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한 대목서 엿보는 세태

▲ 광주우치동물원 호랑이.
 연암 박지원, 그의 글들은 조선시대 양반으로는 드물게 문학으로 분류된다. 그 외의 양반님네 글들이 대개 역사나 철학 등으로 분류되는데 비해. 그래서 그는 그 당시에도 문체가 방정하다고 정조왕의 꾸지람도 들었다고 한다. 한학 하시는 분들은 초자들에게 꼭 열하일기를 먼저 권하신다. 한학에서 그보다 더 즐거운 글 읽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열하일기는 한 마디로 기행문학이다. 연암은 사신 일행의 꼽사리로 따라가는 부담 없는 여행자로서 청나라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소소한 일들을 글로 엮어 놓았다. 그 중 연암이 어느 잡화상 같은 가게에 들러 벽에 걸린 글을 베낀 ‘호질’이라는 글이 있는데, 호랑이가 인간을 꾸짖는다는 내용이다.

그 인간이란 구체적으론 허세하는 유학자들을 칭한다. 그 또한 같은 유학자면서 그들을 비판하는 이 글은 무척 재미있고 또한 통쾌하다. 여기에 연암문학의 진실성을 엿볼 수 있다. 비록 그가 이 글을 베낀 거라고는 하지만 연암 자신이 쓴 글이라는 학자들도 있다. 도대체 출처 미상의 이 글을 책 속에 고스란히 적어놓은 연암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호랑이는 워낙 영물이라 귀신들이 항상 붙어 다닌다. 그 중 창귀는 호랑이 앞에서 먹을 것을 미리 찾아주는 귀신이고, 사람을 잡아먹은 숫자에 따라(다소 엽기적) 굴각, 이올, 육혼이라는 귀신이 차례로 붙어 호랑이의 모사 역을 한다.

귀신들은 우선 의사와 무당을 잡아먹으라고 추천을 한다. 의사는 백 가지 약초를 취급하니 고기가 향기롭고, 무당은 날마다 목욕재계를 하니 깨끗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호랑이는 의사는 자기 의심을 확인하기 위해 해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무당은 사람들을 현혹시켜 그로 인해 죽는 자가 부지기수니 그런 독한 고기를 어찌 먹느냐고 오히려 나무란다. 의사 대목에선 나 역시 사뭇 찔렸다.

 그래서 귀신들은 그럼 아주 존귀한 고기가 있는데 그걸 한번 먹어보심이 어떠냐고 추천을 한다. 이 고기는 향기로운 지조를 지키며 예를 숭상하며 제자백가의 말씀을 궤고 다니며 마음으로 만물의 이치와 통하니 바로 ‘오미’를 갖추었다 할 것이며 이는 바로 유학자 고기라고 한다.

 그러나 호랑이는 그들은 음양을 마음대로 나누려 하고, 세상의 자연스런 이치를 억지로 쪼개려 하는데 그걸 먹는다면 삼키기도 전에 체할 것이라고 귀신들을 나무란다.

 그러면서 경험담을 들려주는데, 정나라의 한 고을에 명망 높은 북학선생이 있었고 그 동네에 동리자라는 이름난 열녀가 함께 살았는데 그 열녀의 슬하에는 각기 성이 다른 다섯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고매한 북학선생과 바람둥이 열녀가 서로 눈이 맞았던 모양이다.

어느 날 둘이 한방에 들었는데 다섯 아들들이 문틈으로 엿보고는 저건 북학선생을 닮았지만 북학선생이 절대 그럴 리가 없고, 대신 둔갑한 여우가 어미를 겁탈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여우를 잡는다고 방을 덮쳤다. 그러자 북학선생은 죽어라고 달아나는데 그 와중에도 한발을 들고 양팔은 휘휘 저으면서 제가 아닌 척했다.

 그러다 그만 똥구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겨우 똥구덩이에서 빠져나왔는데 이번에 커다란 호랑이가 그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는 땅에 바짝 엎드려 호랑이를 제왕이라 칭하면서 아부를 해댔다.

그러나 호랑이는 너희 인간들이 마소를 키우고 잡아먹으면서 우리가 잡아먹으면 욕을 하는데 그건 너희 먹을 것이 줄어들어 그런 것 아니냐. 그러면서도 노루나 사슴 같은 우리 사냥감은 싹쓸이 하고 있지 않느냐. 기근에 서로 잡아먹는 사람이 수만인데 우리는 절대 동족에게 그런 짓 안한다. 우리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데 너희들은 무기를 만들어 서로 싸우고 죽이고 자연까지 망치려 드느냐. 돈을 형님이라 하고 장수가 되려고 식구들까지도 죽이지 않느냐. 특히 너희들은 부드러운 털을 세워서(붓) 그걸 아무 데나 휘둘러 죄 없이 사람을 헤치고 죽이니 귀신조차 곡을 하는데 이래도 내가 너를 놓아주어야 하느냐고 했다.
광주우치동물원 호랑이. |||||

 이윽고 날이 새고 북학선생이 고개를 들자 호랑이는 간데없고 일 나온 농부들만 그 꼴을 쳐다보는데 북학선생은 하늘의 높은 뜻에 고개를 숙이고 땅의 불변함에 무릎을 꿇은 거라고 지어서 말한다. 이 호질을 읽으면서 가슴이 좀 아리면서도 한 가닥 후련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연암의 호질은 시대를 건너서 그때보다 배나 심각해진 지금 우리에게 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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