별한 재능을 눈여겨보게 되어 양몰이 시합에 베이브를 출전시킬 야심찬 계획을 세우게 된다.

 훈련을 시키던 중 베이브가 심한 감기에 걸려 앓아눕자 하겐은 그가 낫기를 바라면서 마치 친자식처럼 가축인 그를 위해 노래하고 춤을 춰준다. 완고한 농부에게선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한 특이한 일이었다. 이 영화의 배경은 넓고 푸른 초원과 그림 같은 집이 있는 마치 스위스의 농촌 풍경 같은 곳이다. 그런 곳에서 늘 일과 가족 밖에 모르고 사는 나이든 농부들의 고리타분한 성격은 잘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베이브를 통해 하겐의 딱딱한 성격도 차츰 누그러지게 되고 가축에 대한 생각의 지평도 넓어진다. 그리고 드디어 양몰이 시합이 있던 날 시합용의 낯선 양들은 돼지인 베이브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
 
▲과장·인위적 아닌 진실함의 힘
 
 위기에 빠진 베이브와 하겐에게 숫 양몰이개 렉스가 자신이 지배자처럼 굴던 양들에게 낮은 포복 자세로 다가가 양들을 다루는 비법을 묻자 진심이 통한 양들은 마법의 주문을 그에게 가르쳐준다. 렉스가 베이브에게 돌아가 그 주문을 알려주고 베이브는 꿈쩍도 하지 않는 양들에게 마법의 주문 “바램유!”(양이여 네 동족의 털과 일족에 진실하라!)을 외치자 시합장 양들은 억지로 몰지 않아도 순순히 그의 말을 따르기 시작하고 마침내 모든 양들을 가장 빠른 시간에 정해진 코스를 질서정연하게 돌아 목적지 우리까지 제 스스로 쏙 들어간다. 이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고 베이브와 하겐을 조롱하던 관중들에게 마침내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100점 만점으로 대회의 우승자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영화는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1편의 인기에 힘입어 2년 뒤에 2편이 만들어졌지만 크게 흥행은 못하고 말았다.

 이 영화의 최대 재미는 과장됨이나 인위적이 아닌 바로 진실함에 있는 것 같다. 농부들의 무뚝뚝함과 동물을 좋아하지만 때가 되면 토사구팽(토끼를 잡으면 사냥개까지 잡아먹는다는 사자성어)하는 모습들도 잘 그리고 있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처럼 그런 사람에 대한 비평은 접어두고 동물들끼리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고 오리처럼 자명종 역할이라도 하여 도축을 모면해 보려는 갖은 노력들도 꽤 눈물겹게 다가온다. 인간에 의해 은근히 나누어진 한 집안의 동물 종 간에도 차별이 있는 건 엄연한 현실이다. 성탄절이 칠면조를 비롯한 몇 몇 가축들에겐 ‘학살의 축제’라는 말, 우리의 명절 역시도 수많은 소, 돼지들의 도축으로 이루어지는 걸 보면 매우 공감이 가는 말이다. 최소한 의인화는 시키되 최대한 그들의 처지에 맞게 영화는 마치 동물통역사 정도의 역할만 담당할 뿐이다. 이런 구성은 실사 동물영화에서 꼭 필요한 요소라고 보여 진다. 그들의 여과 없는 생각을 통해 우린 다시금 그들의 처지를 역지사지(서로 처지를 바꾸어 생각함)하게 된다. ‘다른 동물을 대하는 방식이 곧 그 사람(동물)의 인격이며 국민성이다!’라는 오래된 명언이 마치 이 영화 속에선 잔잔히 메아리쳐 오는 듯하다.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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