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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영 영화읽기]‘천문: 하늘에 묻는다’
임금과 천재과학자의 사랑 그리고 헌신
조대영
기사 게재일 : 2020-01-10 06:05:01
▲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조선왕조의 4대 임금인 세종은, 32년의 재위 기간(1419-1450)에 이루어 놓은 업적과 정치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고 평가받는다. 그에게 ‘대왕’이라는 칭호가 붙는 이유다. 세종이 잘했던 것 중 하나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써서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한 것도 포함된다. 장영실의 발탁도 그 중 하나다. 신하들의 극구 반대를 무릅쓰고 기생의 아들인 장영실을 기용해 그의 재능을 이끌어 낸 것은 세종의 결단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인 것이다. 그러니까 세종은 장영실을 무척이나 아꼈고, 이에 장영실은 세종의 사랑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몰두했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그러나 장영실을 기록하고 있는 역사의 가장 끝 페이지는 장영실의 실책과 그 실책에 대한 벌이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 95권, 세종 24년 3월16일의 기록을 보면 “대호군 장영실이 안여(安輿)를 감조(監造)하였는데, 견실하지 못하여 부러지고 허물어졌으므로 의금부에 내려 국문하게 하였다”고 저술돼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장영실은 문책을 받아 곤장 80대형에 처해지고, 이후 그 어떤 역사에서도 장영실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이하 천문)는 이러한 실제 역사에서 출발하여 천재 과학자 장영실이 생사는 물론, 발명품의 제작 자료에 대한 기록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의문을 남긴 채 사라진 이유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영화다. 그러니까 허진호 감독은 영화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장영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야기를 펼쳐낸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장영실이 역사에서 갑자기 사라진 이유를 세종과의 깊은 관계에서 비롯되었다고 상상한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천문’은 두 사람의 관계를 ‘벗’ 혹은 ‘연인’으로 설정하는 과감성을 발휘한다. 그러니까 영화는 이 둘을 시대와 신분을 뛰어 넘어 같은 눈높이로 같은 꿈을 꾼 친구이자 동지로 묘사한다.

 장영실(최민식)은 노비였다. 임금인 세종(한석규) 앞에서 쉽게 고개를 들을 수 없는 위치였다. 그런 장영실에게 세종은 “신분이 무슨 상관이냐.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라고 말한다. 세종은 사람의 근본에는 귀하고 천함이 따로 없다는 믿음 아래 장영실을 적극적으로 기용해 중요한 일을 맡겼고, 함께 어울리며 우정 이상의 감정을 쌓아가는 것을 영화는 공들여서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이런 이유로 영화 속에는 멜로드라마가 연상될 만큼 세종과 장영실이 감정을 밀도 높게 공유하는 장면이 차고 넘친다. 특히, 비가 내려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없게 되자, 영실이 처소의 창호지문에다가 별자리를 그려내 세종의 마음을 사로잡는 장면과 궁 앞에서 두 사람이 쏟아질 것 같은 별이 촘촘히 박힌 밤하늘을 나란히 누워 헤아리는 장면은 연인들의 농밀한 연애를 보는 듯 숨이 막힐 정도다. 그러니까 허진호 감독은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를 서로가 서로를 매우 사랑하는 사이로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왕과 천민으로 만나 함부로 눈을 마주할 수 없던 첫 만남에서부터 마침내 서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깊은 속내를 나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단계까지를 영화는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것이다.

 그렇다. 허진호 감독이 그려내는 세종과 장영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외부적인 요인으로 이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허진호 감독은 두 사람 중 누가 더 상대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시험한다. 영화는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의 희생을 제시한 후에 상황을 종결시킨다.

 ‘천문’이 놀라운 것은, 세종실록의 한 줄짜리 이야기에서 시작해, 그 실마리를 토대로 임금과 천재과학자가 상대를 존경하고 사랑한 나머지 상대를 위해 헌신하는 이야기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천문’이 ‘사랑’한다는 말이 차고 넘치지만, 정작 ‘사랑’에 대한 실천은 극히 미미한 우리 시대가 경청할 만한 영화이게 한다.
조대영<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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