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를 연구하는 영화

▲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1969년 8월8일 할리우드 비버리 힐스의 대저택에서 참극이 일어났다. 로만 폴란스키 부부가 살고 있는 집에 괴한들이 잠입해 로만 폴란스키의 부인인 샤론 테이트와 지인들을 아무런 이유 없이 살해했다. 터무니없는 비명횡사였다. 이 살인사건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 만큼 충격파가 컸다.

 쿠엔틴 타란티노 역시 이 살인사건에 관심이 많은 감독이었다. 그의 9번째 신작은 이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고 홍보되었다. 이런 이유로 관객들은 1969년 8월 8일 할리우드 비버리 힐스에서 일어났던 참극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기대하며 극장을 방문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살인사건은 거대한 맥거핀이다. 영화에서 쓰이는 용어 중 하나인 맥거핀 효과(MacGuffin effect)는 관객들이 중요한 것처럼 인식하고 따라가지만 실제로는 줄거리와 전혀 상관없는 극적 장치 혹은 속임수를 말한다. 그러니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이하 할리우드)는 희대의 살인사건이 맥거핀이 된 사례다.

 타란티노는 영악한 감독이다. 먼저 타란티노는 허구의 인물들과 실존 인물들을 뒤섞으며 이 영화가 실제의 살인사건을 다룰 수도 있고, 살인사건을 달리 해석할 수도 있는 여지를 남긴다. 이런 이유로 허구의 인물은 릭 달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클리프(브래드 피트)가 탄생했고, 실존 인물인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와 로만 폴란스키 그리고 히피들이 영화 속을 활보하는 것이다.

 여기서 허구의 인물 중 한 명인 클리프는 관객들을 유인하는 맥거핀의 인물이다. 영화는 클리프가 자신의 아내를 죽였다고 영화 현장의 사람들의 입을 통해 흘린다. 이 소문과 함께 붙어있는 장면은 로만과 샤론이 새로 이사 온 집을 뒷 배경으로 클리프가 지붕의 안테나를 수리하는 모습이다. 이때 클리프는 상의를 탈의한 모습이고 샤론은 방안에서 옷을 매만지고 있다. 그러니까 이 연출은 클리프가 샤론에게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그리고 실제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1969년 8월8일의 상황 역시 샤론의 주변에 클리프가 위치하도록 연출한다. 이때 클리프는 일자리를 잃은 상태이고, 강력한 환각제의 하나인 LSD담배를 입에 물고 집 밖을 나서기 때문이다. 이때 관객들은 클리프가 이웃에 사는 샤론에게 향하는 것은 아닐까하고 긴장하게 된다. 여기까지 관객을 유인했던 영화는 다른 방향으로 우회하며 의외의 결말을 연출한다.

 그러니까 타란티노는 실제의 역사를 왜곡해서라도 여배우를 구원해 낸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장면은 샤론 테이트가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극장에서 관객들과 함께 보며 즐거워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관객들의 웃음과 환호 하나하나에 미소를 보이고 반응하는 샤론의 모습은 순수한 열정이 묻어난다. 타란티노는 이제 막 할리우드에 발을 내딛은 샤론 테이트가 스크린을 응시하며 흡족해하는 모습을 공들여 연출하고 있고, 이를 통해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녀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할리우드’는 희대의 살인사건을 다루고자 했던 영화가 아니라 ‘배우란 무엇인가’를 묻는 영화다. 이런 이유로 ‘할리우드’는 TV 웨스턴 시리즈 ‘바운티 로’의 주연배우로 정상의 인기를 누렸으나, 이제는 ’퇴물’로 전락한 릭 달턴의 불안과 고뇌를 연출하는 것이다. 주인공을 빛나게 해주는 악역을 맡으며 존재감이 사라져가고 있는 릭은, 잦은 음주 탓에 촬영장에서 대사를 까먹기 일쑤다. 그가 이에 대해 자책하며 자괴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점프컷은, 배우의 자의식에 대해 묻고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영화 속의 아역연기자가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자 성실하게 임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장면 역시 ‘할리우드’가 배우를 연구하고 있는 영화임을 확인시켜 준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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