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하운의 ‘개구리’에 얽힌 사연6

▲ ‘한하운 시초’(정음사, 1949)와 ‘보리피리’(인간사, 1955년 3판) 표지. ‘한하운 시초’는 시인 이병철이 발문을 쓰고, 당시 천재화가 정현웅이 표지 디자인을 했다. 이병철과 정현웅은 한국전쟁 이후 월북했다. 그 때문에 한하운 또한 사회주의자로 내몰리기도 한다.
 (지난 호에 이어서 씁니다)

 그의 본래 이름은 태영(泰永 클태·멀영)이다. 이 세상을 넓고 멀리까지 본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의 나이 열일곱에 한센병에 걸린다. 다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1945년에 다시 병이 도졌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 때 일이다. 태영은 자신의 이름을 하운(何雲 어찌하·구름운)으로 바꾼다. 어찌하여 내 신세가 떠다니는 구름 신세가 되었느냐, 하는 말이다. 그의 이름처럼 그는 거지가 되어 떠돌이 신세였다. 남한 어디에서도 한센병자를 품어주지는 않았다. 시골도 도시도 다 똑같았다. 아니 시골이 더 심했다. 이름을 하운으로 바꿨지만 사람들은 그를 ‘문둥이’라 했다. 한센병 환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이렇게 해서 그의 이름은 넷이 되었다. 태영, 하훈, 문둥이, 그리고 문둥이 시인.

 나는 시 해설집 ‘황토길’(신흥출판사)에 나오는 ‘개구리’ 해설을 읽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시인과 그 시인이 쓴 시를 읽는 독자의 거리를 절감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서는 안심을 하기도 했다. 사실 그의 해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손에 바로 잡히는, 절실한 뭔가가 빠져 있다는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 알맹이가 없이, 그 시를 쓸 때 처한 형편이나 그 밑바닥을 말하지 않고 무미건조하게, 아니 당신이 알고 지내는 시인들을 염두에 둔, 그래서 더더욱 뭔가 있어 보이려고 하는, 그래야만 인정해 주는 문단 풍토 속에서 아웃사이더가 자신의 말을 최대한 가다듬어 한 말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개구리’를 처음 읽었을 때, 독자로서 내 느낌은 이랬다. 이 시를 발표한 해인 1949년, 그는 이때 한센병에 걸려 다리 밑에서 거적을 덮고 살아갔다. 아마 늦봄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개울 가까이 무논에서 개구리 소리가 왁자하게 들려왔다. 그는 어렸을 적 고향 함경남도 함주에서 들었던 개구리 소리가 떠올랐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보였다. 어머니가 눈앞에 보이고, 어머니에게 배운 한글 자모 소리가 떠올랐다. 순간 개구리 소리는 꾸우악 꾸우악도 아니고 골골골도 아니고 산개구리 소리 호로롱도 아니었다. 그 소리는 바로 이 소리였다. “가갸 거겨 / 고교 구규 / 그기 가. // 라랴 러려 / 로료 루류 / 르리 라.” 이런 사정을 알고 이 시를 읽으면 가슴에 뭔가 꾹 차오른다. 이 시는 그저 한글 자음과 모음을 가르치는 시가 아닌 것이다. 어린 시절, 문둥병에 걸리지 않았던 그 어린 시절이 그리워, 속으로 꺽꺽 울면서 쓴 시가 아닐까 싶다. 서러움에 복받쳐 쓴 시가 아닐까 싶다. 또 문둥이들이 사람대접을 받는 그곳으로 가고 싶다고. “그기 가”고 있냐고, 마침내 그곳에 가 ‘파랑새’가 될 수는 있냐고…….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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