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윤석의 재능을 입증한 영화

▲ 영화 ‘미성년’.
 관객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배우 김윤석의 이미지는 ‘강력한 마초’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타짜’의 아귀, ‘황해’의 살인청부업자 면정학, ‘화이: 과물을 삼킨 아이’의 낮도깨비의 리더 석태, ‘1987’의 공안경찰 박차장 등 김윤석이 극강의 카리스마로 무장한 인물들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존재감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미성년’은 징글징글한 캐릭터로 구축된 배우 김윤석이 “사실은 저 이런 사람이에요”하고 고백하는 감독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시작은 딸이 아빠의 불륜현장을 지켜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리(김혜준)가 목격한 아빠 대원(김윤석)과 미희(김소진)의 만남은 딱 봐도 연인사이다. 이 현장에 미희의 딸인 윤아(박세진)가 등장하면서 사태는 확대된다. 그렇게 바람난 어른들의 여고 2학년 딸들인 주리와 윤아는 자신들의 엄마와 아빠가 바람피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내 이 사실을 숨기고자 하는 주리와 이를 드러내고자 하는 윤아가 옥신각신 하게 되고, 결국 대원의 아내인 영주(염정아)의 귀에까지 남편의 불륜소식이 전달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두 어른의 ‘불륜’이 자신들의 딸과 아내에게 발각되는 것을 짧은 시간동안 정리해 낸다. 그리고 이 영화는 불륜 이후를 대처하는 인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가며 인간을 관찰한다.

 그렇게 불륜 발각이라는 사태에 직면하여 각각의 인간은 다른 태도를 보인다. 이 와중에 발견되는 것은 미성숙한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김윤석이 연기하는 대원만 해도 그렇다. 이 인물은 찌질하고 우유부단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바람피운 사실을 들키자 아내와 딸에게서 도망치는 것도 그렇고, 자신의 아이를 조산한 미희의 곁을 지켜주지도 못한 채 갈팡질팡하는 모습도 한심스럽다. 미희 역시 미성숙한 존재이기는 마찬가지다. 고등학생 때 미혼모가 된 것도 그렇고, 현재의 불륜을 사랑으로 믿고 그 불완전한 사랑에 기대는 모습도 그렇다. 미희의 사랑에 대한 갈구는 보상받고 싶은 심리일 가능성이 높다. 미희의 남편 역시 예외가 아니다. 돈이 급해 찾아온 딸의 나이를 모르는 것도 그렇고, 도박에 빠져 사는 모습은 한심 그 자체다. 그나마 영주는 미성숙한 어른들 중에서 좀 나은 편이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잡아 흔드는 상황에서 영주는 무분별하게 감정을 쏟아내지 않고, 어떻게 하면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인가를 살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른들이 자기 한 몸 건사하는데 급급한 반면, 아직 성년이 안 된 윤아와 주리는 퍽이나 어른스럽다. 두 인물은 벌어진 상황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제목인 ‘미성년’은 역설적이다. 영화 속 어른들에게서 미성년의 모습이 발견되고, 성인이 안 된 딸들에게서 성숙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김윤석 감독은 나이에 상관없이 자기 일에 책임을 지고자 하는 사람을 성숙한 인간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감독 김윤석의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관심은 대원이 도망친 바닷가마을에서 겪은 일화들에서도 발견된다. 대원은 바닷가마을에서 노파와 청소년들에게 치욕을 당하게 되는데, 이는 바닷가마을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는 설정으로 강퍅한 인심이 어느 곳에나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의 스타일적인 면에 있어서도 김윤석은 감독으로서의 자질을 입증시킨다. 불륜을 들킨 대원이 아내 영주에게 사죄하는 장면을 롱테이크로 찍어 낸 연출이 대표적이다. 이때 카메라는 대원의 영주를 향한 기나긴 애걸복걸을 한 호흡에 담아내면서,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을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시켜 내기 때문이다.

 여로 모로 ‘미성년’은 장점이 많은 영화다. 배우만 잘하기도 힘든데, 김윤석은 감독으로서도 재능이 있음을 입증시킨 것이다.
조대영<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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