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신화에 균열을 내다

▲ 영화 ‘남산의 부장들’.
 10·26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다. 그러니까 1979년 10월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한 이 사건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크게 바꿔 놓았을 정도로 중차대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김재규가 박정희를 처단한 이유는 몇 가지 설이 존재하기는 하나 그 내막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대통령 암살의 이유를 영화적인 상상력을 통해 추측해 보는 영화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10·26사건에 대한 우민호 감독의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감독은 팩트의 역사를 극적으로 재구성하기도 했고, 실존인물의 이름을 바꾸는 등 사실과 허구를 혼합해 자신의 해석을 관철시킨다.

 영화는 1979년 10월26일 궁정동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보여주고 시작한다. 이는 결과를 다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결말보다는 어떤 연유로 참상이 빚어졌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포석이다. 그렇게 영화는 사건이 일어나기 40일 전으로 돌아가서 자초지종을 풀어놓는다.

 먼저 김규평은 박용각(곽도원)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간다. 전 중앙정보장이었던 김형욱의 극중 이름인 박용각은 박통(이성민)의 오른팔이었다가 유신 이후 토사구팽 당했던 인물로 청문회와 회고록을 통해 유신정권의 비리를 고발하기 위해 미국에 머물고 있다. 이곳에서 김규평은 박용각으로부터 나처럼 “너도 당할 것”이라는 조언과 함께 “미국은 더 이상 박통을 믿지 않아. 다음을 준비하고 있어. 한국에서 자네를 만날 거야”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제 김규평은 만약 박통이 사라지면 혹시 자신이 일인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영웅 심리와 박통에게 충성하기 위해선 박용각을 제거해야 한다는 모순된 감정 사이에서 갈등한다. 결국 김규평은 박통에게 위험인물인 박용각을 처단하며 충성을 실천한다. 그러나 박통은 그 충성심을 도외시하고 경호실장 곽상천(차지철의 극 중 이름)을 편애한다.

 그리고 한술 더 떠 곽상천(이희준)은 총애 받는 자신의 위치를 악용해 노골적으로 김규평을 무시한다. 그러니까 김규평은 군 후배인 곽상천의 월권과 자신에 대한 무시, 그리고 아첨하는 곽상천에 대한 박통의 편애를 견딜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결국 김규평은 충성심, 배신감, 권력을 향한 욕망, 그리고 후배에 대한 분노 등 복합적인 심리에 휩싸인다. 그렇게 김규평은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한다. 그러니까 우민호 감독이 해석하는 박정희 암살사건은 뚜렷한 대의나 논리적인 인과관계에 따라 벌어진 것이 아니라, 인정투쟁에서 좌절한 한 인간의 복합적인 감정이 극단적인 결과를 불러왔음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민호 감독은 ‘남산의 부장들’을 통해 ‘박정희 신화’에 균열을 내고 있기도 하다. 영화 속의 박통은 18년이라는 장기집권에도 끝내 권력을 내려놓지 않고, 영원토록 대통령을 하고자 불안에 휩싸인 예민한 모습을 노출한다. 그리고 박통은 정권 연장을 위해 가신들을 철저히 이용하면서도 눈 밖에 나면 철저한 응징을 했던 것으로 암시되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다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 임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해”와 같은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알아서 궂은일을 처리하도록 하는 책임회피용 말을 일삼기도 한다. 그러니까 영화는 박통이 감언이설로 아랫사람들을 조정하는 야비하고 비겁한 리더였음을 연출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남산의 부장들’이 해석하는 한국현대사의 두 인물인 김재규와 박정희는 ‘위대한’ 인물이 아니다. 그러니까 김재규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던 것이 아니며,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유지와 장기집권에 혈안이 되어 용인술을 펼쳤음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남산의 부장들’은 ‘영웅’이 아닌 ‘인간’을 담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조대영<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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