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로 ‘텃세’를 잠재우다

▲ 덩치로 텃세를 잠재운 백조들. 다른 지역에서 우치동물원으로 전입한 백조들은 주눅 들지 않고 물새장에 당당하게 입성했다.되레 물에서 수영하던 펠리컨들이 잠깐 망설이는 듯하다가 짐짓 모른 척 하며 서서히 물 밖으로 빠져 나갔다.
 경남 한 공원에서 백조(혹고니) 네 마리를 기증한다하여 받아왔다.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일주일간의 격리기간을 거쳐 드디어 큰물새장으로 입성하던 날, ‘행여 터줏대감으로 행세하는 펠리컨이나 황새, 관학 등에게 해코지나 당하지 않을까?’하는 우려와 ‘물새장을 드디어 백조의 호수로 만들어 줄 수 있겠구나!’하는 기대감이 교차했다.

 그런데 백조들은 우리 염려와 달리 너무도 당당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문턱을 뛰어 넘어갔다. 유유히 연못으로 전혀 흔들림 없이 직선코스로 그대로 퐁당 들어갔다. 딱 보기에도 이들 덩치는 여기서 가장 큰 펠리컨보다 컸고 겨우 두 마리뿐인 그들보다 숫자도 두 배나 우위에 있었다. 다른 것들은 아예 상대조차 돼 보이지 않았다.

 흔히 우리가 힘을 비교할 때 일단 덩치 크기부터 놓고 본다. 호랑이나 사자, 코끼리도 합사 시킬 때 덩치가 비슷해질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상례이다. 그래야 싸움이 나더라고 서로 힘겨루기만 하고 끝난다. 텃세가 우열을 장악하기도 하지만 덩치에서 밀리면 그것도 사실 무용지물이다. 지금이 딱 그랬다. 이들은 텃세에 전혀 주눅 들지 않았고 그 당당한 입성에 물에서 수영하던 펠리컨들은 잠깐 망설이는 듯하다가 짐짓 모른 척 하면서도 서서히 물 밖으로 빠져 나갔다.

 이 장면은 흔히 영화에서 보던 낯익은 목욕탕 신을 연상시켰다. 덩치 큰 여기저기 문신을 한 조폭 형님이 당당히 몸을 흔들며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음마! 몸이 좀 껄적지근허네. 탕에나 들어가야 쓰것다.” 경고의 메시지다. 미리 탕 안에 들어있던 사람들은 잠깐 망설인다. ‘왜 하필 여기 들어온데. 들어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이고! 괜히 눈치 보지 말고 얼른 나가야 쓰것다. 누가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뭐! 나도 돈 주고 왔는데 그냥 있어 볼까? 뭔 일 있을 라고. 지금 나가며 괜히 자존심 상하잖아.’ 하다가 이들도 조형의 찌릿한 눈빛 한 번에 결국 못 버티고 서서히 하나둘 욕조를 빠져나가고 조폭은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 거대한 탕을 혼자 독차지 하고 큰 대자로 눕는다. 완벽한 점령이다.

물새장을 접수한 ‘신입생’ 백조.|||||

 펠리컨도 아마 이랬을 것이다. “음마! 저것들 뭐여? 죽을라고 환장한 거여? 인사도 없이 내 영역에 함부로 걸어 들어와.” 하다가 “아니, 어째 분위기가 영 거시기 한디. 저 덩치 좀 보소. 야! 아우야 우리보다 좀 더 크지 않니?” “와따! 그래도 형님 우리가 여기 살아온 세월이 얼만디 저 까잇 것들 몸집만 크지 뭐 힘이나 쓰것소? 지들이 알아서 기재?” “그래? 그러지! 근디 아닌 것 같은데 우리가 여기 떠있어도 물로 곧바로 들어와 분디. 아우야, 네가 가서 좀 뭐라고 교육 좀 시켜부러라. 너무 심하게는 말고.” “아따! 형님. 그런 일은 우리 카리스마 넘치는 형님이 한방에 보내셔야지라. 저야 뭐 형님 보디가드 아니요?” “그래? 알았어. 좀 기다려봐라.” “아니! 근데 형님 어디로 가시요? 쟤들은 저쪽에 있는디?” “아니! 우선 소피 좀 보고! 작전부터 짜야겄다. 쟤들은 우선 분위기 파악하게 좀 냅둬부러. 너도 눈에 팍 힘주고 먼저 말도 걸지 말아라. 지들이 찔리면 알아서 숙이고 들어오것제.”

 아직도 그 두 펠리컨은 백조들이 다가오면 천천히 슬슬 피하면서 계속 곁눈질로 눈치만 보고 있다. “아따! 여기가 낙원이시. 이웃들도 참 얌전하고! 오길 잘했어.”
최종욱<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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