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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미국 서부 기행기]<4>브라이스 캐넌에서 되돌아가는 길
미국인 ‘영훈’의 인생이야기를 듣다
최종욱
기사 게재일 : 2018-05-25 06:05:01
 길이란 게 그렇다. 출발 할 때는 설렘 반 기대 반으로 대개 전혀 피곤한지를 모른다. 하지만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은 왜 그리도 멀고 피곤한지. 인간의 모순을 여실히 드러내는 지점이 아닌가 싶다. 브라이스 캐넌에서 돌아오는 길은 갈 때의 멋진 길을 되짚어서 돌아오는 만큼 역시나 거대한 풍광들이 똑같이 다가왔지만 그냥 지나치는 풍경에 불과했다. 도중에 만나는 라스베이거스 시내도 밋밋했다. 체험이 없으면 보는 건 실상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특히 인공물의 경우는 더한 것 같았다. 도시는 그저 삭막한 도시일 뿐. 사진 찍기 스케줄 때문에 아침까지 먹고 늦게 출발한 탓에 LA 시내에 다가가자 점점 어둠이 몰려왔다. 석양이 저물 무렵에 내가 운전하고 있었는데 이미 피곤하고 지쳐서 점점 시야도 흐릿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차선도 바꿀 수 없는 1차선 도로인지라 느림보 앞차를 계속 따라가야 해서 피곤함과 지루함이 더했다. 마침 앞으로 차 한대가 추월해 나갔다. 순간 내 정신이 나갔나보다. 추월하는 걸 보고 ‘아! 이제부터 차선이 넓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중앙차선을 넘어 역주행을 시작했다. 뒤에 있는 영훈이 다행이 깨어있어서 “오! 노노노!” 할 때야 비로소 제 정신이 돌아왔다. 졸음운전에다 역주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앞에 오는 차와 거리가 있어 큰 트럭을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오금이 다 저려온다. 그래도 아무 일 없어서 그냥 쇼킹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을 수 있어 정말 기쁘다. 정말 ‘오 마이 갓!’이 아주 어울리는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주한미군 근무시 한국의 정 이끌려

[사진0] 
 긴 드라이브 중에 영훈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 주로 영훈의 유년시절 힘겨웠던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영훈은 고아로 자랐고 실로 믿기진 않지만 진짜로 부부 은행털이인 부모님들이 함께 수감되는 통에 가족의 버림을 받았고 친척들에게 의탁했지만 잦은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뛰쳐나왔다. 그리고 오갈 데가 없어 보육원에 들어가서 괴롭히는 아이들과 싸우기 위해 무술을 배웠다. 배운 게 없어 취업이 힘들어 군대에 갔고 독일에서 근무(핵무기 기지)하다 제대하고 자동차 기술을 익혀 마침내 공무원으로 취직을 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이혼녀이자 네 살 연상인 명녀를 교회에서 만나 결혼도 하고, 명녀의 두 자식을 열심히 키웠고 둘 사이에선 테라가 태어났다.

[사진1]
 젊어 혼자서 미국 대륙 무전여행도 해봤고 친구들과 사막 한가운데서 인디안 약초 풀을 먹고 바위가 괴물로 변하는 환각을 이틀 동안 체험해 보기도 했다. 그는 노숙자의 배고픔도 알고 가족의 그리움도 진하게 안다. 젊어서 잠시 선교사를 따라와서 주한미군 임상병리실에서 일하면서 한국에 하숙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국 하숙집 아주머니가 마치 아들처럼 대하는 걸 보고 한국의 따듯한 정과 한국 음식에 반해서 그때부터 한국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결코 순탄치 않은 인생살이였지만 그 덕에 놀라운 경험도 많이 했고 나름대로 탄탄한 인생철학도 가지게 되었다. 약간은 트럼프를 좋아하는 보수주의자인 동시에 북한의 핵을 두려워하는 평범한 소시민이기도 하다. 공무원으로서 회사공구 하나도 사적으로 쓰는 걸 마다하는 지독한 청렴함을 지니고 있다. 누군가에게 정을 주면 그는 평생지기로 여기지만 어떤 이는 그의 그런 비서구식 이타적인 행동을 매우 부담스러워하기도 한다. 우리에겐 그는 이번 여행 내내 따듯한 형님 그리고 때론 아버지 같은 높은 존재로 깊이 아로새겨졌다.

[사진2] 
▲하루의 고된 여정 사우나로 풀어
 
 명녀의 삶 또한 만만치 않았다. 강원도 봉평,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메리카 드림을 안고 미국에 친척 따라와 결혼도 했지만 어찌어찌해서 이혼하게 되었다. 홀로 남아 자식들을 키우려고 권총 강도가 난무하는(실제로 경험담도 있었다.) 슈퍼마켓 알바 등을 하며 힘겹게 살다가 영훈을 만나 다시 재혼하고 지금은 유명한 의료보험회사에서 능력 있는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다행히 65세 정년(사회보장이 시작되는 나이)이 얼마 남지 않아 은퇴 후 영훈과 같이 애리조나의 멋진 초원위 집에서 정착할 계획이다. 그녀는 아직도 강원도 고향 집과 친인척들을 매우 그리워하고 기독교를 깊이 믿으며 미국식 사고방식에 익숙하다. 영어와 한국어에 유창하고 전 남편과 낳은 딸과 아들을 이미 훌륭하게 자수성가시켰고 테라 역시 멋진 성인이 되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자기 자신을 잘 보살피는 사람이다. 처음엔 일반적인 한국 엄마들처럼 비록 며칠이지만 혹시 남의 식구가 집으로 들어와서 불편해 할까봐 영훈보다 훨씬 조심스러웠지만 마치 친엄마처럼 낯선 우리를 잘 챙겨주어서 큰 감동을 선사했다. 다만 만남 초기에 기독교적 전도를 하려는 경향이 좀 있었지만 그 정도 성경이야기는 재미있게 들어줄 만했다.

[사진3]
 하루의 즐겁지만 고된 여행을 끝나면 영훈은 꼭 뜨거운 사우나를 준비해주었다. 사우나는 집 뒤뜰에 직접 편백나무로 짜 만든 1평 남짓 크기였다. 온도는 100도 정도 올리는데 안에 들어가면 거의 70~80도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물을 뿌리면 증기가 올라오고 곧 뜨거운 김이 온 몸을 감싸고 물이라도 약간 몸에 바르면 피부가 자극 받아 땀이 줄줄 흘러나왔다. 땀을 흘리면 식수를 쭉쭉 마시게 됐다. 15분 정도 되면 모래시계가 모두 아래로 떨어지고 그럼 우린 밖으로 나와 곧바로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다만 아쉬운 건 남자들끼리 맥주를 한잔씩 들이키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는 거였다. 아무튼 이번 여행 내내 즐거웠지만 다만 한 가지, 영 몸 안에서 1번 소식이 없어 더부룩해 괴로웠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1번은 똥이고 2번은 오줌을 가리키는 슬랭으로 쓰인다. 그런 응어리진 여파 탓인지 집에 돌아와서 코 주위가 온통 헤르페스 바이러스로 쥐어버렸다. 결코 쉬운 여행은 아니었음을 몸이 반증한 것이었다.
최종욱 <수의사>
명녀와 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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