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된 로프 등 활용않고
오직 맨몸으로만 등정

▲ 이스트 컬럼비아 인다렉트 2피치를 등반 중인 김병렬 대원.
 지난 8월 캐나다 부가부(Bugaboo) 등정을 떠난 빛고을 원정대가 무사히 귀국했다. 광주지역 산악인들로 구성된 ‘빛고을원정대’ 유영욱·김병렬·변민석 대원은 한달여 만인 9월4일까지 부가부 산군의 스노우패치 스파이어(snowpatch spire, 3063m) 등반에 도전했다. 도구에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힘만으로 오르는 자유등반(free climbing) 방식이었다.

 캐나다 중서부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 위치한 부가부는 만년설과 빙하 위에 솟은 500미터에서 1000미터의 암봉들이 밀집한 지역으로 북아메리카 최고의 알파인 록클라이밍 지역이다. 그 중 벽길이 600m의 스노우패치 스파이어는 세계 최고의 거벽 자유등반 대상지다.

 무사히 귀국한 빛고을원정대 유영욱 대장이 부가부 등정 일지를 직접 기록해 본보에 보내왔다. 그대로 싣는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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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 주변의 풍광은 그야말로 동화책 속에 들어온 듯하다.
 
 빛고을부가부원정대의 유영욱입니다. 2년 전 파타고니아 원정에 이어 두 번째로 광주드림 지면을 통해 인사드립니다. 저희 원정대는 비온시이노베이터에 근무하는 김병렬(48세) 대원과 남도종합중기에 근무하는 변민석(30세) 대원, 그리고 실내암벽장을 운영하는 저 유영욱(53세) 등 빛고을 광주 클라이머들로 구성됐습니다. 부가부는 ‘북반구의 파타고니아’로 불려집니다. 파타고니아가 남극의 바로 위에 위치해 있어 만년설과 빙하, 히말라야보다도 센 바람 등 극한의 지역이지만 그 암벽의 아름다움 때문에 등반가들의 도전이 멈추어지지 않는 곳이죠.

 부가부 역시 캐나다의 중부 북극에서 멀지 않은 곳의 빙하 위에 솟아 있는 3000m 대의 아름다운 암봉 군을 말합니다. 저희는 여러 암봉들 중 스노우패취 스파아어 동벽의 여러루트를 오를 생각입니다. 이벽은 600m 수직으로 한국 클라이머들이 몇번 도전한 적 있지만 정상까지 완등한 팀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샤인 크랙 마지막 피치를 등반 중인 변민석 대원.

 특히 저희는 자유등반으로 오를 계획입니다. 자유등반이란 등반가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확보물을 설치하지만 그것을 잡거나 딛거나 해서 오르는 데 도움 받지 않는 등반 방식입니다. 그러니 오로지 인간의 육체적 능력만으로 오르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야 말로 가장 높은 수준의 암벽등반입니다. 또한 어려움에의 도전이라는 등반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방식이라고 저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방식의 등반이 저희에게 가장 큰 정신적, 육체적 만족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원정에 나선 세 사람이 의기투합하게 됐죠.
 
▲불린 라면과 누룽지로 6일 연속 등반
 
 8월 3일 한국을 출발하여 캐나다 밴쿠버에 내렸습니다. 랜트카로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주립공원인 부가부까지 12시간 운전했고, 다음날 아침 각자 30kg이 넘는 짐을 짊어지고 6시간 산행하여 2500m고도의 애플비(apple bee)야영장에 텐트 두 동을 쳐 베이스캠프를 구축했습니다.

선샤인 크랙의 정상에서 김병렬 대원.

 주변엔 만년설을 인 거벽들, 푸른 빙하,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시냇물, 수줍게 핀 들꽃들, 차갑고도 신선한 공기, 파아란 하늘이 펼쳐져 있습니다. 아마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베이스 캠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흰 차로 이동 중 작은 도시마다 들러 등산용 가스를 사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해서 작은 고체알콜연료 두 개만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3일 동안만 등반하고 내려가 다시 식량과 연료를 보급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한번 버텨보자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고체연료라는 것이 고도가 높아선지 물을 끓는점까지 도달시키질 못하는 물건입니다. 그러니 3일 동안은 밥은 꿈도 꾸지 못하고 불린 라면과 불린 누룽지로 연명하게 되었습니다.

등반 첫날 크랙의 정상에서.

 그런데 이 미친 세 남자는 그것도 부족하여 3일 더 연장해 불린 라면과 불린 누룽지로 버티며 6일을 쉬지 않고 미친듯이 등반하게 되었는데요. 일기예보 때문이었습니다. 3일을 등반하고 내려갔다가 올라와 등반할 날 부터 3일간 계속 비라는 예보여서, 지금 비를 피해 하루라도 더 등반 하려는 욕심으로 6일을 버틴거죠. 6일 동안 저흰 스노우패취 스파이어 북벽의 션샤인크랙(5.11급, 9피치)을 하루만에 완전 자유등반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트컬럼비아인 다이렉트(5.12급, 4피치)를 이틀에 걸쳐 자유등반에 성공하였는데요. 모두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한 것이어서 저희에겐 의미 있는 결과였습니다.
 
▲스위트실비아 마지막 날, 아찔한 등정
 
 그리고 스위트실비아(5.12급, 11피치)는 길고도 어려운 루트인데요. 총 4일을 등반하였습니다. 모든 피치를 자유등반으로 가다가 상단 세개의 피치에서 길을 잘못드는 바람에 자유등반에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스위트실비아의 마지막 날 등반은 정말 극적이었는데요. 아침 6시 반에 베이스를 출발해 저녁 10시에 귀환했으니 이날 등반의 시간만 15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출발부터 이미 걸어둔 로프에 문제가 생겨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사기가 떨어진 가운데 등반은 이어졌습니다. 또한 상단에서 길을 잘못 들어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스노우패치 스파이어 등반 첫날 빙하지역을 어프로치하고 있다.

 자유등반은 포기하고 최대한 빠른 등반을 해야했습니다. 정상에 도달하자 오후 7시,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하강 중 단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일 수 있는 상황이었죠. 게다가 우린 모두 상당히 지쳐있었거든요.이런 순간에 제일 중요한건 팀워크입니다. 서로의 호흡, 신뢰 이런 것들이죠. 우린 위기를 잘 극복하고 늦은 밤 헤드랜턴을 밝히고 베이스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날 김병렬 대원의 파이팅과 헌신에 감사했습니다. 다시 한 번 그가 멋진 등반가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6일을 연속등반한 우리는 몸의 피곤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없는, 피곤을 느낄 에너지마저도 잃어버린 듯 한 몸 상태로 하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올라갈 때 6시간 걸렸던 길을 2시간 만에 내려와 차로 두 시간 달려 ‘골든’이란 조그만 도시에 가니 모든 식량과 연료를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오랫만에 사과 복숭아 자두 딸기 토마토 온갖 과일에 구운 치킨 한마리를 사서 도륙을 내니 천상의 식사가 따로 없더군요. 염라대왕도 부럽지 않더이다. 하루의 휴식으로 풀리지 않을 피곤을 몸에 지니고 있는 우린 구입해야할 장비도 있고 해서 캘거리까지 가서 조그만 호텔에 묵었습니다. 오랫만에 제대로 조리된 음식을 맘껏 즐기면서 말이죠.
유영욱 <빛고을원정대장>

베이스에서 한가로운 때, 변민석 대원의 우크렐레 연주이다. 부가부의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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