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입고 타고…가축에 기대다

 ▶낙타, 말, 양, 염소, 소

 ‘그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사람 흔적 없는 초원에서도 풀을 뜯었고, 사람이 사는 게르 주변에서도 자유롭게 돌아다녔으며, 게르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기도 했다. 심지어 제법 도시인 마을 버스 정규장에 서 있기도 했다. 그들은 소, 말, 양, 염소, 낙타, 순록 등이다. 차량이 다니는 도로는 종종 집으로 돌아가는 소 떼나 염소·양 떼들에 의해 점령됐다. 도로의 주인은 차나 사람이 아니었다. 멀리서 본 ‘그들’은 자유로워 보였고, 평화로워 보였다. 몽골에서는 말, 소, 양, 염소, 낙타를 5축(畜)이라고 한다. 몽골의 주요한 가축으로 ‘사람’보다 더 자주 만났다.

 몽골의 5축 중 하나와 체온을 나눌 기회가 생겼다. 정신없이 어디론가 이동하던 중 운전사 나츠가 씨가 낙타들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차량을 세운다. 엘승타사르하이 사막에서의 낙타 체험. 그렇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낙타 등에 오르게 됐다.

  눈이 크고 속눈썹이 예쁜, 쌍봉낙타들이 어느 순간 앞에 앉아 있다. 멀리서만 봐왔던 낙타가 바로 코앞에 앉아 있다. 각자 배정된 낙타 앞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당황하는 우리에게 낙타의 주인은 손짓 등으로 낙타 등에 타는 법을 코치해준다. 낙타 등에 있는 혹 사이에 앉아서 앞쪽 혹을 두 손으로 잡으라고. 앉아 있는 낙타가 앞발부터 일어나면 몸이 뒤로 훅 뒤로 쏠리니까 꼭 잡아야 한다고(몽골말인데 신기하게도 다 알아 먹었다.). 벌써 일어난 낙타가 있는지 앞 뒤에서 비명소리가 요란하다. 처음으로 잡아본 낙타의 혹. 따뜻하고 말랑하다. 낙타의 등을 보고 있자니 왠지 애처롭다. 관광객 태워 나르느라 애쓰는 것 같아 안쓰럽다. 괜히 혹을 쓰다듬는다.

 몽골인에게 낙타는 ‘사막의 배’와 같다고. 낙타는 주요한 이동수단으로 몽골인들과 4000년 동안 동고동락했다. 낙타는 물 저장기관이 따로 있어 200리터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고. 낙타는 인간에게 이동수단으로 이용되지만 낙타의 털, 낙타의 젖, 낙타의 배설물, 낙타의 고기까지 모든 걸 인간에게 주고 간다. 나츠가 씨에 따르면 “죽으러 갈 때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리는 동물이 낙타”라고.

 낙타의 고삐를 이끌고 앞서 가는 주인이 낙타에게 노래를 불러줬다. 오랫동안 낙타 등의 체온과 감촉이 생각날 것 같았다.
 
 ▶양을 잡아 먹다

 관광지로 유명한 홉스골 여행자 게르 캠프에서 며칠 묵게 됐다. 홉스골은 바이칼 호수 다음으로 큰 호수가 있는, 몽골사람들에게는 신성한 곳이다. 호수 면적은 2760㎢, 둘레는 380㎞. 수심은 최고 262m로 중앙아시아에 있는 호수 가운데 가장 깊고, 호수 전체 면적의 70%가 100m를 넘는다고. 게르 캠프에서 묵은 지 이틀 째. 캠프에서 몽골의 전통 음식인 ‘허르헉’(양고기와 야채를 달궈진 돌과 함께 냄비에 넣어 쪄내는 몽골의 전통 음식)을 저녁으로 제공한다고 했다. 몽골의 대표적인 음식이라 기대가 됐다.

 햇살이 순한 아침, 게르 밖에서 머리를 말리던 중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여행자들을 위한 게르 뒤쪽으로 사람들이 죽은 양 한 마리의 사지를 들고 지나갔다. 그건 바로 우리가 저녁으로 먹게 될 허르헉을 위한 양이었다. 얼마전까지 게르 주위에서 풀을 뜯던 양이었다. 도축은 끝났고 해체 작업을 위해 옮겨 온 것이다. 내친 김에 해체 작업을 구경했다. 남자 두세명이 숙련된 솜씨로 배를 가르고 가죽을 벗겨내고, 여자들이 가른 배 속으로 국자를 집어넣어 피를 담아 대야에 받았다. 내장을 들어내고 부위별로 해체하기까지 순식간에 진행됐다.

 가이드 빌궁이 옆에서 이런 저런 설명을 해줬다. 도축할 때 배 쪽을 가르고 손을 집어넣어서 척추 뒤쪽 신경다발을 순식간에 끊는다고. 최대한 고통을 느끼게 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땅을 신성하게 여겨 가축의 피는 한 방울도 땅에 흘리지 않는다고 했다. 저녁 때 ‘그 양’이 ‘허르헉’으로 만들어져 식탁위에 올랐다. 생경한 느낌이었지만 더 감사하며 열심히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사육 과정이나 도축 과정을 보지 않아도 돈만 주면 손쉽게 ‘취할 수 있는’ 고기를 먹는 것과 그 모든 과정을 알고 먹는 것은 다를 터. 우리는 더 싸게, 더 자주, 더 많이 먹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트에 진열된 그 고기들이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는지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산량을 최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학대’를 수반하는 사육방식을 “다 그런거지”라고 모른척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러 생각이 들었다. 몽골의 가축들은 최소한 죽기 전까진 우리나라 가축들보다 행복해 보였다. ‘고기’를 먹기 위해선 좀 더 수고로워야 하는 게 아닌가. 가축과의 동행을 이어가고 있는 몽골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을 생각해본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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