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고도 멋지게 ‘완등’ 쾌감

▲ 스노우패치스파이어 전경을 바라보고 있는 김병렬 대원.
 지난 8월 캐나다 부가부(Bugaboo) 등정을 떠난 빛고을 원정대가 무사히 귀국했다. 광주지역 산악인들로 구성된 ‘빛고을원정대’ 유영욱·김병렬·변민석 대원은 한달여 만인 9월4일까지 부가부 산군의 스노우패치 스파이어(snowpatch spire, 3063m) 등반에 도전했다.

 도구에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힘만으로 오르는 자유등반(free climbing) 방식이었다.

 캐나다 중서부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 위치한 부가부는 만년설과 빙하 위에 솟은 500미터에서 1000미터의 암봉들이 밀집한 지역으로 북아메리카 최고의 알파인 록클라이밍 지역이다. 그 중 벽길이 600m의 스노우패치 스파이어는 세계 최고의 거벽 자유등반 대상지다.

 무사히 귀국한 빛고을원정대 유영욱 대장이 부가부 등정 일지를 직접 기록해 본보에 보내왔다. 그대로 싣는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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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드로노르테 1피치를 등강기를 이용해 오르는 변민석 대원.

 이틀을 캘거리에서 쉰 우리는 식량과 연료를 구입하여 13일 애플비 야영장의 베이스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3일을 등반 했는데요. 파워오브라드라는 5.12급의 8피치 코스를 아주 멋지게 자유등반 성공시켰습니다.

 아마 올 시즌 이 루트를 자유등반 성공시킨 팀은 우리가 유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7월 8월만 등반 가능한데 주요시즌인 8월 한 달 동안엔 없었으니까요.

 17일 회사 일정 때문에 먼저 귀국해야 하는 김병렬 대원을 배웅하고 식량과 포타렛지를 수송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원정의 최대 목표라 할 수 있는 센드로 노르테를 오를 계획이죠. 이 루트는 5.12급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등급이며 14피치로 가장 긴 코스이지요. 스노우패치스파이어의 정중앙에서 일직선으로 정상까지 이어지는 최고의 라인입니다. 이 루트는 그동안의 등반과 다르게 포타렛지(암벽에 치는 일종의 침대텐트)를 가지고 3일 정도의 등반을 하려고 합니다.

▲12개 피치 등반 ‘환희’…도전못한 2피치

 18일은 루트 정찰 겸 2피치까지 등반을 해 보았는데요. 역시 2피치가 가장 어려운 구간이었습니다. 쉽게 자유등반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이미 5일을 쉬지 않고 움직여온 터라 19일은 휴식을 취하고 20일 2피치를 재도전하게 되었는데 아깝게 마지막 부분에서 발이 미끄러져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부가부의 일출, 포타렛지에서 찍은 것이다.

 21일 2피치는 내려오면서 다시 도전하기로 하고 포타렛지 가지고 정상을 향한 등반을 시작하였습니다. 거벽 자유등반에선 어려운 축에 속하는 5.11급의 피치가 다섯 개, 5.12급의 아주 어려운 피치 한 개를 포함하여 총 12개의 피치를 모두 한 번에 자유등반으로 올라 22일 정상의 환희를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23일 하강하면서 하기로 했던 2피치의 등반은 체력 저하로 시도하지 못하였습니다. 24일 골든으로 내려가 조그만 도미토리에서 하루 휴식을 취한 후 다시 25일 마지막 8일분의 식량을 가지고 애플비에 올랐습니다.

 센드로노르테 저 멋진 라인을 우리의 힘만으로 올랐다는 사실이 가슴 뿌듯해야 할 일이지만, 오로지 하나 완등하지 못한 2피치 때문에 마음이 편칠 않았습니다.

센드로노르테 정상에서 변민석 대원.

 날씨가 부쩍 추워졌습니다. 26일 이 마의 센드로노르테 2피치 등반 중에는 손발이 시려운 고통스러운 등반에다 급기야는 눈까지 내려 일찍 등반을 접어야 했습니다.

 27일 아침엔 저녁 내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모두들 철수하고 몇 팀 안 남은걸 보니 이번 시즌은 이게 끝인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등반을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한 저흰 2피치 등반을 위해 남겨 놓은 장비를 회수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 보니 걸어 놓은 로프에 얼음이 꽁꽁 얼어붙어 있어 로프를 잡고 올라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부가부가 성내고 있는 걸까요? 우릴 올라가게도 내려가게도 해 주질 않네요. 하루를 더 기다려보기로 합니다.

부가부에 겨울이 오고 말았다. 철수 준비 중인 변민석.

▲접으려던 등반, 로프도 얼어붙어

 27일도 바위에 접근하기가 힘들 만큼 차갑고 바람이 심한 날씨입니다. 하릴없이 일어나 부가부의 여기저기를 거닐어 봅니다. 부가부와 작별인사라도 하는 걸까요?

 정처 없이 걷는 발길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시냇물, 들꽃들이 있는 곳으로 이끌더군요. 28일 온도가 좀 올라갔는지 그리 손이 시럽지 않습니다. 부가부에서의 마지막 등반을 하여야겠습니다.

 스노우패치 최고의 루트인 센드로노르테의 완전한 자유등반을 위해서 마지막 남은 2피치 자유등반을 시도할 겁니다. 차가운 날씨에 고통스럽고 힘든 등반이 되겠지만 최선을 다 할 겁니다.

 아침 일찍 베이스를 출발하여 전에 걸어두었던 로프를 이용해 1피치에 올라선 후 변민석 대원과 한 번씩 연습등반을 해 보았습니다. 추운 날씨라 암벽화의 고무창이 수축되어 마찰력을 잃으니 여러 번 미끄러졌습니다.

로타렛지에서 변민석 대원, 케나디언 록키를 내려다보고 있다.

 스노우패취를 절반은 덮고 있는 구름에서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 온몸이 언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대로는 이 마의 피치를 완등할 컨디션이 될 수가 없죠. 저흰 포타렛지(암벽에 설치하는 침대텐트)를 치고 따뜻한 차를 한 잔씩 마시며 몸을 녹이고 암벽화도 데웠습니다.

 이윽고 완등을 시도해야 할 순간입니다, 아마 오로지 이번 한 판의 기회일 겁니다. 구름이 점점 내려오고 있으니까요. 이런 순간의 등반은 정말이지 정신적인 승부입니다. 절대로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승부니까요.

 저는 작년 요세미테의 프리라이더라는 코스의 등반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도 7일 간의 등반 중 마지막 날 마지막 시도였죠. 완등의 직전 마지막 한 순간의 방심으로 발이 미끄러져 실패했던 기억입니다.

▲육체적·정신적 능력 100% 발휘 끝에…

 그 때의 쓰라린 경험과 그리고 부가부를 사랑하는 저의 열정 때문일까요? 정말이지 믿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하고도 멋진 등반으로 완등을 이루어 냈습니다.

 제가 가진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100% 발휘한 등반 후의 느끼는 이런 성취감이야 말로 저를 40년 동안 ‘암벽쟁이’로 만든 이유이지요.

 모든 장비를 철수하고 베이스로 돌아오니 폭우가 쏟아집니다. “부가부여 슬퍼하지 말아라. 내 다시 언젠간 너를 찾으리.” 그동안 이 늙은 클라이머를 따뜻하게 안아줘서 고맙다. 이 늙은 클라이머는 너로 하여 빛나는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

센드로노르테하산, 30kg에 육박하는 홀백을 메달고 하강하는 변민석 대원.

 부가부 여행에 함께한 김병렬, 변민석에 감사하고 도움주신 광주드림신문, 다담식자재마트에 깊이 감사드린다.
유영욱 <빛고을원정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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