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마 ‘퓨’는 오늘도 무척 심심했다. 오전에 잠깐 사육사 얼굴을 본 후론 비가 와서 그런지 관람객도 하나 없고 구름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봤자 보이는 거라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뿐이었다. 구름다리위에서 왔다갔다 어슬렁거리는 도중 엉성하게 이어진 다리 사이 틈새가 살짝 벌어진 게 보였다. 저건 뭐지? 두툼하고 강한 앞발로 살살살 두드리자 그 틈새가 점점 더 벌어졌다. ‘에이 기왕 시작한 일 여기서 멈출 수 없지.’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에 이미 벌어진 틈에 이마를 갖다 대고 힘을 불끈 주었다. 그러자 녹슨 이음새가 덜컥 떨어져 나가면서 철망이 공중으로 활짝 입을 열었다. 퓨마는 그 틈으로 태어나서 난생처음으로 울타리 밖 세상으로 나왔다.

 그 동안 쭉 철창 안에만 살아왔는데 별천지가 따로 없었다. ‘그럼 어디 실실 한번 내려가 볼까?’ 본능적으로 퓨마는 뛰어 내려 길 위로 내려섰다. 바깥은 온통 푸르고 넓고 시원했다. ‘아! 이런 세상도 있었네. 그런데 어째 좀 불안하다.’ 그러면서도 본능이 시키는 대로 천천히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이들 본능은 설령 불안하다고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만큼 이성적이진 못했다. 그저 누가 말리지 않으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었다.
 
▲마취총 보자 본능적 적대감이

 한참이 지났다. 퓨는 동물원내에서 어슬렁 거리기는 게 심심해졌다. 먼발치에 평소 얼굴을 잘 알고 있는 사육사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평상시 같으면 아는 척도 하고 먹을 것도 줬을 사육사가 깜짝 놀라 황급히 오던 길로 되돌아 가버렸다. ‘왜 저래?’ 퓨는 당황했지만 가던 길을 계속 걸어 나갔다. 이제 얼른 집에 돌아가고 싶은데 갈 길이 헷갈렸다. 평생 사육사의 보호하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세상 물정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사육사만 다시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다. 배고픈데 먹을 것도 줄 것 같았다.

 이제 퓨의 목표는 자기 담당 사육사를 찾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사람들이 무더기로 그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거리를 두고 멈춰섰다. 몇 명은 평소 싫어하는 마취 총을 들고 서있었다. 그걸 보자 달아나고 싶어졌다. 퓨가 원하던 평화로운 상황이 전혀 아닌 것 같아 본능적으로 적대감이 밀려왔다. 퓨는 뒤돌아서서 산등성이로 달려 올라가 풀숲에 숨었다. 사람들은 거리를 좁혀오다가 퓨가 달아나자 더 이상 쫓아오진 않았다.

 퓨는 산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다시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었다. 무서운 개들도 곧 달려들 듯이 씩씩 콧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퓨도 그들 냄새를 맡았지만 개들도 퓨의 냄새를 맡았다. 퓨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살기어린 개들과 이상한 냄새의 사람들이 너무 두려웠다. 그들에겐 화약 냄새, 쇠 냄새, 개 냄새, 땀 냄새 등이 섞여 나왔는데 그와 더불어 공격적인 페로몬 내가 물씬 풍겨오는 게 정말 위압적이었다. 퓨는 천천히 일어서서 이번엔 골짜기로 달아났다. 그곳이 왠지 편한 것 같았다. ‘그래! 그냥 여기 짱 박혀서 무슨 일이 생기던지 가만히 버티고 있는 거야!’ 어렸을 때부터 배워온 유치한 본능이었다. 그는 어미에게 떨어져 인공포육을 받아서 아직도 전혀 성장하지 못한 유아기적 감성을 가진 어린 퓨마일 뿐이었다.
 
▲마취총 명중, 단 한번의 기회

 성난 개들과 이상한 냄새의 사람들은 퓨마가 골짜기에 숨자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궁지에 몰린 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이 그의 눈앞에까지 나타났다. 퓨마는 골짜기 막다른 구석까지 몰려서 그저 두려움에 크르릉 크르릉 하는 목으로 잠기는 듯한 신음 소리를 겨우 내면서 그들이 그에게 어떤 조치를 내려주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퓨가 거의 저항하지 않자 그를 쫓던 추격대들은 잠시 당황했다. 퓨가 공격태세를 취하면 바로 총을 쏴버릴 계획이었지만 그러기엔 저항이 너무 미미했다. “저것 거의 항복자센데 기왕이면 생포한 번 시도해 보는 게 어때! 거기 수의사님 마취 총 가지고 있지요? 한번 쏴보세요!”

 마취 총을 줄곧 들고 함께 추적하던 수의사는 그들의 배려에 거의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사실 퓨마는 사람에게 그리 사납지 않은 고양이과 동물이고 야생에서도 사람을 거의 해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런 뜻하지 않는 사고 상황에서는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경찰에 지휘권이 넘어가는 터라 현장 사육사나 수의사에게는 관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수의사나 사육사들은 할 수만 있다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다시 우리로 몰거나 마취시켜 잡아넣고 싶었다.

 오직 단 한 번의 기회였다. 수의사는 얼른 준비한 마취 총을 가지고 전면에 나섰다. 그리고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퓨마 앞으로 바짝 나가려 했다. 하지만 경찰들은 “아니! 거기서 스톱. 더 이상 다가가지 마세요. 여기서 그냥 쏘세요.” “하지만 여긴 너무 멀어요.” “아니요! 행여 공격당하면 저희가 곤란해지니 시키는 대로 하시고 자신 없으면 그냥 물러나세요.”

 할 수 없었다. 수의사는 최선을 다해 퓨마의 온 몸을 표적으로 삼고 마취 총을 쏘았다. 맞기만 하면 1~2분 이내에 쓰러질 과용량이었다. 그런데 역시 거리 탓인지 제대로 맞지 못하고 등 위에 겨우 달랑달랑 꽂힌 마취제는 절반 정도 들어가다 퓨마가 털어버리는 바람에 그만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순간 아픔을 느낀 퓨마는 다시 죽을힘을 다하여 언덕 위로 뛰어올라 산위로 달아났다. 마취제가 절반 정도 들어가 탓에 정신이 가물가물 했지만 일단 달아나라는 게 그의 본능의 외침이었다. 하지만 마취제 탓인지 긴장 탓인지 한 오 분정도 달리자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 않고 말았다.
|||||
 
▲사냥꾼 출격 불행한 결말

 “에이! 제대로 마취도 안됐잖아요. 이제 할 수 없어요. 사냥꾼들 준비 됐지요? 얼른 개들 먼저 푸세요.” 개들은 금방 퓨마를 추격해 언덕 위에 주저앉아있는 무기력한 퓨마를 둘러싸고 곧장 덤빌 듯이 으르렁대고 있었고 그러자 퓨마 역시 몸 안에 다시 아드레날린이 쏟아 올라 벌떡 일어나서 개들과 최후의 한판 전투를 치룰 기세를 취했다.

 개 3마리와 퓨마 1마리는 그렇게 서로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진짜 상대는 따로 있었다. 금방 그들을 추격해온 사냥꾼들은 지체 없이 총을 들어 올렸다. 그 총에는 고성능 망원 렌즈가 장착되어 있어 원샷원킬이 언제든 가능했다. “지금 쏠까요?” 마지막으로 경찰 대장에게 물어 본 후 그가 고개를 까딱이자 사냥꾼은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퓨마는 정확히 폐가 관통되어 그 자리에 쓰러졌고 가슴에선 울컥울컥 뻘건 선혈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후 몇 초도 못가서 퓨의 의식은 점점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했다. 그 상태도 얼마가지 못했다. 1분 후 모든 것이 조용해지고 말았다. 들리는 건 아직도 승리에 들뜬 개 소리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 처참한 광경에 누구도 한 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수의사와 사육사들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렇게 어느 비 오는 스산한 오후에 벌어진 퓨마 탈출 소동은 비극적인 막을 내렸다.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