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8000여 神 보우하사
바다에 기대어 사는 삶

▲ 한해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신과세제. 당집으로 가니 심방의 본풀이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무표정한 빵집에서 그나마 몇 개의 빵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해변에는 차가운 온도와 강풍에도 젊은 친구들이 곧 바다로 들어갈 듯 말 듯 하며 파도와 씨름하고 있고, 바닷가 찻집이나 식당은 온통 밖으로 환히 열려 있는 창측에 기대어 있는 사람들이 환히 보였다.

옛적에는 좋은 공간이라는 것이 밖에서 보았을 때 그 안이 보이지 않고, 안에서는 밖이 환하게 보이는 곳이었는데, 요즘의 자랑질 시대에는 나 잘살고 있어, 이봐 이정도 공간에서 차 한 잔 마시며 쉬어주고 있잖아 같은 것이 드러나는 것이 좋은 공간이 되었다.

내가 차를 마셔도 타인이 나를 부러워하게 마셔야 시원하고 각이 잡히는 시대를 우리는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이질적인 공간에 더 있지 못하고 해안을 따라 차를 달렸다. 모든 좋은 곳은 우리가 멈추어 음미하는 것이고, 더불어 깊은 밤을 함께할 안주거리 따위를 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도리 성벽과 마주하다

차는 하도리에 이르렀다. 평소 같으면 들르지 않을 곳에서 우리는 기다란 성벽과 마주했다.

제주를 방어하기 위해 왜적과 교역이 빈번한 곳에 설치한 병영과 더불어 축성된 것이다. 1㎞ 정도를 쌓고 군사들이 상주했던 공간이었다.

쉽게 이해하자면 강화도의 초지진이나 덕지진과 같은 역할을 했던 곳이라 여길 수 있다. 한반도의 가장 남녘에서 가장 빈번한 침탈을 당했던 지역인지라 이런 요새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지난한 부침의 역사를 떠올리며 제주의 돌이 방풍의 역할과 방어의 역할과 경계의 역할 등을 감당했던 지난 시절의 참혹함이 결코 나만 감지한 것은 아니었다. 찾는 이들 아무도 없지만 그 성벽을 거닐며 풍경으로서의 돌이 아닌 생존의 조건으로서 돌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다시 걸음을 옮겨 해안을 따라 갔다. 세화리 마을이다. 저 바다 쪽으로 우도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산포로 가는 길의 마지막 자락쯤이다.

이곳에도 곳곳에 카페들이 자리하고 우리는 옛 농가를 살린 카페에 들어가 차를 한잔 마셨다. 유자차에 탱자를 섞은 듯한 차를 권하는 주인장의 따스한 말씨가 좋아서 그냥 이름도 외지 못하고 마셨다. 몸에 좋은 기운이 들어오는 듯 했다.

새로 밀어버리고 근사한척 건물을 올리는 것 보다는 마을의 공동체적 삶의 온기가 들어있는 것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알리며 들어선 이런 공간이 훨씬 더 아름답고 포근한 것이 나이 들어가는 우리들만의 감성인지 모르겠다고 여기며 그곳에서 지는 노을을 감상하다 지나쳐온 세화 소품관이라는 일종의 편집샵에 들렸다.

하는 일이 테마여행 상품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것이니 이런 곳은 꼭 들여다보아야 직성이 풀린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자리한 이곳 소품관은 대부분 동백꽃과 제주 해안의 돌고래를 상징화한 앙증맞은 상품들이 있었다.
석함을 위시로 하여 3개의 단으로 형성된 제단에는 마을 주민들이 준비한 바구니들이 빼곡하게 놓여있다.

▲한라산과 이 계절 방어

내부를 둘러보며 사고 싶은 것은 많은데 정작 사용할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을 느끼며 미적 가치와 실용성, 상징적 가치와 방문에 대한 추억 등등의 용어를 떠올렸다.

3만 원 정도를 그곳에 쓰고 이제 어둑시근한 해안을 따라 농띠라고 쓰인 숙소로 돌아왔다. 생각해 보니 저녁식사와 더불어 밤을 더불어 함께할 안주를 사지 못했다. 해서 그 근동의 횟집을 찾아 찰진 방어를 떠오고, 하나로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요기꺼리를 골랐다.

친구는 그 사이에 ‘맛동산’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먹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먹었던 달콤한 과자는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들의 사사로운 술자리에서 빠진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 친구는 내가 좋아하니 산다는 말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물론 나도 좋아하지만 그 친구도 적잖이 먹어대는 것을 늘 본 터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카트에 담아왔다.

밤이 깊어지고 우리는 한라산과 방어를 연신 먹어대고 세상의 이런 저런 일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서서히 내 고개가 스르륵 떨어질 무렵 밖으로 나왔더니 하늘에는 하얀 구름의 행진이 이뤄지고 있다. 핸드폰으로 그 광경을 담아 보았다. 별이 들어오고 구름이 들어오고 푸른 하늘이 내 눈에 맺힌 것처럼 함께 들어와 있다. 역시 아직은 청정한 제주가 맞구나 싶다.

만족할만한 시간을 보냈으니 나는 잠자리에 들고 몇은 남아서 이야기를 한다. 세시반쯤이었던가. 노랫가락에 눈이 뜨였다. 친구와 후배 둘이서 노래를 부른다. 그들의 노래는 김광석과 이문세와 최백호 등이 무작위로 호출되고 있었다. 나도 잠시 그 대열에 끼었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 7시, 부스럭거리며 일어났다.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안의 바깥바람을 쐬고 다시 들어와 일행을 깨운다. 아홉시가 좀 넘어 우리는 송당을 향해 출발했다. 새벽부터 제의는 시작되었을 터이지만 어젯밤 달렸으니 늦을 수밖에 없었다.
세화리 마을에서 본 우도의 풍광.

▲마을 주민들 제단을 쌓다

본향당의 입구에는 벌써 차들이 빼곡하다. 서둘러 당집으로 가니 심방의 본풀이가 진행되고 있었다. 여신인 백주또와 남신인 소로소천국이 열었다고 하는 이 마을은 수렵목축신이 소로소천국이 소를 잡아먹자 여신인 백주또가 분가하도록 하여 당이 윗손당과 샛손당, 알손당 이렇게 세 개로 나뉘어져 있다.

그럼에도 백주또와 소로소천국은 아들 열여덟과 딸 스물여덟을 낳고 그들의 손자들이 삼백일흔여덟이 생겼다고 한다. 이들이 제주의 동북부의 마을에 당신으로 좌정했기 때문에 송당을 제주신들의 본향인 불휘공 즉 신들의 뿌리가 있는 당으로 우러른다.

석함을 위시로 하여 3개의 단으로 형성된 제단에는 마을 주민들이 준비한 바구니들이 빼곡하게 놓여있다. 각각의 내용물은 비슷했다. 밥과 떡, 사과와 배, 귤, 구운 옥돔, 삶은 달걀 등이 정성스럽게 진설되어 있었다. 독특한 것이 삶은 달걀이었는데 이는 제주의 척박한 기후로 인해 거칠어진 피부를 저 달걀처럼 고운 피부를 달라는 유감주술과 같은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1만8000 신들의 고향이라는 제주, 그만큼 바다에 기대어 사는 섬의 삶은 예측 불허의 운명을 타고 났던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한해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신과세제는 모든 동리 사람들이 이 마을을 설촌한 신과 함께하는 중요한 시간일터다.

이후로도 세 번의 제가 올려지는데 다음에는 음력 2월13일 영등손맞이, 다음에는 7월13일 마불림제, 10월13일 시만국대제의 순으로 열린다. 즉, 첫 번째 제의은 마을의 안녕을 두 번째는 바다의 평온함과 풍어를 세 번째는 산록의 안정과 마소의 번성을 네 번째는 추수감사의 제의로 이뤄지는 것이다.

벗의 얘기로는 예전의 성황이었던 것에 비해 많이 약해진 것을 실감한다고 하는데, 변해가는 시대의 양상이 그러할 것이고, 이 신들을 믿고 의지했던 어르신들이 돌아가심에 따른 것도 있으며, 코로나 19로 명명된 전염병의 탓도 함께 있을 것이라 했다.

심방이 마을의 온갖 대소사를 가지고 본풀이를 하는 중에도 마을 할머니들은 장작불에 기대어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우신다. 마스크도 쓰지 않고, 도란 도란 제주어를 사용하며 주고받는 이야기는 자식에 관한 이야기, 심방의 사설에 관한 이야기 등으로 번져 간다.
하도리 성벽.

▲“백주또는 어떤 여신이었을까”

그런 일련의 현장을 보고 있는데 밥을 먹자고 부른다. 입구의 차일에서는 메밀죽을 나눠주고 있었다. 꿩을 넣은 메밀죽인데, 이런 제의의 행사에는 나눠먹는 것이라고 마을에서 미리 준비해서 찾아오는 모든 길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었다.

한라산 두병에 꿩메밀죽을 먹는데, 귀에 걸려있는 마스크를 본 동네 어르신이 한 말씀 하신다. “당신이 돌보고, 메밀죽 먹고, 한라산으로 소독하는디 무슨 병이 오겠소”라는 일침이다. 현지의 분들은 그렇게 백조또 본향당에 의지하고 사셨음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본향당을 품고 있는 당오름 산책로를 걸었다. 산책로가 잘 조성이 되어 있었고 곳곳에 제주의 나무들에 대한 설명문이 있었다. 바야흐로 봄이 오고 있음을 피부로 실감하며 다시 본풀이가 진행 중인 본향당을 거쳐 길 위로 나왔다.

신들의 고장 제주의 신들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이 그저 1만 8000신이 있는 곳이라고 말하는 나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여신, 태초의 신들은 여신이었고, 그것이 지리산의 마고할미, 변산의 개양할미, 제주의 설문대할망 같은 분들이었는데, 점차 남성들의 시대가 되며 이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폄훼되며 차츰 남성본위의 신앙체계로 정립되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는 자주 접하는데 반해 작년에 김신명숙 선생님의 “여신을 찾아서”라는 책을 본 것 말고는 아직 부족한 내 자신이 보였다.
하늘에는 하얀 구름의 행진, 그리고 별. 제주는 아직 청정지역.

이번 기회에 백주또는 어떤 여신인지, 어찌하여 소로소천국은 소를 잡아먹었고, 그리하여 내침을 당해서 아랫 당으로 강등을 당했는지 파악해 봐야 하는데 싶어졌다. 현지에 대한 부족한 지식은 궁금증을 낳지만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시 일상이라는 테두리에 갇혀 사진 몇 장만 기억하는 여행법에 어느새 길들여진 내가 보였다.

스스로에게 혀를 끌끌 차며 적어도 육지로 나가서는 제주의 신에 대한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제주에 왔으니 적어도 오름 다운 오름은 올라야 겠다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다랑쉬오름과 용눈이오름을 향해 차를 저어갔다.(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전고필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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