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아닌 인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등장하는 영화들을 우리는 종종 만난다. 할리우드영화로는 ‘레인 맨’(1988)이 얼른 떠오르고, 한국영화로는 ‘그것만이 내 세상’(2018)이 곧바로 떠오른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비장애인이 어쩔 수 없이 장애인과 함께하게 되고 결국에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이해하는 결말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두 영화는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장애인을 내새워 극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기도 했다.

그렇다면 두 명의 장애인이 주인공이고, 두 명 모두 이렇다 할 재능도 없는 설정으로 관객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이에 육상효 감독은, ‘나의 특별한 형제’에서 세 글자의 ‘장애인’ 대신에 두 글자의 ‘인간’을 제시하며 관객들에게 어필하고자 한다.

사회복지시설 ‘책임의 집’에는 한 형제가 살고 있다. 비상한 머리를 가졌지만, 온 몸이 마비돼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지체장애인 세하(신하균)와 5세 수준의 지적장애인 동구(이광수)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어렸을 적 친척과 엄마로부터 버려진 이후, 20년 동안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형제처럼 살고 있다.

‘나의 특별한 형제’는 이들 장애인을 동정하거나 온정의 대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다만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영화 속 장애인은 장애가 있을 뿐이지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인간임을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는 말이다.

세하가 대표적이다. 마비증상으로 휠체어에 의존하는 세하는 재정난에 처한 ‘책임의 집’을 살리기 위해, 봉사활동 인증서를 부정 발급해 주고 수익을 챙기는 등, 돈 되는 일이라면 부당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기존의 많은 매체들에서 신체적·정신적 능력이 부족하지만 심성만은 곱고 착하다는 것을 강조했던 장애인에 대한 기존의 접근법을 배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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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또한 ‘천사’가 아니다. 다섯 살의 정신연령을 가진 인물답게 라면을 먹을 때 옆에 있는 세하는 안중에도 없으며,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머리를 때리면서 불만을 표시한다. 그러니까 동구는 기본적인 욕구에 집착하는 ‘다섯 살 인간’인 것이다.

여기에다 세하와 동구의 주변에 위치하는 캐릭터들도 세속의 인간으로 접근한다. 세하를 간병하는 복지사 청년만 해도 그렇다. 간병인 청년은, 세하의 입에 밥을 떠먹여주는 것과 스마트폰 화면에 집중하는 것을 동시에 하다가 숟가락이 세하의 입으로 향하는 것에 실패하기도 하고, 손으로 미는 휠체어 대신 전동 휠체어를 권하는 등 환자에게 헌신하는 인물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이 청년이 장애인을 꺼리는 인물도 아니다. 그는 그냥 간병이 직업인 청년인 것이다.

이렇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인간을 보여주고 있는 이 영화는,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인간에 대한 탐구를 확장시킨다. 어린 동구를 수영장에 놓고 도망쳤던 동구의 엄마 정순(길해연)은 뒤늦게 나타나 동구의 친권을 주장한다.

여기서 관객들은 머리를 굴리지 않으면 안 된다. 동구를 낳은 친엄마라며 법적 권한을 주장하는 사람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20년을 동고동락한 사람 중 누가 더 가족에 가까운가를 고민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는 여러 우여곡절을 거친 후에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혈연이 아니어도 좋다. ‘가족’이란 서로 마음이 잘 통하고, 서로에게 정 붙이고 같이 살 수 있다면 그것이 가족이라고.

이렇듯, ‘나의 특별한 형제’는 두 명의 장애인 이야기를 통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인간임을 강조하고 있고, 반드시 가족이 혈연으로 맺어질 이유는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나의 특별한 형제’가 각별한 것은, 이와 같은 주제를 관객들에게 전달해냄에 있어 영화적인 재미 또한 담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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