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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인의 인문학 심포지아]마크 트웨인의 `거짓말에 관하여’
사랑을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배워야 한다
진짜 거짓말과 진짜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김시인
기사 게재일 : 2015-10-19 06:00:00
▲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삶을 추구하지만 그들은 매우 위선적이다. 영화 `바베뜨의 만찬’ 중.

 아브 하산은 부자 상인의 아들이었다. 하산은 아버지가 죽고 재산을 물려받자 친구들과 함께 흥청망청 놀다 재산을 모두 날려버렸다. 빈털터리가 된 하산을, 친구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크게 실망한 하산은 다시는 친구들을 찾지 않을 것이며 이방인만을 사귀기로 결심했다.

 하산의 독특한 친구 사귀기가 소문이 나자 자상한 왕이 상인으로 가장해 하산과 친구가 되었다. 왕이 하산에게 소원이 무어냐고 묻자 그는 왕이 되는 거라고 말해버렸다. 왕은 하산을 놀려주려고 하산의 음료에 약을 넣어 재우고 잠든 틈을 타서 그를 자기 왕궁으로 데려갔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뜬 하산은 왕의 침실에서 왕의 옷차림을 한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꿈일 거라 생각했지만 모든 것이 현실이었다. 왕궁의 모든 신하들과 시녀들까지 모두 왕이 시킨 각본대로 움직였으므로 처음에는 믿지 않던 하산도 사실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열흘 뒤 왕은 다시 약으로 하산을 재워 그의 집으로 몰래 데려다 놓았다. 장사를 떠났다 돌아와 지쳐 잠이 든 것이라 생각한 하산의 어머니는 아들을 흔들어 깨웠다. 잠이 깬 하산은 바뀐 현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는 뒤바뀐 현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하산이 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자 어머니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아들을 공공의료원에 입원시켜 치료를 받게 했고,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르자 하산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소식을 들은 왕은 다시 하산을 왕궁으로 데려갔으나 하산은 이제 왕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 ‘아라비안나이트’ 中 ‘아브 하산 이야기’

 현실을 망각하고 꿈에 몰입하는 하산 못지않게 하산을 골탕먹이는 왕의 놀이에 대한 몰입도 만만치 않다. 거짓과 속임수는 옳지 못한 일이기에 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여겨지는데 고매하신 왕이 한낱 백성에게 일삼아 속임수를 쓴다는 것은 영 마뜩치 않은 일로 보인다. 그런데 왕은 왜 하산에게 거짓 속임수를 쓴 것일까? 거짓과 속임수는 정말 사람에게 해로운 것일까?

 거짓말은 절대 해서는 안될 죄악인가

 

 “거짓말을 했다는 거내? 사실을 말해봐라. 정말로 거짓말을 한 것이냐?”

 가족은 모두 네 명이었다. 홀로 된 마거릿과 열여섯이 된 그녀의 딸 헬렌, 그리고 마거릿의 시고모인 쌍둥이 자매 헤스터와 한나였다. 마거릿과 시고모들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란 하나밖에 없는 아이 헬렌에게 온갖 사랑을 쏟는 일이었다. 헬렌의 웃는 얼굴을 보거나 헬렌의 노래를 들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인 것 같았고 이런 삶에 늘 감사했다.

 두 할머니는 손녀 헬렌을 소중히 여겼던 것만큼이나 엄격한 도덕과 윤리의식을 가르쳤다. 할머니들은 이 가정에서 가장 권위가 있었고 마거릿과 헬렌은 두 할머니의 도덕관과 종교관에 따른 사고방식에 순종했다. 그래서 이 가정에서 거짓말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헬렌이 어느날 울면서 두 할머니에게 거짓말을 했노라고 고백했고 할머니들을 너무 놀라서 할말을 잃고 말았다. 두 사람은 창백한 얼굴로 헬렌을 쳐다보기만 했다. 용서해달라는 헬렌의 간곡한 요청에도 할머니들은 거짓말을 했다는 말에 고통스러움만을 느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할머니들은 거짓말을 한 것이 사실이냐고 되물을 뿐 다른 말은 찾지 못했다. -마크 트웨인의 ‘거짓말에 관하여’ 中

 지극히 청교도적인 두 할머니가 거짓말을 했다는 어린 손녀 헬렌의 고백에 대처하는 방법은 고지식하게도 딱 한 가지였다. 장티푸스를 앓고 누워있는 엄마 마거릿에게 데려가 고백하고 용서를 빌게 하는 일이었다. 이 일은 의사가 철저히 금지시킨 일이었다. 할머니들에게 중요한 것은 거짓말에 대한 고백과 용서를 비는 일일 뿐 손녀의 건강은 뒷전이었다. 이 일로 헬렌은 장티푸스에 감염되었고 건강이 악화되었다. 거짓 없이 사는 게 좋은 것인가, 아니면 질병 없이 사는 게 좋은 것인가?

 

 거짓말로 다른 이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거짓말이란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허위로 꾸며 말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허위로 말하지 않고 사실을 말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옳게 산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긴 하지만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경우는 정말 없는 것일까?

 인간이 신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초월자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맡기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의지하고 믿는 대상에게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사실을 말하여 신앙을 생활화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신앙이 결국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사람 사이의 관계방식은 수단의 지위에 머물러야 한다. 수단이 목적이 될 수는 없으며 그럴 경우 필연적으로 교조주의에 빠지게 되며 이는 곧 폭력을 부르고야 만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헬렌이 거짓말을 해서 엄마에게 고백하게 해야만 했어요.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였어요.”

 “아니, 고작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그런 짓을 벌였단 말입니까? 나는 하루에도 수천번씩 거짓말을 해요.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해요. 당신들도 그렇고요. 그런데 그런 일로 사람의 목숨을 거는 일을 저질렀다는 말입니까? 그 어린애가 거짓말을 했으면 얼마나 큰 거짓말을 했다는 겁니까? 사람의 목숨을 해칠 정도로 큰 거짓말이었나요?”

 “설령 그게 큰 거짓말은 아니라 해도 거짓말은 거짓말입니다. 모든 거짓말은 죄악이라구요. 어떤 거짓말도 우리는 용납할 수 없어요.”

 “당신은 나쁜 거짓말과 좋은 거짓말도 구별할 줄 모른단 말입니까? 때로는 남을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정녕 모른다는 겁니까? 만일 다른 사람이 상처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전 거짓말은 안합니다. 절대 안해요.”

 “당신이 거짓말을 함으로써 고통으로부터 친구를 구할 수 있다면?”

 “목숨이 걸린 일이라 해도 거짓말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친구의 영혼을 위해서도?”

 “거짓말은 그 어떤 것이건 죄악이에요. 우리의 영혼이 타락에 빠지는 길이라구요. 만약 회개하지 못하고 죽는다면 우리의 영혼은 구원받지 못할 거에요.”

 “그건 믿음이 아니라 미신입니다. 이젠 좀 깨달으시오.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 좀 버리고 타인을 생각하란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 당신의 영혼을 한번쯤은 위험에 빠뜨려 보라구요. 그로 인해 당신의 영혼이 구원받지 못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구할 수 있다면 가치있는 일 아니요? 이젠 당신들 가족을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당신들 영혼만을 구하려는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십시오. 일생 동안 한 마디의 거짓말도 안하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러니 위선에서 깨어나세요, 제발. 자기만족을 위한 거짓말은 신 앞에서나 하시오.” 마크 트웨인의 ‘거짓말에 관하여’ 中

 

 ‘사실’은 ‘진실’ 앞에 순종해야 한다

 

 헤스터와 한나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병에 걸린 어린 헬렌은 위독해졌다. 이미 위독한 마거릿은 엄마를 찾지 않는 헬렌을 찾으며 괴로워 한다. 이제 헤스터와 헬렌은 신념과 현실 앞에서 갈등한다. 마거릿의 건강상태를 감안해서 헬렌의 병을 감추어야 할지 아니면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고민한다. 둘은 마거릿에게 거짓말로 헬렌의 건강을 말한다. 평생 지켜온 신념을 거두고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마거릿을 위하는 일이라고 인정한다.

 두 할머니의 지극한 보살핌과 위로를 받았으나 헬렌과 마거릿은 숨을 거둔다. 그러나 두 사람은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도 평화롭게 눈을 감는다. 그럴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헬렌의 주검 옆에서 기도를 올리는 헤스터와 한나 앞에 천사가 나타나 거짓말을 한 두 사람의 죄를 꾸짖고 회개하라 명한다. 두 사람은 죄는 지었지만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난다 해도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 고백한다. 천사는 한순간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서 판결을 한다. 그 판결은 무엇이었을까?

 청교도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욕망덩어리여서 끊임없이 욕망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본능적 욕망을 넘어서서 사회적 욕망까지 실현해야만 하는 존재다. 무한한 욕망을 잠재우고 신 앞에 겸허한 자세로 존재한다는 건 매우 어렵다. 청교도적 관습은 이런 청교도적 생활이 인간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의 삶 안에 청교도적 삶이 있지 그 역으로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존재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왕은 아브 하산에게 많은 돈을 주고 왕비의 아름다운 시녀와 결혼시켰다. 하산과 아내는 아주 행복하게 살았다. 세월이 흘러 무료해진 하산은 아내와 짜고 왕에게 거짓말을 하기로 한다. 하산은 왕에게 달려가 아내가 죽었다고 말하며 슬퍼한다. 왕은 그를 위로하며 많은 돈을 주며 장례를 치르라 한다. 다음에는 시녀였던 아내가 왕비에게 달려가 남편의 죽음을 말하고 슬피 운다. 왕비 또한 시녀를 위로하며 많은 돈을 주어 돌려보낸다.

 왕과 왕비는 하산의 집에 닥친 불행을 두고 안타까워 하는데 죽은 사람이 서로 달라 언쟁을 벌인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아랫사람을 시켜 알아오게 하는데, 왕이 보낸 사람은 부인이 죽었다 하고 왕비가 보낸 사람은 남편이 죽었다고 말한다. 번갈아 죽은 체한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괴이하다 여긴 왕과 왕비는 직접 하산의 집을 찾았는데 방에 두 사람의 시신이 동시에 안치되어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왕은 이웃에게 두 사람 중 누가 먼저 죽었는지를 알아낸 사람에게는 큰 상을 내리겠다고 명한다. 이때 갑자기 두 시신이 벌떡 일어나 서로 자기가 먼저 죽었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하산의 거짓말로 인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왕은 그를 처벌하지 않고 명한 대로 그들 부부에게 모두 상을 주었다. - ‘아라비안나이트’ 中 ‘아브 하산 이야기’

 왕은 왜 하산을 용서했을까? 옛날 하산이 가산을 탕진하고도 요전히 허영에 빠져 있었을 때 왕은 극약처방으로 하산의 정신을 돌려놓았다. 어쩌면 할 일없는 욍처럼 보이지만 참으로 자상한 왕이 아닌가? 하산의 거짓말은 어떤가? 왕을 속인 무엄함이 지나치지만 무료한 왕에게 옛 추억을 떠올릴 만한 재미를 선사했으니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닌가?

 거짓말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이익을 위해 술책을 부리는 건 나쁜 일임에 틀림없지만 누군가를 위해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때도 있다.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이지만 사실을 말한다고 해서 반드시 진실을 말한다고 할 수는 없다. 진실은 목적이고 사실은 수단이다. 수단은 목적 아래 놓여야 하고 사실은 진실 앞에 순종해야 한다. 이 명백한 진리를 혼동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이는 진실도 아니고 진리도 아니다.

김시인 <인문학공간 소피움 대표>

극단적 금욕으로 결혼을 포기한 마르티느. 영화 `바베뜨의 만찬’ 중.
만찬이 끝난 사람들에게 남는 건 거짓이 아니고 진실이다. 영화 `바베뜨의 만찬’ 중.
바베뜨가 마련한 만찬은 욕망의 분출구다. 영화 `바베뜨의 만찬’ 중.
욕망의 만찬장에서 거짓과 위선은 사라진다. `바베뜨의 만찬’ 중.
청교도적 삶은 금욕과 순종을 미덕으로 한다. `바베뜨의 만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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