쭉쭉 뻗어 하늘을 빗질하누나!

 울산문화원에서 대인시장의 사례와 지역문화 콘텐츠의 발굴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지도를 들춰 보았다. 가는 방법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기차를 이용하여 오송에서 다시 울산으로 가는 방식, 광주에서 대구로 가서 대구에서 KTX로 환승하는 방식, 광주에서 울산으로 가는 논스톱 버스로 가는 방식, 자가용으로 가는 방법까지. 체력 소모와 시간 낭비가 가장 적은 효율을 찾고자 하는데 함께 만나자고 하는 장소가 역으로부터 40여 분을 택시로 가야하고 요금은 4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결국 모든 경우의 수를 제외하고 자가용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차를 달린다. 광주에서 대구까지 가는 달빛고속도로는 휑하니 비어 있다. 요즘 내 차는 물이 오른 것 같다. 밟으면 그냥 삽시간에 도달한다. 4시간 30분쯤 소요된다는 시간이 줄어든다. 대구, 경산, 경주를 거쳐 울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울산은 이번이 세 번째다. 모두 일 때문에 갔고 그 동네를 구경한 적이 없었다. 일만 보고 나오는 경직된 만남은 그 지역에 대한 상상을 막아 버린다. 달리는 차 안에서 울산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떠 올린다. 반구대의 암각화, 처용무, 태화강, 태화루, 조선소, 고래. 거기까지에서 멈춘다. 하긴 한 지역을 연상하는 키워드가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데. 내가 사는 광주는 어디까지 연상된 지역 이미지가 있을까 싶어 또 안타까워한다.

 한적한 바닷가에 도착해서 논의의 자리를 마치고 울산의 내부로 들어간다. 반구대를 찾아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탓이다. 선사시대의 삶의 모습과 주술적 의미를 담은 암각화가 표상하는 것은 역사를 탐구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터이다. 그중에 고래사냥이라는 원초적인 조각은 그대로 울산의 오늘이 되었다. 고래로 유명한 도시이자, 고래 잡을 때 배를 활용하는 것처럼 조선소가 들어서 울산의 경제를 짱짱하게 만든 법고창신이라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남도에는 이런 암각화가 거의 없다. 여수의 오림리 고인돌에 새겨진 칼의 모습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인돌의 본향답게 고인돌에 부장된 유물은 국보가 되고 동시대의 첨단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원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을 오늘에 활용하지 못한다. 무등산의 분청사기 도요지가 있어도 그 사기 안에 광주의 명문이 있고, 피카소풍의 도상이나 이중섭 풍의 그림이 담겨 있어도 별 무관심이다. 내 안의 소중함을 다시 깊이 보고 오늘에 활용해 보는 것이 중요할 것인데 이제 무등산에도 광주시가 나서서 ‘풍류남도 나들이’라는 사업을 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겨질 뿐이다.

 태화강 삼각주에 절로 생겨난 대숲

 

 반구대 생각을 접고 들어선 시내에는 태화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그런 강물이 금년 태풍에 심하게 망가졌다. 바닷물이 역습하고 역류하는 틈에 백여 대의 차들이 둥둥 떠다니는 참사가 일어났다. 강변을 다듬어 운동장도 만들고 공원도 조성했는데 많이 망가졌다. 그런 참혹함을 만회하느라 국화꽃으로 공원을 장식하고 다양한 조형물도 만들어 두었다.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공원을 산책하고 건강을 증진하느라 여념이 없다. 공원 한 켠의 운동장에서는 어느 단체의 단합대회가 온 고을이 시끄럽도록 멈추지 않는다. 가수를 선발하고 미인을 선발한다. 그 소란함을 제치고 대숲에 들어선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느 곳이든 푸름이 있는 곳은 사람을 청신하게 한다. 태화강의 삼각주에서 절로 형성된 대숲은 시민들의 산책로이자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사진의 스팟으로도 빼어나다. 지금 당나귀귀가 된 그녀도 여기에 들렀다. 대통령이 들른 곳에는 자랑스럽게 기념물을 만들었다. 범인들의 걸음보다 특수한 누군가가 들리면 남기려는 형식은 자꾸 고까워진다. 작년 대인시장에도 들렸는데 상인회에서는 기념조형물을 만들려고 하면서 내게 의견을 물어왔다. 1982년엔가 담양군 고서면 성월리 마을에 전두환 대통령이 최초로 민박을 했다하여 세워둔 비석은 여러 번 오함마를 맞았고, 지금은 망월묘지에서 짓밟힘을 받고 있다고 말씀 드렸다. 기념물은 세워지지 않았다. 대신에 이번 국정농단 사태로 그녀가 방문하여 특수를 누렸던 몇 곳의 시장에서는 자랑스럽게 걸어두었던 사진을 다 폐기하고 있다. 여행길에서 만나는 특수한 풍경중의 하나가 바로 기념비 같은 것이다. 누군가는 한 줄의 시로 이 공간을 음미하고 가는데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 사람들은 연고대기의 일환으로 표석을 세우고 찬사를 마지않는다. 설령 이를 이해하더라도 풍경을 헤치고 들어서는 기념물은 옳지 않다.

 

 악기의 숲, 무기의 숲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며 대숲 안을 거닌다. 삼각주에 형성된 숲이니 그야말로 비옥한 땅에 뿌리를 뻗고 있는 대나무군락이다. 건강하다. 쭉쭉 뻗어 하늘을 향해 몇 점 바람에 빗질을 하고 있다. 어느 해였던가 황사 가득한 서울에 있다 소쇄원에 들러 어느 잡지사 기자에게 이 공간을 안내할 때 농담을 던졌다. 담양의 하늘이 왜 이리 푸른지 아느냐고? 어리둥절하는 기자에게 하늘거리는 대나무의 우듬지가 하늘을 빗질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반도의 하늘을 맑고 푸르게 하는 대숲이 여기에도 있음에 동병상련을 느끼고 숲안을 보니 가장 늦가을에 꽃피우는 차나무가 있다. 하얗게 피어있는 차꽃을 보며 죽로차 한잔이 생각이 난다. 잘 정돈된 산책로에는 대빗자락 자국 선연하다. 저쪽으로 나이 드신 어머니 두 분이 새벽 산사의 도량을 쓸 듯이 흙바닥을 쓸고 계시다. 누군가의 땀방울이 또 누군가에게 신선한 활력을 주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누군가는 지금 절망만을 안겨주고 있다. 대저 얼마나 많은 촛불이 타올라야 할 것인지. 소설가 김훈은 담양의 대숲에서 악기의 숲, 무기의 숲이라는 두 가지의 명제로 숲을 노래했다. 평화시의 대숲과 민초들의 삶이 억눌리고 따돌림 당하고 생존에 위협을 느낄 때 백성들은 대숲에 들어갔다. 일상의 대숲은 낫을 들고 들어가지 못하고 톱으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 하지만 전시의 대숲에는 낫이 통용된다.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참으로 간결하게 낫은 대나무를 무기로 만든다. 이런 저런 뒤숭숭한 생각을 제치고 다시 대숲의 밖으로 나온다.

 

 깨끗해진 태화강 기러기들 유유자적

 

 태화강이 흐른다. 전망대가 있고 그 아래로 기러기들이 유유자적 노닐고 있다. 맑아진 태화강의 증표라고 할 수 있다. 태화강의 수질개선 노력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섬진강처럼 연어의 치어를 방류했고 그런 연어가 돌아오기 시작했으며, 은어도 이 맑은 물에 서식하니 전국 하천 생태 복원의 교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철새 몇 마리가 모래톱에서 깃털을 가다듬고 있고, 시민들은 그런 철새가 있는지 없는지 무감하게 연신 걷기만하고 있다. 새들의 세상과 인간의 세상이 함께 공존하고 있어도 서로 눈을 맞추지 않으면 평화로움이 깨지는 세월이 되었다. 조류인플루엔자가 마치 철새들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인간 세상의 오염원을 철새 때문이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는 대규모의 농장 사육이 가져온 자연과의 부조화는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 영혼이 자연과 합일했던 선인들은 철새를 보며 신성함의 상징이자 땅과 인간과 수중세계의 일을 하늘에 고하는 메신저로 철새를 생각했다. 지금은 관광기념물 정도로 취급되는 솟대가 마을의 초입에서 그 역할을 했던 것이다. 모래톱의 새와 물위를 헤엄치는 새를 보고 있으니 하늘에서 방금 내려온 철새 한 마리 집단으로 공격을 한다. 이 새들에게도 삶의 영역과 집단이 있음을 금방 알 수 있게 한다. 해가 어둑하니 내려앉는다. 울산의 밤이 시작된다.

 

 지역 상징 역사·증표가 있다는 것

 

 십리 대숲을 빠져나와 광주로 돌아올 궁리를 한다. 애초에 태화루까지 보려했지만 원래 존재하던 누각이 아니라 밀양의 영남루를 오마주했다고 해서 심드렁해진 것이다. 지역을 상징하는 역사와 증표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힘을 가진다. 광주에도 광주공원과 사직공원 사이에 커다란 누각이 있었다. 희경루라고 했다. 기쁘고 경사스러운 소식을 전해주는 누각은 광주천과 광주를 바라보며 존재했었지만 사라지고 말았다. 광주박물관 관장이었던 조현종 선생은 “희경루 난간에 기대어”라는 글을 통해 누각의 복원을 열망했지만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1567년 시회를 가졌던 희경루 방회도라는 그림까지 존재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없는 자원도 만들고 이야기도 지어내는 시대에 광주는 있었던 것도 지워내며 살아왔다. 남광주역사가 그러했고, 지금 옛 도청의 모습이 그러했으며, 상무대 또한 그러했다. 울산이라는 도시, 산이 성처럼 둘러쳐진 곳이라는 뜻을 지닌 그 이름에서 과거의 것을 더욱 빛내려하는 의지와 오늘 존재하는 것의 가치를 고양하려는 사람들의 열망을 읽어본다. 천변로를 따라 나오는 길, 수천마리의 까마귀가 대숲과 전봇대 사이를 비상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 다음번 울산행에는 장생포의 오래된 고래와 처용도 만나야 되겠고, 반구대도 꼭 들여다보아야 그나마 울산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구나 싶어진다. 한 도시는 또 다른 도시의 거울과 같음을 느끼면서 멀고 먼 곳으로부터 낯선 광주로 돌아왔다.

글·사진=전고필 <여행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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