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분 동안 담긴 양민학살의 현장

 대한민국의 역사교과서는 수정되어야 한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해방 후 부터 한국전쟁 때까지 백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전국의 방방곡곡에서 학살된 것을 국민들은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해원’은 영상으로 정리한 역사교과서라고 할만하다. ‘해원’은 대한민국의 역사가 70년 넘게 쉬쉬해왔던 치부를 드러내 이를 알리고, 공론화과정을 거쳐 대한민국이 제대로 서는 나라가 되기를 염원한다.

 그렇다면 먼저, 해방 후와 한국전쟁 당시 왜 그토록 많은 양민 학살이 있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방 후 미군정과 이승만은 친일파와 손잡고 적폐를 온존시키려고 했다. 이에 항일독립운동가들과 지각 있는 민족주의자들은 적폐를 청산하고자 했다. 이에 미군정과 이승만 그리고 친일세력들은 한통속이 되어 이들을 빨갱이로 매도해 학살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민간인들은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양민들까지를 무차별 학살함으로서 나머지 국민들을 겁박했다. 이렇게 대규모 학살로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았던 비극의 연대기는 국민들에게 강한 트라우마를 안겨 주었고, 그로 인해 그 누구도 학살을 입에 담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박정희의 독재정권과 전두환이 광주를 학살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특정 지역의 민간인학살을 다룬 영화들은 종종 있었다. 4·3항쟁을 다룬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미군의 노근리학살을 조명한 ‘작은 연못’, 그리고 경남 창원지역의 민간인학살을 기록한 ‘레드 툼’이 바로 그 영화들이다. ‘레드 툼’을 연출했던 구자환 감독은 창원의 학살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이 전국 곳곳에서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널리 알리고자 마음먹었고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이 ‘해원’이다.

 구자환 감독은 전국 학살 피해지 50~60곳을 카메라를 들고 찾아갔고, 그곳에서 만난 민간인 학살 피해 가족들과 목격자들의 증언을 기록했다. 이 영화의 힘은 전국 곳곳을 누비며 담아낸 방대한 양의 증언들에서 생겨난다. 구자환 감독은 이 땅에서 일어난 민간인학살을 하나라도 더 담기 위해 쉼 없이 역사의 현장을 방문했고, 참사를 목격한 후손들의 증언을 듣는 것으로 영화의 에너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게 관객들은 감독이 안내하는 학살현장을 순례하게 된다. 대구 10월 항쟁을 시작으로 제주 4·3항쟁과 여순사건 그리고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한 좌파전향자들이 집단 학살된 교도소를 방문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무고한 양민들이 굴속에 갇혀죽고, 구덩이에 묻혔으며, 바다에 수장되었음을 듣게 된다. 또한 ‘해원’은, 이승만과 친일세력들이 자행한 학살 말고도 미군의 민간인 학살, 퇴각하던 인민군의 학살 등 이 시기가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양민학살이 횡행했음을 증언한다.

 그러니까 구자환 감독은 96분의 상영시간 동안 최대치의 양민학살을 담고자 했다. 대한민국에서 자행된 학살을 최대한 많이 보여줄 것. 바로 이 영화의 목적이다. 이런 이유로 이 영화는 미학적인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철저하게 현장 중심의 인터뷰와 내레이션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학살 지역에서 거행되는 위령제를 배치하여 숨을 고르는 것은 물론 학살로 죽임을 당한 사람의 혼을 위로한다. 이 애도의 춤과 노래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제목을 상기시키도록 한다. 해원(解寃)은 ‘원통한 마음을 풀어 낸다’는 뜻이다.

 억울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민간인 학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없다. 이 문제를 덮어두고 인권과 평화를 이야기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보고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시기까지 어떤 이유로 그렇게 많은 양민들이 학살당했는지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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