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 다른 원숭이와 친밀감에 폭발


▲ 친밀감이 컸던 우리 사이, 침팬지는 수의사의 다른 동물에 대한 애정에 큰 질투심을 표출했다.
 마치 사냥하듯 남자, 또는 여자 친구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그 잘난 상남자, 상여자들에겐 질투란 당치 않는 말로도 들릴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데는 사실 질투 빼면 시체라고도 할 수 있다. 흔히 사랑을 밀고 당기기(밀당)라고 하는데 이 줄다리기의 팽팽한 줄이 바로 질투일 것이다. 미지근한 사랑에 불을 확 댕기는 것 역시 질투의 힘이다.

 소위 이성적이라는 사람도 이럴진대 원초적인 본능이 앞서는 동물들이야 이 감정이 약할 리 없다.

 어느 날 침팬지 앞을 지나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은 하필 나와 동행이 있었다. 바로 ‘엔조’라고 부르는 길들어진 일본원숭이였다. 걔는 우리 동물원에서 원숭이 체험교육용으로 한번 써보려고 최근 다른 동물원에서 교환해 온 녀석. 그리고 친해지기 위해 날마다 목줄을 매달고 이런 식으로 산책을 시켰다.

그렇게 둘이서 무심코 걸어가는데 갑자기 침팬지 쪽에서 무언가 묵직한 것이 날아왔다. 겨냥이 제대로 되지 않아 빗나가긴 했지만, 자세히 보니까 바로 침팬지의 더럽기 짝이 없는 ‘똥’이었다.

침팬지의 힘은 보통 어른 열 사람에 비견될 만큼 세다. 그래서 던지는 위력 또한 만만치 않다. 혹시 제대로 맞기라도 했다면 그 침팬지 녀석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무리생활 동물사회에 편애가 감지되면
 
 침팬지 녀석은 사람과 99% 유전자가 동일하다. 사람 같은 유인원답게 유난히 아는 이에게 애정을 보인다. 멀리서 봐도 양반 자세로 앉아 고개를 까닥이며 열심히 아는 체를 한다. 그러면 나 또한 인사를 받았으니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가끔 철창에 붙어 주변에서 밤이나 감 혹은 매점 앞에 있는 산딸나무 열매라도 따다가 먹여주곤 하였다. 그러니 우리 사이에 일반적인 정이 통하리라는 건 알겠는데 이 녀석이 엔조에 대한 질투심까지 발휘할 줄은 정말 몰랐다. 다음 날부터 침팬지가 볼세라 멀리 사각지대로 우회하여 엔조와의 산책을 다녀야만 했다.

 앵무새가 두 마리 있다. 이 둘은 이웃해서 지내도 서로 종이 다른지 잘 친해지지 못하면서 대신 사육사에게는 서로 무한 애정을 퍼붓는다.

그중에 초록색 바탕의 뉴기니 앵무 ‘초롱이’ 녀석은 더 오래되었고 어려서부터 사람 손에 커온 터라 사육사의 어깨 위에도 곧잘 올라간다, 하지만 온 몸이 하얀 유황앵무 ‘하양이’는 길들여지지 않아 아직 철창 밖으로 나올 단계는 아니었다. 어느 날 사육사가 초롱이를 어깨에 매달고 한참 하양이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기본적인 말 가르치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갑자기 초롱이가 사육사의 손등을 꽉 깨물어 버렸다. 평상시 같으면 상상도 못할 강도로 말이다. 퍼렇게 손등에 멍이 든 사육사는 애써 웃으며 “이 녀석이 정말 질투하는가 봐요” 한다. ‘아! 질투란 말을 여기서도 듣는구나!’

 동물원에서 특히 무리 생활하는 녀석들에게는 한 녀석을 편애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면 큰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자나 호랑이 무리도 똑같이 동시에 먹이를 주어야 한다. 가령 내가 시베리아 호랑이인 ‘뒹구리’를 더 좋아한다고 그 녀석만 맛있는 걸 준다든지 반대로 저만 빼고 다른 녀석을 준다든지 하면 그야말로 대형싸움이 벌어진다. 자기 짝이어도 소용없다.

평소 웅얼거리던 녀석들도 일단 싸우기 시작하면 호랑이의 특유의 무서운 공격 본능이 살아나 포효하고 덤비는 폼이 얼마나 대단하던지 한번 그 꼴을 보고 나면 다음부터는 절대 그런 차별 행동을 못 하게 된다.
 
 ▲질투는 관심·애정의 증표
 
 원래 사람에 길들어진 가축이나 동물원의 동물들은 사람이 오히려 애인이고 질투의 대상은 바로 같은 동종의 동물일 경우가 종종 있다. 반려견들도 주인이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그 조그만 몸으로 감히 차에게도 달려든다. 기린도 암수 한 쌍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사육사가 먹이 주러 갈 때는 마치 수컷들의 영역싸움처럼 서로 긴 목으로 싸움(necking)을 벌이기도 한다.

 동물들을 지켜보면서 소위 인간 최고의 감정이라 하는 사랑이나 질투 역시 결코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우린 공작의 깃털, 치타의 주력, 원숭이의 나무타기에도 은근히 질투를 느낀다. 이 질투라는 감정을 적절히 이용하면 이미 우리가 동물들을 길들어 온 방식처럼 우리도 동물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물론 무리하면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지만, 사람과 사람, 동물과 동물, 사람과 동물 간의 질투란 너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그걸 받고 싶다는 의미이다. 더욱 많은 이들이 동물들에게 더 많은 질투심을 느끼시길 바란다.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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