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보다 한 발 더 내딛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2016년 출간 이후 크고 작은 이슈들을 만들어냈다. 1982년생 여성이 경험한 차별의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한 이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싸고 수많은 논의가 있었고, 옹호와 혐오 발언이 이어졌다. 이는 한국사회의 젠더감수성의 바로미터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원작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져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영화는 원작의 문제의식을 충실하게 계승하며, 대한민국의 여성이 흔히 겪는 에피소드를 한 인물의 삶에 압축시킨다. 그러나 소설과 영화는 김지영의 삶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다른 길을 간다.

소설은 김지영의 인생을 연대기 순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김지영(정유미)이 직장을 그만둔 후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는 현재 모습을 비중 있게 다룬다. 그리고 현재와 과거를 수시로 넘나들며 김지영의 과거 모습을 호출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김지영의 감정이 차곡차곡 쌓이도록 했다.

 그렇게 김지영의 삶을 추적하다보면 김지영이 대한민국에서 매우 힘들게 살아왔고, 현재의 삶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누군가의 딸로, 여학생으로, 여직원으로,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살아가며 겪는 일상의 설움과 차별은 차고 넘친다.

그렇게 영화는 지영의 수난의 연대기를 하나하나 나열한다. 딸로 태어난 이유로 지영은 남동생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았고, 스토커에게 쫓긴 후에는 치마를 짧게 입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현재는 육아와 가사 때문에 녹초가 되었다.

 지영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공기 역시 험악하긴 마찬가지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채 벤치에서 커피한잔 마시는데 ‘맘충’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화장실에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지영으로 대변되는 여성이 마음 놓고 살기에는 매우 불온한 나라임을 영화는 공들여 연출한다.

 이런 상황이고 보면, 지영의 정신에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렇게 지영은 자신도 모른 채로 빙의 상태가 되어, 시어머니 앞에서는 자신의 엄마로, 남편 앞에서는 아이를 낳다가 죽은 대학교 선배로, 엄마 앞에서는 자신의 할머니로 유체이탈 하여 그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말을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소설보다 한발 더 내딛는다. 그것은 크게 두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하나는 여성억압의 역사를 지영으로만 국한하지 않고, 지영의 엄마인 미숙(김미경)으로까지 확장시킨다는 점이다.

지영의 엄마인 미숙은 오빠들 뒷바라지 때문에 자신의 학업을 중단하고 청계천의 의류공장에서 미싱사로 일했다. 그리고 아들을 낳기 위해 세 번의 출산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렇듯 여성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미숙의 차별받은 설움이,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혼이 빠져나간 지영(할머니)의 입을 통해 말해질 때, 두 사람은 동병상련의 처지가 된다. 그렇게 두 모녀는 여성억압의 현실을 공유하며 복받친 설움을 토해내는 것이다.

 세상의 편견과 불평등을 그러려니 하고 체념하며 입을 다물었던 지영이, 부당한 것을 참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항변하고 있는 점도 영화만의 선택이다. 영화의 서두에서 지영은 공원벤치에서 커피 한잔 마시다가 ‘맘충’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지영은 이 자리를 피해 버린다. 그러나 영화는 이와 유사한 상황을 말미에 다시 배치한다. 커피숍에서 지영은 자신에게 ‘맘충’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때 지영은 가만히 있지 않고 조목조목 따지며 몹쓸 말을 내뱉은 상대에게 면박을 준다.

그러니까 지영은 세상의 부당함에 저항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변화는 중요하다. 자신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많아질 때라야 세상은 변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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