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은 도선국사의 예언을 받고 송악에서 태어났다. 후고구려 궁예의 장수가 되어 후백제의 요충지인 나주를 점령하고 최고 관직인 시중 자리까지 승진했다. 배현경, 신숭겸 등 부하들이 민심을 잃은 궁예를 대신하여 왕건을 왕으로 추대했다. 왕건은 궁예를 축출하고 고려를 건국하고 후백제와 신라를 무너뜨리고 신라 문무왕에 이어 2번째로 한반도 남쪽을 통일하고 발해와 더불어 남북국시대를 열었다.

 태조 왕건은 호족들의 난립을 억제하기 위해 호족가문의 딸들과의 혼인정책을 추진하여 6명의 왕후와 23명의 후궁으로부터 34명의 자녀를 낳았다. 왕건의 제1왕후인 정주출신 신혜왕후 류씨는 후사가 없이 사망했고 제2왕후인 나주출신 장화왕후 오씨는 2대 임금 혜종을 낳았다. 제3왕후인 충주출신 신명왕후 유씨는 3대 정종과 4대 광종을 낳았다.
 
▲고려 2대 왕 혜종의 생모

 왕건이 궁예의 수군 장수로 후백제의 배후를 얻기 위해 나주에 진출하여 군사를 이끌고 행군을 하다가 금성산(錦城山) 남쪽에 상서로운 오색구름이 서려 있는 곳으로 말을 타고 달려갔다. 완사천에서 빨래를 하던 아가씨에게 물을 청했는데 바가지에 버드나무 잎을 띄워준 인연으로 청혼을 하고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조선 세종 때에 제작된 ‘고려사’에 기록됐다.

 장화왕후는 왕건의 제2왕후이며 오다련의 딸이자 혜종의 생모이다. 오다련은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나주의 호족이며 장화왕후는 왕건이 즉위하자 왕후가 되었고 박술희의 후원으로 아들을 태자에 책봉시켰다. 왕건이 사망하자 태자가 2대 혜종으로 즉위했다

 2대 혜종은 나주에서 왕건과 장화왕후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혜종은 10세에 태자로 책봉되어 후백제 정벌에 종군하며 고려창업에 전공을 세웠다. 태조의 적통을 이어 받아 32세에 등극했다. 혜종은 왕위싸움으로 시해 위협에 시달리다가 재위 2년 만에 34세의 나이로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혜종의 장남 흥화군과 차남 왕제는 나이가 어려서 왕위에서 밀려났고 왕건의 차남이자 혜종의 이복동생인 정종이 즉위했다.
 
▲전라도, 전주와 나주의 첫 자 따다

 완사천(浣紗泉)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하는 나주시 송월동에 있는 작은 옹달샘이다. 장화왕후 오씨와 혜종을 기리는 흑룡사와 혜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모셔온 혜종사는 모두 소실됐고 전설만 전해진다. 왕건의 손자인 8대 현종은 1010년 거란족의 2차 침입 때 나주까지 피난갔고 1018년 나주목을 설치했다.

 전라도(全羅道)는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앞 글자를 따서 지명이 유래했다. 나주는 예부터 쌀, 누에고치, 면화의 산지로 삼백지방(三白地方)이라고 하였다. 김홍집 내각이 단발령을 발표하자 지나가던 행인들의 상투를 강제로 자르던 정5품 참서관 안종수가 의병들에게 살해되었다. 관찰사 윤웅렬이 광주로 도망가서 나주관찰부는 폐지됐다.

 나주는 영산강이 흐르는 곡창지대로 나주곰탕, 나주배, 영산포홍어, 금성관 등이 유명하다. 금성관은 조선 성종 때 창건되어 전패와 궐패를 모시고 사신과 관리를 접대하던 곳이다. 금성관은 우리나라 객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며 보물 제2037호로 승격됐다.
서일환 <역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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