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단양·충주까지 아우른 여정

 가족여행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지난 번 현장답사로 충북의 제천과 속초, 강릉을 다녀온 다음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들었던 탓이다. ‘거기까징 갔는디 작은 이모한테 안 들렀다’는 것이 역정의 이유였다.

그때 내친김에 ‘어머니 그럼 휴가 때 제가 모시고 갈게요’라고 약속하고 동생들에게도 이번 휴가는 제천 쪽이라고 말해 둔 터였다. 그런 사이 이모부와 이모님이 한번 담양에 다녀가셨다. 외갓집에 가장 맏이인 어머니를 뵈러 오신 것이었다.

그때 이야기 도중 담양 남면의 외가 동네에 다슬기가 씨가 말랐다는 이야기가 설핏 나오니 이모는 제천이나 인접한 영월에는 지천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그 순간 몇 해 전 심장수술을 받으신 어머니의 야윈 몸에서 기운이 솟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제천행이 완벽하게 굳어졌다.

 휴가철이 오기 전 부인으로부터는 약간의 책망을 들었다. 딸과 아들의 국사 실력이 형편없는데 아빠는 관심도 없다는 점. 그래서 공약을 날렸다. 방학하면 아빠와 2박3일 큰 줄기의 한국사를 공부하는 여행을 떠나기로 덥석 약속을 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방학, 아이들과 떠나기 위해 생계형 어부를 빙자하여 낚시를 떠난 흔적인 비린내 배인 차를 말끔히 청소까지 마쳤는데 태풍이 북상했다.

여수를 강타한다는 말에 우리는 과감히 배움여행을 포기했다. 그리고 휴가 여행에 배움여행을 편입하여 떠나기로 했다.

 가족의 숫자는 열다섯 명. 제천 1박 2일 일정의 휴가에 배움여행 하루를 더 쓰기로 하고, 의정부의 동생과 광주의 두 동생, 담양의 어머니까지 이모님 댁에서 자고 오는 것으로 했다. 막상 떠나려 하니 가족 카톡에 여행 코스는 어떻게 되느냐, 잠잘 곳은 잡았느냐라는 질문이 내게 쏟아졌다. 무조건 이모에게 의탁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얘기까지. 그런 순간 누군가의 답이 걸작이었다. “바쁜 장남 덕분에 설마 논두렁에 텐트 치는 일은 없겠죠?”라는 비수와 같은 말이 들려왔다.
 
▲물놀이 주된 일정…270여㎞ 장정
 
 휴가 3일 전 부랴부랴 숙소를 찾아 나섰다. 제천과 영월, 단양, 충주를 아우르는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의 10권역 엄태석PM께 부탁드린 것이다. 무척이나 죄송스런 마음으로 전화를 드렸는데 답은 선뜻 구하실 것처럼 들려왔다.

국내여행의 활성화화 체류관광, 지역과 상생하는 여행 트렌드를 만드는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의 감독다운 답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는 펜션을 구하셨다고 기별이 왔다. 이제 코스만 짜면 된다. 아침 8시 출발하고 점심은 제천 의림지의 꿀참나무 식당서 도토리묵 관련 풀코스의 점심을 먹고, 숙소에 들러 짐 풀고 인접한 충주호에서 물놀이를 한다.

저녁은 숙소에서 해 먹고, 다음날 오전은 물놀이 팀과 다슬기 팀으로 나눠 행동하고, 오후에는 영월 동강으로 가서 래프팅을 한다. 개략적으로 이런 순서를 잡았다.

 물놀이 일색의 일정을 가지고 8월 3일 오전 8시 우리는 270여㎞ 장정에 나섰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 짐을 챙기는데 어머니의 짐이 생각 외로 많았다. 자식들 먹이려고, 낏잎지를 담았고, 고구마순 무침을 하고, 추어탕까지 끓여 보온통에 담아 넣으셨다. 거기에 이모가 주문한 고사리 말린 것, 드리고 올 마늘과 밭에서 딴 싱싱한 채소류까지 넣으니 다섯이 한 차에 타기 옹색했다.

하지만 무엇 하나 버릴 수 없는 것, 다만 공정여행을 한다고 지역에 도움이 되는 여행을 하자고 외치고 실천하려는 내 의지가 어머니의 정성 앞에서 무너진 것이 아쉬움이 되었다.

 차는 순탄하게 출발해서 점심시간이 막바지에 달한 의림지 곁에 도달했다. 뜨거운 햇살 속에 우리나라의 3대 저수지라 할 의지림는 빛나고 있었다. 조선의 여성 여행가인 김금원은 이곳 제천 의림지를 보고 동쪽으로 돌아 단양팔경과 금강산까지 14살의 나이로 남장을 한 채 여행을 감행했다.

그리고 훗날 ‘호동서락기’라는 책을 남겼었다. 호수의 동쪽과 서쪽을 여행한 것을 기념한 여행기는 오늘날 우리가 호남이라고 말하는 근원 중의 하나가 바로 그 옛적 크고 방대했던 인공의 저수지 의림지를 경계로 한 것 아니냐고 말하는 이유 중 하나로 존재하기도 한다. 김제의 벽골제와 밀양의 수산지가 우리 역사의 물을 활용할 줄 아는 지혜의 단서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말하며 식당에 이르렀다.

 모든 것이 묵을 원재료로 만들어진 식단은 구황식물이 오늘날 이렇게 번듯한 한상차림으로 나올 수 있고, 이것을 줄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었다. 선조가 피난시절 굶주림에 허덕일 때 누군가 묵을 가져다 줘서 허기를 면했는데 훗날 도성에 돌아와 그 잊히지 않는 맛을 갈구하며 수라상의 윗자리에 올리라고 해서 ‘상수라’라고 불렸고, 그것이 오늘날 상수리나무로 부르게 된 연원이 되었다는 설까지 더해 점심은 더욱 맛있었다.

 
▲충주호에서 번지점프까지
 
 다음 행선지는 숙소였다. 박달재에 있는 수련원에 펜션이 자리했다. 두 채의 건물 중 하나를 독차지한 가족들은 만족스러워했다. 잠시 수련원의 원장님을 뵙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10권역의 PM도 만나 권역 사업이 이뤄지는 공간들을 돌아보았다.

제천 백운면의 ‘넉넉한 사람들’ 이라는 마을기업의 고군분투는 카페와 친환경 사과, 오미자의 가공 산업으로 발전하였고, 수작업으로 이뤄진 각종 공예품도 관심을 끌어들였다.

 차를 한잔 하고 백운면에 계신 이철수 판화가를 뵈러 갔는데 문은 열려 있고, 차는 없었다. 조용한 작업실 뜨락을 거닐며 화가의 자취만 그리워하며 돌아왔다.

박달재의 항일운동 조각상 두 분도 눈에 박혀왔다. 박달재 수련원 원장님의 할아버지와 인척이라신데 고국을 뒤로하고 중국에서 펼쳐진 활약상, 그리고 귀국하여 육영사업에 힘쓰신 공이 절로 숙연하게 했다.

 내가 그러는 사이 가족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딸과 아들이 번지점프를 우긴다는 전갈이다. 그리고 이어서 아이들이 직접 전화를 했다. 기필코 해야 겠다는 것이었다. 62미터의 고공에서 뛰어내리겠다는 투지는 가상하지만 몹쓸 생각도 일었다.

PM님과 작별을 하고 아이들을 찾아 충주호로 갔다. 곧 뛰어내릴 찰나 도착해 보니 그나마 깊이 잠겨 있는 물이 안도하게 했다. 이런들 저런들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지켜보는 착잡한 심정에도 카메라는 챙겼다. 이내 딸아이가 뛰어내린다. 단말마의 비명도 없이 그냥 뛰어 내리고 대롱대롱 거린다. ‘담대한 지고’라는 말 외에는 언어절이었다.

다시 한참을 기다리니 아들의 차례가 마지막이다. ‘아빠 사랑해’라고 외치라고 주문했던 것을 내심 기대했지만 아들 또한 아무 말 없이 뛰어 내렸다. 장하다. 장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이들의 용기를 격려해 주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 가고 가족들은 준비한 음식과 시내에서 사온 삼겹살을 구워 맛있는 저녁을 함께 했다. 늦게 찾아온 이모와 이모부와 각 가족의 대표들이 나와 고스톱을 치는 것을 보며 나는 몰래 후원금을 주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가족들은 소란스러웠다. 이모에게 다 털린 것이었다. 진정한 타짜를 보았노라고 이구동성이었다. 아침 이모가 가져온 옥수수의 찰진 맛에 빠지고 우리는 다시 두 팀으로 나뉘었다. 어머니의 염원인 다슬기 잡이를 위해 나와 여동생 한 명이 이모네 식구들과 동행하기로 한 것이다. 남은 식구들은 근처의 덕동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다 점심 무렵에 합류하는 것으로 했다.

 
▲영월서 다슬기 잡고 막국수 점심
 
 이모부를 따라 영월 땅으로 접어들었다. 제천 시내에서 불과 20여분 거리에 있는 강가는 지난 번 내가 영월 문화재단에 강의를 올 때 풍경이 아름다워 차를 세워두고 한참을 거닐었던 그곳이었다. 수경도 없이 철푸덕 물에 주저앉아 다슬기를 잡는다.

이전 보다 힘이 부치신지 어머니가 잡는 양이 많지가 않다. 어릴 적 섬진강의 수계에서 다슬기와 징검새우와 토하와 물고기를 잡으며 성장한 어머니는 민물의 일은 꿰뚫고 계신 분인데, 세월은 이겨내지 못하나 보다. 안타까움이 일지만 대신에 아들이 많이 잡아 드렸다.

두 시간 정도 이런 저런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다슬기 잡이를 하고 동생들에게 합류를 요청한다. 제법 잡은 다슬기를 아이스 통에 넣고 이동하여 영월읍의 막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십여 분을 기다려 자리를 차지하고 먹는 막국수는 꿀맛이었다. 하지만 국수만으로는 아쉬움이 있어 우리는 서부 시장에 들려 수수부꾸미와 감자전과 메밀전병을 샀다.


 이제 우리는 가족의 화합과 청량한 여름을 위해 동강으로 가서 래프팅을 할 차례다. 90년대 후반 남한강의 상류 동강에 댐을 만들려고 했을 때 그래선 안 된다고 반대 운동을 하러 이곳에 들렀던 선연한 기억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증명하기 위해 그때도 래프팅을 했는데 참으로 절경이었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때 만났던 분이 지금도 산양들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 보호 운동을 펼치고 계시는 박그림 선생님 같은 분이었다.

 각종 검색어와 앱을 이용해 대학생인 조카가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체험을 하려고 알아본다. 하지만 신통치 않는지 제수씨가 직접 래프팅 회사를 전전한다. 그것을 물끄러미 보는 내가 무능해 보이지만 저런 노력도 여행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이니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없다. 드디어 제수씨가 환한 미소로 협상에 성공한 것을 드러낸다. 자. 이제 래프팅이다. 강원도의 산과 강을 제대로 만나는 방식이다.
전고필<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