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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 터무니를 찾아서]타이베이에 들다<3>
살아있는 돌이 주는 황금과 죽은 돌이 주는 황금
예류에서 진과스까지
전고필
기사 게재일 : 2017-12-15 06:05:01
▲ 수많은 용암머리.
 몇 해 전에도 이곳 지질공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땐 해안가 아직 다듬지 않은 관광지의 소박함이 있었다. 하지만 많이 변해 있다. 연중무휴의 본격적인 관광지로 정비를 마쳤다. 예류(야류)는 야생의 버드나무가 있는 곳을 뜻한다. 강가에 서식하는 버드나무는 본적이 있지만 강가에서 버드나무를 본적은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형상을 담은 물체를 비유해서 만들어진 이름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랬다. 예류는 그곳에 즐비하게 서 있는 석상에서 연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단단한 황토 빛의 사암 단층과 연결부위가 그 위에 수많은 용암머리를 걸머쥐고 있는데, 그 모양이 흡사 사람의 머리를 닮았고 그 사이 사이가 마치 습곡과 같았다. 그것도 머리는 마치 여왕의 머리를 닮은 것이다. 그런데 내 눈에는 그것이 마치 버드나무 같아 보인 것이다. 안티프라민으로 유명한 유한양행의 심벌처럼 말이다. 물론 나중에 확인을 해 보니 이건 내 생각일 뿐, 예류는 버드나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지명이라고 한다. 하여튼 기륭이라는 항구에서 멀지 않은 곳, 타이뻬이 시내로부터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천연적인 자연경관이 관광객을 손짓하는 곳이었다. 대만의 일정 대부분이 배움 여행으로 꽉 찬 터라 예류는 일종의 휴게소와 같은 청량함을 주기 위해 선택한 곳이었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실제 온도는 35도를 웃돌고 있었고, 체감하는 온도는 말로 형언하기 어려웠다. 햇볕을 가려주는 모자를 타고 주르륵 흐르는 땀방울이 자주 눈에 고이고, 눈에 고인 짠 기운이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해안의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우리나라로 비교하면 제주의 지삿게 주상절리 대에 선 느낌과 같았다. 지삿게는 무등산의 입석대나 서석대처럼 화산의 폭발로 뜨거운 암질이 차가운 백악기의 지상과 맞부딪치며 형성된 것이었다면 이곳은 폭발 이후에 해수의 침식과 바람의 풍화를 맞으며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해안 경승이라 할 수 있었다. 가느다란 여인의 목을 하고 머리는 뒤에 비녀를 꽂은 듯 뾰족하게 나와 있는 모습의 바위는 마치 마이크로 세상의 주인공이 밀림의 버섯 사이를 가는 것처럼 이색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예류해안이었다.
 
▲ 버드나무 닮은 예류해안의 주상절리
 
 버섯모양, 각종 동물모양, 머리 모양을 한 것이 자그마치 180여개에 달하니 그것은 보는 사람의 시선이 어느 각도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 보일 것이다. 20여 년 전 해남 땅끝의 맨섬 옆으로 군부대 초소가 있어 들어가지 못하다 군부대가 나가고 나서 찾았던 곳에 바위 하나가 기이한 모습이었는데 뭐라 특정하지 못하고 참 요상하다 여겼었다. 길이 막혀 돌아오던 길 눈길을 끌었던 그 바위는 틀림없는 물개 형상이었다.

고은 시인의 순간의 꽃이라는 시가 딱 어울렸다. “내려 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마찬가지였다. 우리 시각은 늘 보고 싶은 장면만 가려서 보는데 익숙해졌다. 특히나 시선의 일방성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일종의 수평경이라 할 수 있는 내 선 자리에서 바라보는 자세로 모든 것을 보고 예단하는 관습은 천형처럼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각에 길들여진 태도를 고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보는 것은 한정되어 있고, 취해야 할 정보도 지극히 미약한 것이며, 이를 다시 발산하는 데에도 한계가 극명한 것 아닌가.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관광지에서 스스로의 시각을 끄는 훈련을 한다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불쑥 튀어나온 곶부리 1.8km를 종횡무진 다녔다. 곶부리가 끝나는 지점의 바위는 24효 바위라고도 하는데 마치 봉수대처럼 생겨난 것이 24개가 있었다. 컵을 뒤집어 놓은 모양새 위에 둥근 돌 하나가 붙어 있는 모양이 그것이다. 그리고 아래에는 아직 융기를 못하고 구멍이 움푹 패인 곳에서 뱅글뱅글 돌다 멈춰버린 둥근 돌이 보인다. 우리말로 하면 공알바위같은 생김새다. 이런 모습을 본 우리 민족은 이곳에 생명의 잉태를 기원하는 제를 지내고 촛불을 꽂았을 법한데 여긴 지천으로 널려 있어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스친다. 맞아 이곳에는 꽃처럼 어여쁜 화석이 있지. 발밑에 있는 것인데 하마터면 눈길도 못주고 가 버릴 뻔 했군 이라고 생각하며 함께 간 친구와 화석꽃을 찾기 시작한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종종거리며 다니기 시작하니 사방이 꽃천지로 보인다. 여기도 저기도 화석이 있다. 사람들의 발길에 파묻히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렇게 제 모습을 간직하며 있는 화석이 대견하게 보인다. 바닷속의 생물이 거대한 압력을 만나며 그대로 돌 안에 응축되어 버린 화석의 신비함에 매료되고 말았다. 비지땀을 흘리며 폭 300M, 길이 1.8KM의 해안지질공원 탐사는 마감했다.

 제주 용머리해안과 지삿개가 합쳐진 모습이면 이 경관이 나오겠다 싶은 생각으로 우리나라의 지질 유산을 떠 올려 본다. 기실, 우리는 지층에 대한 연구가 너무 경미하다 싶다. 대부분의 연구가 일제 강점기에 이뤄진 것을 아직 활용하고 있고, 그로인해 지난해의 경주 지진, 금년의 포항 지진 등이 일어나면 지구과학에 대한 심층적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곤 한다. 우리나라 땅을 구성하는 지각 판에 대한 연구조차 미미한데 땅 위의 것들은 어떠할까? 생각하기도 곤란해진다. 돈 되는 부동산에 대한 연구개발은 초고속으로 진행되는데 반해 암질이나 사구나, 단층이나, 협곡이나, 단애, 동굴 등에 관한 연구는 기묘한 형상으로 관광매력물이 된 것이나 바라 볼뿐이다. 너무 즉물적이지 않나 싶을 정도의 연구 경향은 누가 만들었을까? 스스로도 반성해 보며 돌이 돈으로 곧장 환류 되는 예류를 빠져 나온다.

 길섶에 단애 또한 절경이어서 나가는 길, 버스를 세워달라고 했지만 나 혼자의 여행이 아니고 위험하기에 포기했다. 이런 세계적인 지질공원은 그에 걸맞은 전문가와 함께 와야 하는데, 내 짧은 지식과 정보망으로 이해하기 어려웠음을 자인한다. 돌아와 이곳과 관련한 자료를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고자 해도 도무지 관광정보 이상의 데이터를 취하기 어렵다. 처음 대만 갔을 때 우연히 동행했던 진주 경혜여고의 지리 선생님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런 궁금증을 안고 살면 분명 예류를 소상히 파악할 날이 오리라 위안하며, 다음 코스로 떠난다.
 
▲폐광촌 진과스는 어떻게 되살아났나?

 우리들의 일정은 지우펀과 진과스, 스펀으로 이어지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뜨거워진 날씨는 모두를 지치게 한다. 특히나 노출된 해안가의 경승은 멋졌지만 그 뜨거운 열기를 감내하기에는 아직 대만 기온에 익숙지 못했다. 그늘이 있는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진과스 먼저였다. 진과스는 금광이었다. 일제는 대만을 식민지화 하면서 이곳에 금광개발을 했다. 금광이 쏟아지며 덩달아 인접지역도 발달하기 시작했다. 우리 지역으로 보자면 지리산이 마주 보이는 구례의 사성암이 있는 곳 정도의 교통도 취약하고 살기도 각박한 곳이었는데, 금맥은 이곳을 정말 상전벽해로 만들었다. 탄광촌이 형성되는 것은 화순탄광에서 보듯, 관리하는 이들이 상주하는 곳, 탄광노동자의 숙소, 탄광노동자들의 소비지 등으로 나뉘는데, 지우펀이 바로 그 역할을 감당한 듯 했다.

 진과스의 탄광 노동이 사라진 것은 1970년대의 일이라 한다. 금맥이 끊긴 것이니 이후에는 거의 버려진 땅과 다름 아니었다. 이에 대만 정부가 나서서 이곳을 되살리는 운동을 한다. 기존의 관리사를 개조해서 생활문화체험장으로 만들고, 갱도에는 발파작업을 하는 인형을 배치하여 실감나게 작업 현장을 조영하고, 환경관을 만들어 이곳의 지질과 기후, 식생 그리고 문화를 소개하는 공간을 조성했다.

 황금박물관에는 어마 어마한 금괴가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생 만져보지 못할 금괴를 한번이라도 접하고 싶은 관광객이 길게 줄을 늘어뜨리며 기다리는 광경이 내겐 낯설어 보였다. 로또를 안사는 것은 죄악이라고 하는 시 때문에 로또를 몇 번 사 보았지만 아직도 내겐 낯설은 것인데, 저런 내 것도 아닌 금괴를 한번이라도 만져 보는 것이 참으로 공허할 따름인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한번 만지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인 앞에 터뜨리는 모습 앞에서 오히려 내 자신이 위축됨을 느꼈다. 모든 것이 금전적으로 계산되는 세상 앞에서 뭘 그리 잘났다고 뻐기고 있는지 싶어지는 내 위선이 슬며시 부끄러워졌다. 해서 나도 손을 넣었다. 어떤 느낌도 없다. 이미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린 탓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부질없어서 일까.

 하여튼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와 광부들의 도시락을 먹는 곳으로 갔다. 돼지고기가 넉넉한 도시락이 기다리고 있었다. 탄광노동자들에게 없어선 안 될 영양분이자 이어질 생명을 건강하게 해줄 거의 유일하다 싶은 음식이 돼지고기라고 했으니 당연히 중심을 이룰 수밖에 없는 음식 앞에서 난 또 몇 숟가락 못 먹고 포기했다. 함께 한 유망주 친구들에게 난 또 거추장스러운 역할이었다. 대만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었으니 말이다. 모두들 맛있게 먹는 음식을 바라보다 문득 여긴 죽은 돌을 가지고 살아있는 황금으로 만드는 곳이란 생각이 일었다.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영화 비정성시의 촬영지 지우펀이다.
전고필 <여행전문가·대인예술시장 감독>
예류의 석상.
황금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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