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황산벌’(이준익 감독, 2003) 한 장면.
 구본관은 ‘체언과 그 쓰임’ 장에서 명사, 대명사, 수사를 다루고 네 번째 꼭지로 ‘체언과 복수’를 말한다.

그는 명사를 그 쓰임에 따라 보통명사와 고유명사로 나누고, 자립성의 유무에 따라 자립명사와 의존명사로 나눈다. 그리고 의존명사 가운데서도 단위성을 띠는 의존명사를 따로 꼭지를 마련하여 다룬다.

그는 “우리말에는 의존명사와 단위성 의존명사가 발달되어 있다.” 하면서 “이는 다른 언어와 구별되는 우리말 특질의 하나라고 할 만하다”고 한다(《우리말 문법론》(집문당, 2016) 14, 68쪽).

하지만 정작 우리말에 왜 이런 의존명사와 단위성 의존명사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밝혀 말하지 않는다.

 우리말에서 의존명사의 발달은 우리말의 성질 가운데 하나인 ‘현장성’과 관계가 깊다. 영화 〈황산벌〉(2003)에 나오는 ‘거시기’ 같은 말도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올라와 있지만, 의존명사로도 볼 수 있다.

“계백아, 니가 거시기해야 쓰겄다.” “여그 황산벌 전투에서 우리의 전략전술적인 거시기는 한마디로 머시기할 때꺼정 갑옷을 거시기한다”에서 ‘거시기’나 ‘머시기’는 다른 말에 ‘의존’해서만, 또 말이 오가는 현장(상황)과 맥락 속에서만 그 뜻을 알 수 있다.

우리말에는 이러한 의존명사(것, 뿐, 듯, 만, 차, 판, 깐, 바, 적, 줄, 쪽, 탓, 터, 턱, 편, 통, 체, 채 따위)가 아주 발달해 있다. 영어에서 ‘-인 체하다’는 ‘pretend to’인데, 보는 바와 같이 동사 ‘pretend’에 그 뜻이 담겨 있다. 반면 우리말은 의존명사 ‘체’에 접미사 ‘하다’를 붙여 말을 만든다.

특히 의존명사 ‘것’은 영어의 관계사절과 명사절(what절) 구실을 해 ‘글말’을 편하게 해준다.

단위성 의존명사(개, 뿌리, 통, 마리, 채 따위)가 풍성하게 발달한 까닭은 우리말 명사 자체에 단·복수형은 따로 없지만 실제 삶에서는 늘 수를 헤아려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래 인용글은 ‘체언과 복수’ 꼭지에서 우리말의 복수 표시에 대한 구본관의 의견이다.
 
 우리말은 영어, 독일어 등 인도유럽어들과 달리 단수와 복수를 나타내는 수 표현이 문법 범주로 발달하지 않은 언어이다.

인도유럽어들에서는 체언의 복수형이 굴절에 의해 표시될 뿐 아니라 형용사나 동사의 활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우리말의 경우 복수의 표시가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나지만 규칙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고영근·구본관, ‘우리말 문법론’(집문당, 2016) 82∼83쪽
 
 고영근과 큰 차이는 없다. 구본관 또한 고영근과 마찬가지로, 우리말이 왜 “단수와 복수를 나타내는 수 표현이 문법 범주로 발달하지” 않았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또 “복수의 표시가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난다고 했는데, 사실 우리말에서 복수 표시는 그가 말한 단위성 의존명사와 ‘-들’ 말고는 딱히 사례로 들 만한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다음 호에 이어서 씁니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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