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것이 닥스일까?(EBS 다큐멘터리 ‘동과 서 제1편’(2008. 4. 15)
 그렇다면, 동양 사람들은 왜 사물을 단수와 복수로 나누지 않는지, 사물을 단·복수로 뚜렷하게 하지 않아도 어떻게 바로바로 알아듣는지, 인지심리학자 무츠미 이마이의 말처럼 미국 사람들은 사물을 보면 어떻게 “그것이 가산명사로 표시되는 물체(object)인지 아닌지를 순식간에 결정”(‘EBS 다큐멘터리 동과 서’(지식채널, 2012), 25쪽)하고 알 수 있는지, 그 근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EBS ‘동과 서’ 제작팀은 이것을 밝히기 위해 아주 간단한 인터뷰를 한다. 먼저 나무 재질로 된 원기둥을 만든다. 크기는 엄지, 검지, 중지 끝으로 살짝 집을 수 있을 만큼 작다. 그리고 이것을 편의상 ‘닥스(dax)’라 이름 붙인다. 그런 다음 물체 두 개를 더 만든다. 하나는 닥스와 모양이 똑같은 파란색 플라스틱 원기둥이고, 다른 하나는 나무로 된 사각기둥이다. 먼저 닥스를 보여주고, 그 다음 양손에 플라스틱 재질 원기둥과 나무 재질 사각기둥을 쥐고 묻는다. “어느 것이 닥스인가?” 놀랍게도 동양 사람들은 주로 나무 재질로 된 사각기둥을 닥스로 선택하고, 서양 사람들은 거의 다 플라스틱 원기둥을 꼽는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서양 사람들은 ‘모양’이 같은 것에 주목하고, 동양 사람들은 질감·재질·본질이 같다는 것을 든다. 이것은 이 세상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리처드 니스벳의 말처럼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서양인과 동양인은 글자 그대로 서로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고, “서양인은 개별적인 ‘사물’을 보고 있고 동양인은 연속적인 ‘물질’을 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연속적’이란 서로 관계있는, 또는 세상의 물질을 연기(緣起)로 보는 세계관을 말한다(‘생각의 지도’, 김영사, 2017, 84쪽). (다음 호에 이어서 씁니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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