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23살 먹은 광주 비엔날레가 지난 6일 문을 열었다. 기존의 중외공원 비엔날레전시장 외에도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의 창조원을 활용하고, 이강하 미술관을 비롯해 광주의 국군통합병원, 무각사 같은 곳으로 시내 일원에서 열리고 있다.

 상상된 경계들이라는 타이틀 안에서 나는 두 개의 시와 노래 한곡을 떠 올렸다. 함민복 시인의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라는 시와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다.

함 시인의 시에서는 분단이라는 처절한 아픔 사이에서도 아랑곳 하지 않고 피어나는 꽃들, 그 꽃을 북한의 초병도 남한의 초병도 이산가족들도 위정자들도 볼 진데, 화원의 꽃같지 않고 야생성과 더불어 생명의 복원성까지도 말없이 표정 짓는 숙연함 같은 것이 내재되어 있다.

그런 식물이 제 아무리 커다란 벽이라도 타고 올라가 마침내 모든 허위와 가식을 극복해 내는 담쟁이와 같은 힘을 함께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 두 개의 시는 영화 ‘우리학교’에서 ‘분계선 코스모스’라는 OST 안에서 스르르 녹여진다. “곱다고 보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어이하여 너는 여기에 피었느냐. 임진강 기슭에 새하얀 코스모스 한들한들 남북을 오고가는 그 바람에 설레고 싶어서 피어났느냐.”

김명숙 선생님이 만든 이 노래의 울림에 나는 한동안 입에 달고 다녔다. 꽃을 보면 누군가는 김춘수의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 너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다’는 시를 읊조리겠고, 나는 두 분의 시와 임진강의 코스모스를 떠올리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처절한 곳들의 이야기
 
 이것은 내 몸에 이미 분단이 익숙해져 있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집안에 이산가족 한분 계시지 않지만 저 놈의 분단선은 늘 거둬버려야 할 숙명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그런 내게 ‘상상된 경계들’이라는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는 사실 상상 보다는 현실처럼 다가왔다. 최근 제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민들과의 갈등, 퀴어축제에서 드러난 다름과 차이에 대한 불가능한 이해력, 난민 수용소 보다 못한 이주 노동자들의 처우, 내전사태로 난민이 되어버린 분쟁지역의 사람들, 디아스포라 등. 모두 뉴스를 통해 혹은 현장에서 경험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일련의 갈등을 바라보는 작가와 큐레이터의 시선을 주목하며 나는 지난 일요일 원주에서 찾아온 벗들과 비엔날레 전시장을 찾았다.

광주시민으로서 응당 찾아야 하는 의무감도 있지만, 이렇게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온 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관광을 전공하고 유사한 활동을 하는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기에 그들이 머무는 동명동의 게스트하우스에서부터 동행했다.

 물론 이들의 전날 행보는 대인예술시장의 야시장 별장을 관람하는 것이었고, 그 중 미술품 경매 행사에 적극 참여하여 프린팅된 박수만 작가의 작품을 두 점이나 구입한 것도 즐거움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찾은 일요일의 비엔날레 본전시관은 관람하기에 쾌적했다. 사람들이 아주 많지도 않고, 그렇다고 썰렁하지도 않았다.
연령대로 보면 20에서 30대가 가장 많았다. 연인들이 관람하는 모습은 아름다웠고, 연세든 분들이 벗들과 서너 명 이런저런 얘기를 도란거리며 작품과 자신의 경험을 반추하는 모습도 멋져 보였다.

 나 또한 작품 하나하나에 눈을 맞추며 최선을 다해 작품의 세계에 몰입하려고 노력했다. 설치된 작품이나 사진·영상·아카이빙된 자료들은 대부분 세상에서 가장 처절한 곳들에 대한 이야기와 이 처참함을 자신의 영달로 가져가는 제국주의자들의 권력욕, 과시욕으로 투영되어 있었다.


 어느 궁전이 추구하는 미학은 왕실과 권력의 위대함을 빌미로 국민을 내려 보는 오만함이 있었고, 그것을 구축하고 지켜나가기 위한 기저에는 가혹한 수탈과 노동과 인권유린이 함께 한 것임을 알면서 또 작품을 통해 다시 느꼈다.

칸막이 안에 상영되는 영상물들도 유사했다. 독특하게 눈에 들어오는 작품은 칸막이 없이 커다란 스크린에 노출된 화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영상물이었다.

그 스스로 조국을 등져야 했던 참담한 인생의 비행사가 이제 지구만으로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지각하며 화성에서 지구의 미래를 지속하려는 시도, 한편으로 가상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책임해 보이기도 했다.
 
▲통합병원을 전시공간으로 섭외한 이들에 경외감
 
 지구의 온난화가 가져온 각종의 폐해들, 대량소비 사회, 육류 중심의 사회가 안겨준 각종의 질병과 착취당하는 노동력. 권력의 더 큰 권력을 향한 욕망과 과시욕 등이 전시관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제3세계 신민들의 신음이 전시장에서 하소연 하고 있었다.

씁쓸한 지구 세계의 모습과 마주하는 것이 심드렁해졌지만 본 전시를 보는데 2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이제 전시장의 밖으로 나가야 한다. 전시관 광장에는 비계를 세우고 만장을 설치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날 완성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번 주에는 광주시민과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분들의 열망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 내게 재방문의 동기를 부여했다.

 전당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화정동의 국군통합병원으로 갈까 망설이다 아는 분에게 여쭸더니 오후 3시가 화정동 국군통합병원의 병실 전시 특별전을 오픈한다고 한다.

건물이 노화되고 위험하기 때문에 도슨트와 안전관리요원를 따라 진입할 수 있는 특성 때문에 3시, 4시, 5시 이렇게 세 번 진행된다고 했다. 전당을 포기하더라도 그곳에 가는 게 우선 순위였다.

문화현장에서 일하는 원주의 지인들을 배려하자면 그러했다. 전당은 아무 때나 갈 수 있지만 그곳은 특별하게 시간을 내지 않으면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통합병원으로 옮겨 기다리는 시간에 병원 내부의 건물과 길과 경관을 둘러보았다. 5월 광주의 처절한 흔적이 베인 곳이다. 부상자들을 이송하여 치료하면서 고문을 병행했던 곳이고, 그 건너편 서구 청소년문화의집은 보안대가 사용했던 공간까지 가지고 있는 곳이다.

아직도 나무로 만든 전봇대가 서 있고, 보일러실의 굴뚝이 우람하게 서 있다. 콘크리트 막사와 병실과 정비소 등이 이어져있는 전형적인 군부대 건물이다.

전시장이 된 국군통합병원.

 이곳을 전시공간으로 섭외하고 실현한 이들에게 경외감이 들었다. 이윽고 3시 우리는 도슨트를 따라 병원 건물로 들어섰다. 병실은 계단과 복도로 길게 이어졌다. 비바람에 풍화된 유리창은 을씨년스러웠는데 거기에 막자란 풀이 유리를 넘어 실내로까지 뻗어오고 있었다.

유리도 녹여내는 자연이 힘이 또 거대해 보였고, 이런 공간을 그대로 방치한 우리는 또 누구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족히 백여 미터를 걸어 들어가니 정신병동의 쇠문이 보인다. 그리고 감방 같은 병실이 벽돌처럼 이어져 있다. 대체 이 안에 무엇을 배치했을까 싶어 궁금하던 차에 작품이 나타난다.

낡고 오래된 한옥의 대들보가 방 하나에 하나씩 자리하고 있다. 단박에 퍼뜩 이는 생각은 누군가가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을 때 그에게 집을 받쳐주는 기둥과 같은 정신적 지주가 되고픈 작가의 생각이 이렇게 자리 잡았음을 느끼게 되었다.


▲영상과 아카이빙 통해 새로운 시대 제시
 
 간혹 마루의 판자도 배치된 곳이 있었다. 똑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편하게 좌정하라는 의미로. 또 하나의 설치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운송중이라 며칠 후에 볼 수 있다고 해서 관람을 마치고 자율관람이 국광교회로 올라갔다.

무등산이 정면으로 보이는 언덕 위에 국군 광주 통합병원의 교회는 있었고, 낡은 종탑에 종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예배당으로 들어가니 수많은 거울들이 설치되어 있다.

병실과 화장실, 원내시설에 남아있는 모든 거울을 여기에 배치했다고 한다. 거울에서 나는 이 거울을 보며 청춘의 뜨거운 시대를 부상이나 질병으로 여기 있어야 했던, 내 단골 복사 집인 경기복사의 아들내미를 찾아왔던 어느 뜨거운 여름도 기억해 냈다.

기억의 편린은 여기 집단적인 거울 모음으로 거대한 역사가 되는 것 아닌가 싶어졌다.

 병원에서 관람은 총 사십여 분이 걸렸다.


 이제 시간이 있으니 전당으로 옮겼다. 창조원의 건물에 6개 공간에 전시가 펼쳐졌다. 이름을 들어봤음직한 큐레이터부터 가까운 사이의 큐레이터와 지인들의 작품이 있는 곳인지 전시를 보는 내내 편안했다.

본 전시에서 현실의 오마주를 보았다면 전당의 작품에서는 어떻게든 이 현실을 넘어서는 미래를 그것도 여기를 버리고 떠나지 않고, 여기 지구와 내 고향과 내 사는 터전을 가꾸어 갈려는 강렬한 의지의 표상들이 있었다.

 정유승 작가의 집창촌을 담아낸 절규가 아팠고, 박상화 미디어 작가의 무등산 시리즈가 따뜻했다. 박일정 작가의 도자기로 만든 식물에서 모든 만물에 깃든 영혼이 광주에서 화합하는 날을 기대해 보기도 했다.

광주에서 이렇듯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고, 그림과 영상과 아카이빙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제시하는 것이 나는 늘 자랑스럽다. 그리고 본 전시를 광주나 전라도 출신이 한번 제대로 끌어 보는 날을 고대하며 주마간산의 비엔날레 관람기를 마친다.
전고필<대인예술시장 감독,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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