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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미국 서부 기행기]<2>‘브라이스 캐넌을 향해’ 서부 횡단
최종욱
기사 게재일 : 2018-04-27 06:05:04
 영훈이가 몇 달간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한 칼같은 스케줄에 따라 다음날은 진짜 실탄 사격장에 갔다. 광훈이가 미국 가면 꼭 해보고 싶은 일이라고 몇 달 전부터 노래를 불렀지만 정말로 영훈의 머릿속에 그 귀찮고 위험한 계획이 들어있을 줄은 몰랐다. 아무튼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사격장으로 향했다. 군대부터 늘 사격 통제를 받아온 나로서는 선뜻 내키지 않았고 또 한편으로 두렵기까지 했다. “팡팡!” 사방에서 총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영훈이 뒤를 슬금슬금 따라가서 권총 빌리고 총알 빌리는 걸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몇 가지 서류 사인을 하니 낯선 외국인에게도 쿨하게 총과 총알을 한 바구니에 넣어 턱하니 들려주었고 미군 출신인 영훈(죠지)이 시범을 한 번 보여주고 다음은 정말 우린 차례였다. 권총은 처음이라 어색하고 두려웠지만 첫 방 쏘는 걸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Just do it!’하면 대개 하게 돼있다.

 아들 광훈이도 예전 경주에서 진짜 총을 엄격한 통제 하에 쏜 경험이 있어 나보다도 더 자신감 있게 잘 쏘았다. 두 번째 광훈의 재발견이었다. 총에 대한 두려움이 싹 가시고 오직 과녁에 대한 욕심만 남아 서로 거의 200발씩을 쏘고 권총을 내려놓고 이번엔 소총을 쏘러 갔다. “석궁도 쏴 볼 거냐?”고 해서 우린 총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미군들이 가지고 다니는 AR 소총은 소리는 요란하지만 반동이 거의 없어 권총보다 훨씬 편안하고 쏘기 쉬웠다. 역시 사격의 하이라이트는 권총인 것 같았다. 어차피 광훈도 내년에 군대에 가야하니 이번이 아주 좋은 기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총 빌리고 총알 빌려주는 실탄 사격장
 
 첫날부터 쇼킹한 경험을 해서인지 정신이 매우 맑아졌다. 무스와 곰을 비롯한 수많은 동물들이 박제된 사격장 안 식당에서 미국식 전통 햄버거로 식사를 하고 영훈 고향 동네로 드라이브를 했다. 오후에 영훈이 준비한 것은 광훈의 드라이브 연습이었다. 거의 차가 다니지 않는 한적한 사막 같은 도로에서 광훈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우리는 좌불안석하며 서로 코치를 해댔다. 영훈은 아빠인 나보다도 훨씬 자상한, 마치 친할아버지 같은 좋은 선생님이었다. 늘 느끼는 바지만 ‘이 사람은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고 이번에도 생각하게 됐다. 짧은 운전연습시간을 끝내고 마치 화성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사막 한가운데 바위산으로 갔다. 그곳은 ‘혹성탈출’ ‘스타워즈’ ‘스타트랙’같은 지구 아닌 다른 행성같은 느낌을 찍을 때 주로 이용하는 영화촬영 장소였고 바위산은 가파르긴 하지만 오르기는 쉬워 나와 광훈은 신나게 기어 올라가 한껏 포즈를 취재 화성에서 찍은 듯한 한 컷을 남겼다.

 저녁엔 영훈 가족과 외식을 나갔다. 다운타운에 있는 멕시칸 식당이었다. 음식을 모르니 별로 선택지가 없었다. 사진은 맛있게 보였는데 여러 가지 재료를 옥수수로 만든 또띠아에 넣은 순대 같은 음식들로 막상 먹어보니 맛은 잘 모르겠고 금방 배안이 묵직하고 느끼한게 더 이상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이 음식들은 시장할 때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데킬라는 그래도 맛있었다. ‘문화 차이를 극복하려면 우선 음식부터 정복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한국 사람들에게 멕시칸 음식은 좀 ‘비추’였다. 미국사람들도 그다지 잘 먹는 것 같지 않았다. 1인분이 거의 4만 원 가량해서 투자에 비해 남긴 음식이 너무 많았다. 큰 식당은 음식을 먹기도 하지만 한쪽에선 음식을 주문해 놓고 미술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런 먹을거리와 문화의 융합은 참 신선했다. 일본 영어강사 출신인 테라가 광훈이에게 영어를 좀 가르치려고 일부러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는데 피곤한 가운데서도 광훈이가 또박또박 응답하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끼리 뭔가 좀 통하나 싶었고 ‘나 또한 저렇게 열심히 하던 시절이 있었지’하고 괜히 세월의 무상함에 젖기도 했다.
 
▲편도로만 8시간, 장거리 운전
 
 셋째 날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브라이스 캐넌을 가기 위해 새벽 일찍부터 출발했다. 유명한 도박도시인 라스베거스를 지나 장장 편도 8시간을 달려야 도달하는 곳이기 때문에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하려는 영훈의 치밀한 계산이 있었다. 운전은 나와 영훈이 번갈아 하기로 했다. 국제면허증을 미리 받아두었기 때문에 운전하는 데는 큰 문제는 없었다. 물론 경찰한테 걸리면 복잡하겠지만 다른 문제들로 바쁜지 교통을 단속하는 경찰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난 라스베가스에서 유타까지 장장 5시간을 운전했는데 그리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 대륙에서 운전을 한다는 데 무한 자긍심이 느껴졌다. 운전대 위치도 같고 도로도 우측주행으로 우리나라와 같아서 운전하기는 무척 편했다. 물론 아직은 머릿속 네비게이션이 없어 복잡한 시내에서 운전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침에는 일출을 보며 시내 어디에나 있는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셨다. 스타벅스는 이곳이 원산지이고 중저가의 부담 없고 맛있는 커피숍인데 우리나라에 건너와서 갑자기 값비싼 고급 커피 왕국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커피는 값싸고 맛있고 편안하게 먹어야 제격인데 바로 미국식 스타벅스가 그런 모델이었다.

 점심은 사막 한 가운데 길가다 간혹 만나는 휴게소 마을 한 곳에서 먹었다. 휴게소 마을은 사막 도로 옆에 조그맣게 형성돼 있고 주유소를 중심으로 편의점, 식당, 카지노, 화장실, 여관, 주택같은 것들이 몇 채씩 밀집되어 있었다. 사막 여행객의 오하시스 같은 곳이었다. 어제 저녁에 멕시코 음식으로 입을 덴 이후 이번에 간편한 메뉴를 찾았지만 미국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먹을 땐 격식 있게 먹는 걸 좋아해서 할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광훈이와 나는 양이 가장 적게 나올 듯한 메뉴를 골았다. 우린 사실 그냥 샌드위치나 햄버거여도 충분했다.

 서부 횡단 고속도로는 쭉 기암괴석 같은, 아주 예전 바다에서 쏟아 나온 바위들과 나무 한 그루 없는, 끝없는 조쉬아트리(예수나무) 같은 선인장과 잡풀만 자라는 평원으로 이어지다가 눈이 내리는 유타주부터는 나무들이 간간히 나타나기 시작하고 갑자기 수량이 풍부해져 대 목장 지대로 이어지고 나중엔 점점 깊은 숲을 이루었다. 이 넓디넓은 목장에서 자라는 소들도 무척 행복하게 보였다.
최종욱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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