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5000년을 산 백두산 호랑이<2>

 신라시대 때 화랑도 알지? 그들은 유년기부터 청년이 다 될 때까지 십여 년을 산속에서 수련을 쌓아 비로소 사회에 나가 신하나 장군들이 되는 신라의 핵심 젊은이들이었지. 그들에겐 정말 감추어진 스승이 한 명 있었어. 바로 이 호랑님이었다는 사실. 지금까지도 아무도 모르지. 인간이 쓴 역사책 속에는 당연히 감추어져 버렸을 테니까. 인간들은 동물이 스승이었다는 걸 절대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지.

 나는 그 당시 신라의 명산 운문산에 살면서 그 곳 큰 절 주지 스님과도 아주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어. 스님들은 원래 자기의 목숨을 스스럼없이 내줄 정도로 산 짐승들과는 친하게 지내는 사이니 우린 거의 친구나 다름없었지. 그 분이 바로 화랑도의 대부라고 불리는 원광대사님이었지. 스님이 어느 날 내가 사는 동굴로 몸소 찾아오셔서 “내가 화랑도라는 걸 조직해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호연지기도 키워주고 장차 나라의 동량이 될 인재도 키울 요량인데, 네가 좀 도와주지 않으렴?”하고 물으시더군. 난 비록 말은 못했지만 사람들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으니, 동의한다는 표시로 꼬리를 좌우로 살짝 흔들어 주었지.

 그러자 스님은 다짜고짜 수많은 젊은이들이 있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셨어. 그리고 그들 앞에 서서 말씀하시길 “이 호랑이가 앞으로 여러분들의 용기를 키워주고 싸움의 비법을 전수해 줄 테니, 극진히 스승님으로 모시도록 하여라”고 하셨지. 그런데 그 중 아주 비범하게 생긴 젊은이 하나가 대뜸 나서서 “대사님! 저는 차마 동물을 스승으로 모시지는 못하겠습니다!”하는 거야. 그리고 대뜸 내게 칼을 겨누고 곧바로 덤벼들었지.

 난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가볍게 칼을 피한 후 살짝 그를 밀쳐서 넘어뜨렸지. 그제야 그도 패배를 인정하고 나를 스승으로 받아들이더군. 그가 바로 화랑도의 으뜸 화랑이자 통일신라를 세운 김유신 장군이었지.
 
▲사냥 요령 교육하고, 대련도 시키고
 
 난 매일 한 시간씩 화랑들을 모와 놓고 멧돼지나 사슴을 잡는 요령을 가르치기도 하고, 열 명씩 한 데 모와서 나와 대련을 시켜 보기도 했어. 그 열 명이 나를 이겨 낼 정도가 되면 비로소 졸업을 시켜주었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호랑이의 상대가 될 정도로 강인하게 키운 화랑도인 만큼 그들은 세상에 나가면 아무도 두려운 상대가 없게 되었지. 그리고 큰 뜻을 위해서라면 산짐승들처럼 외롭게 홀로 산골짜기에서 죽음을 맞더라도 절대 슬퍼하지 않는 정신자세도 갖추게 되었지.

 화랑의 세속오계 중 ‘살생유택(살아있는 것을 죽일 때는 가림이 있어야 한다.)’ 같은 건 바로 나를 염두에 두고 만든 말이야. 산짐승들이라고 업신여기지 않고 절대 함부로 죽이지 못하도록 말이지. 화랑도 젊은이들과 지내던 그 시절은 아직도 정말 즐거운 추억으로 아련히 남아있어. 백제와의 황산벌 전투에서 나와 친하게 지냈던 화랑 관창을 비롯한 많은 화랑들이 전사했는데, 그 소식을 듣고 난 한 동안 얼마나 슬퍼했는지 몰라.

 아참! 그리고 화랑 중에서 좀 말수가 적지만 아주 기품이 있는 녀석이 한 명 있었지. 그 녀석의 힘이나 무예만큼은 김유신을 능가할 정도로 정말 끝내주는 녀석이었어. 그런데 그는 어느 날 훈련 도중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지.

 소문으로 듣자니 원래 자기나라인 고구려로 돌아갔다고 해. 그리고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 아버지의 대를 이어 대막리지가 되어 고구려를 다스린다고 들었어. 그가 바로 연개소문 장군이었지. 그렇지 않아도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 싶어 그 녀석도 만나 볼 겸 고구려에 한번 가보기로 결심했지.

 고구려란 나라는 언제 가 봐도 늘 기분이 좋았어. 나처럼 무를 숭상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호탕하고 굉장히 낙천적이었거든. 그 이전에 한 번 고구려에 갔을 때도 산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났었는데 그들은 바로 놀랍게도 유리왕과 을지문덕 장군 일행이었지.

 그들은 큰 호랑이인 나를 보고도 정말 눈 하나 깜짝 않더군. 유리왕은 “산군께서 사냥하시기도 바쁠 텐데 여기까지 웬일이시오? 기왕 여기까지 오셨으니 술이나 한 잔 같이 합시다”하고 오히려 큰 소리로 손님에게처럼 말을 걸더군. 그래서 나 역시 가만히 그들 앞에 뒷다리를 접고 앉아 함께 술을 홀짝이며 마신 적이 있었지. 참 용감하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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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당시는 중국 수나라와 전쟁 중 이었는데, 그 때가 바로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대첩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터였어. 유리왕은 을지문덕 장군을 가리키며 “글쎄 이 장군이 칼에 피한방울도 안 묻히고 수공작전만으로 수나라의 대군을 모조리 무찔렀지 뭐요. 그래서 나도 너무 기분이 좋아서 장군과 함께 좋은 곳에게 술을 마시러 일부러 이 곳 산에 올라왔다가 산군까지 만나게 되니 이 아니 기쁘겠소!”하며 그 날 우리는 밤새껏 함께 술을 마셨지.
 
▶연개소문과 안시성에서 함께 싸우다
 
 그건 그렇고 아무튼 난 연개소문이 살고 있다는 평양성 옆 궁궐 같은 집 앞에 숨어서 한참을 기다렸지. 그 날 저녁 연개소문이 퇴궐을 하고 돌아오는데 등에는 커다란 칼을 두 개나 매달고 다니더군. 과연 연개소문다웠지.

 “어흥!”하며 놀래켜 주려고 그의 앞에 갑자기 나타났는데도 그는 금방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웃으면서 “아니, 스승님께서 이 먼 곳까지 웬일이십니까? 어서 저희 집으로 들어가시지요”해서 그 날 밤은 그에게 술과 고기를 배부르게 대접받았지. 고구려는 그 때도 역시 전쟁중이였어. 이번에는 수나라를 이은 중국 당나라와 전쟁 중 이었지.

 그리고 고구려의 밑에선 신라의 세력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 시기이기도 했어. 연개소문은 양쪽 군대를 한꺼번에 상대하는 데만도 거의 정신이 없더군. 내가 방문 한 다음 날도 당태종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안시성까지 밀고 내려왔다는 급보가 전해졌어.

 연개소문은 그 즉시 지원군을 이끌고 안시성으로 올라갔고 좋은 구경이 되겠다 싶어 나도 연개소문 군의 뒤를 따라 함께 올라갔지. 안시성은 그 당시 연개소문의 친구이자 고구려 최고의 무장인 양만춘 장군이 지키고 있었어. 당 태종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물밀듯 안시성으로 쳐들어 왔지. 연개소문과 양만춘은 온 힘을 다하여 군사들과 죽을 각오로 용감하게 싸워 성을 지켜냈어. 밤엔 몰래 성을 빠져 나가서 당 군을 기습하기도 했지.

 아참! 그럴 땐 나도 살짝 옆에서 거들기도 했어. 그렇게 세 달 가량을 성에서 버텨내자 다급해진 당 태종 이세민은 어느 날 아주 끝장을 낼 요량으로 직접 선두에 서서 마지막 총공세를 해왔지. 그날 양만춘은 큰 활을 들고 서서히 선두에 선 당 태종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어.

 그 활은 정확히 당태종의 오른쪽 눈에 꽂히고 왕이 쓰러진 당나라군은 대패하여 자기 나라로 모두 도망칠 수밖에 없었지. 아! 지금 생각하여도 얼마나 거대한 승리였는지! 그러나 그 전쟁이후 고구려의 국세는 급격히 기울어져 결국 나당 연합군에 의해 나라가 멸망하는 수모까지 당하고 말지. 연개소문은 다행히 나라가 망하는 꼴을 보기 전에 죽었어.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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