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운동의 사례들은 종종 소수 권력자들이 무분별하게 휘두른 권력에 의한 ‘권력형 범죄’라는 식으로 프레이밍화 되는 경향이 있다. 성폭력 상황에서 작용하는 권력관계는 지위, 나이, 계급, 인종 등 다양한 변수들로 구성되지만 핵심은 물론 성별권력관계다. 이 사건들은 본질은 ‘성적’인 문제다. 당연한 이야기를 다시금 환기시키는 이유는, 넘쳐나는 미투운동에 관한 논의들 중에 성차별 자체에 대한 진지한 문제제기가 조금이라도 더 힘을 얻기를 바람에서이다. 한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성별권력구조와 여기에서 기인하는 성차별이 어느 때에는 강간으로, 어느 때에는 성추행으로 튀어나온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인식하지 않는다면, 미투운동은 그저 소수의 ‘변태적 권력자’들을 처단하는데 그치게 되고, 나머지 사회 구성원들에게 ‘변태적 권력자’를 물리쳤다는(나는 저들과는 다르므로 이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위장된’ 위안을 가져올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고발이 전반적인 성차별 구조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을 운동권내 성폭력 가해자 고발 사건이었던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 그리고 고 장자연 사건 등에서 이미 뼈아프게 겪어왔다.
 
‘불쌍한 피해여성’ 프레임에 따른 마녀사냥

 성폭력 가해자가 단지 소수의 권력자가 아니듯이, 피해자의 모습이 다양하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다. 고은 사건에서 피해자의 평소 행실이 거론되거나, 안희정 사건에서 피해자-가해자간 암묵적 합의 여부가 거론되는 사례 등은 성폭력 피해자를 인식하는 우리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일례들이다. 성폭력은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성을 매개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이뤄지는 모든 가해행위”를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폭력의 사례들은 무궁무진 다양하며, 성폭력 피해여성의 경험 역시 다양하다. 성폭력은 성애적 상황, 권력 관계의 문제, 때로는 물리적인 충격 등이 중첩된 복합적인 결과로써 피해자 자신이 그 상황을 빠르고 명료하게 언어화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데 피해자의 언어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보다도 성폭력 피해를 사회가 맥락화, 내러티브화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성폭행 사건을 해석하는 관점은 ‘위선적이고 사악한 남성 권력자 vs 권력자의 희생물로써 불쌍한 피해여성’이라는 구태의연한 이분법에 매달려있다. 그리고 이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여성들은, 즉 사회의 상상력 속에서 ‘불쌍한 피해여성’에 걸맞지 않는 (대다수의) 여성들은 진의를 의심받거나 더 구체적인 피해사실을 증명할 것을 요구받는 방식으로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
 
성폭력은 성별권력구조에서 기인하는 것 

 ‘100인위’ 사건이나 고 장자연 사건은 소수의 가해자들에 대한 비난으로 모든 쟁점이 몰림으로써, 성별권력구조 자체를 문제 삼는데는 실패했다. 성폭력 문제는 이윤택, 고은, 조재현, 안희정, 정봉주 등의 특정 개인의 문제도 아니고, 이슈화 될만한 특정 사건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남초 사이트에 도는 여성 몰카를 보며 아무런 죄의식 없이 킬킬대는 남성들이나, 카톡방에서 신입생 여성들의 외모품평을 하는 대학생 남성들, 여성들에게 칭찬이랍시고 외모 품평을 하는 직장 상사 남성들의 모습 등 일상적이라는 의미에서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보통의 풍경들 역시 성폭력이다. 이 일상의 풍경들이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차별적인 것인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물론 미투운동의 사회적 파급력은 이전의 사건들과는 비할바가 아니다. 들불처럼 번진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소나기는 예고없이 내린다. 순식간에 불씨가 사그라들기 전에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 가해자들의 목록이 길어질수록 진영논리, 음모론, 성폭력 사건의 포르노그래피적 재연 등 잡음은 강해지고 피해자들의 상처 역시 깊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미투운동이 가져온 변화의 고삐를 제대로 잡고 제어하지 않으면, 용기를 칭찬 받아야할 피해자들은 칭송받기는커녕 이전과 같이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할테고, 남성들은 이 불편함에서 해방되어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몇몇 가해자를 처벌하고 유의미한 법적 판례를 남기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일상의 성차별, 젠더질서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이 질서를 묵인하는 우리 사회 구성원 누구에게도 ‘가해자성’은 존재함을 인정해야 한다.
현백<광주드림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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