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오월의 열사들

▲ 1978년 제1기 들불야학 강학들. 맨 오른쪽이 김영철이다. 그는 신용협동조합운동을 기반으로 광천동 시민아파트에서 주민들의 삶을 돌보고 가꾸는 주민운동가였다. 1978년 그는 이곳에 자리 잡은 들불야학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80년 5월에는 항쟁지도부 기획실장을 맡아 윤상원, 박용준과 함께한다.
 (저번 호에 이어서 씁니다)

 아버지와 은수 이모는 큰아버지가 그렇게 된 것이 자신들 때문이라고 괴로워한다. 큰아버지가 마음먹은 대로 그곳에 남았다면 죽든 살든 적어도 지금과 같이 정신병원에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저렇게 괴로워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고집을 부려 형을 도청 밖으로 피하게 한 것이 어쩌면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큰아버지가 죽고 씻김굿을 하는 날 아버지는 서럽게 흐느낀다. “형님, 내가 잘못했소. 죽는 게 무서워 형을 그리 만들고 말았소. 으흐흐흑! 나는 비겁한 겁쟁이요. 용서하시오.” 그리고 작가는 아버지의 후회와 주인공 경록이가 동이의 괴롭힘을 이겨내는 것을 겹쳐 보여 주면서, 용기가 뭔지, 그 용기로 무엇을 지킬 수 있는지, 어떨 때 자존심을 지켜야 하는지, 사람이 비겁해지면 무엇을 잃고 마는지 일러준다.

들불열사 추모비. 광주에 들불 열사 일곱 분 박기순, 윤상원, 박용준, 박관현, 신영일, 김영철, 박효선이 있다. 모두 들불야학에서 교사로 일했던 사람이고, 80년 5월 항쟁 지도부에서 항쟁을 이끌었던 분이다. 2002년 5월 19일 일곱 분 열사를 추모하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이 추모비를 세웠다. 들불열사 일곱 분의 삶을 더 알아보려면 (사)들불열사기념사업회(http://www.deulbul.co.kr)에 가면 자세히 알 수 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우리는 그 열흘간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은 저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결정을 했다는 것, 그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책에서 읽었을 때 어떤 것을 새롭게 배웠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 머릿속에 훤히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오늘 어떤 것을 새롭게 보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윤정모의 청소년소설 ‘누나의 오월’과 한정기의 어린이소설 ‘큰아버지의 봄’이 그렇다. 두 소설은 80년 오월을 ‘자명하게’ 그리지 않는다. 우리는 이 두 소설을 읽으면서 춘태여상 박금희를, 들불야학 박기순을, 시민군 윤상원·박용준·김영철을, 영원한 광주의 홍보부장 박효선의 삶을 되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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