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는 충의공의 정실 부인이 됐다.
論介(논개)는 신안 朱氏 후손, 媤家는 화순 !

입력시간 : 2015. 10.11. 13:38

화순에 있는 논개 사당과 초상화

최경회 선생 순절 422주기 제향(祭享)행사가 11일 화순군 동면 충의사에서 지역주민 등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거행 됐다.

이번 추모제에서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 동안 무관심 속 방치돼 왔던 義菴(의암) 논개(최경회 선생의 부인)의 추모제도 함께 봉행됐다는 것이다.

논개의 추모제를 최경회 선생과 함께 봉행한 이유는 충분하다.

그 이유를 따지자면 몇 가지를 역사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우선 논개에 대한 잘못된 인물 사전 및 역사 기록을 살펴보자.

먼저 論介(논개)는 조선 14대 왕 선조(宣祖) 때의 기생(妓生)이다.

성은 주(朱)씨. 장수(長水) 출신(出身)이며, 진주(晉州)의 관기(官妓)로 표기 됐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당시는 적장을 죽이기 위해 잔치 장소에 잠입하기 위해 기생으로 위장한 것이다.

때문에 “논개(?~1593)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의 후처로, 임진왜란 때 최경회가 전사하자 일본군이 촉석루에서 벌이는 잔치에 기녀로 참석해 일본군 장수 게야무라 로구스케를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 의암 또는 의녀로 불리우고 있다” 고 기록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화순에서 추모제를 봉행해야 할 이유도 충분하다.

우선 최경회(崔慶會) 장군이 살아 생전에 가장 사랑했고, 그 후 정실 부인으로 합궁한 의미가 있다.

그 다음, 최경희 선생의 태생지가 화순이니, 당연이 지아비를 따라서 온 것이다.

그리고 논개의 성이 주씨인데, 신안 주씨의 한국 본관인 능성(현재의 능주)이 공교롭게도 낭군과 같은 태생인 능주와 관련돼 있다.

또한 조선시대 아녀자는 시집가면 모든 것을 시가에 따르게 돼 있다.

이와 같이 논개는 출가 외인인 해주 최씨 문중이며, 최 씨의 출생지인 화순이 시집이다. 며느리로서 최경회 장군과 함께 같은 사당 내에 모셔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

논개의 사당은 현재 출생지, 친정인 전북 장수와 순절한 진주 촉석루에 있다. 그럼에도 화순에 있는 최경회 장군 사당에서 나란히 봉향하는 것도 이같은 뜻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개는 당연히 화순에서 봉향하고 그를 기리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논개와 최경회 장군의 애절한 사랑의 흔적을 더듬어 보자.

선조 25년 최경회 당시 장수현감의 본실이 사망하고, 후실인 논개와 신혼의 단꿈도 깨기 전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당시 최경회 현감은 소수의 관군을 이끌고 전라감사 이광이 영도하는 전라도 구원 군에 편성되었다.

선조 26년 6월 최 현감은 병마 절도사로 임명되어 진주로 부임하면서 부인 논개와 함께 2차 진주성 싸움에 참전했다.

진주성이 함락되고 패하자 최경회는 나라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렇게 최 선생과 논개의 맺지 못한 사랑의 한을 화순에서라도 풀게 해 주는 게 자손들의 소임일 것이다.
최재승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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