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 같은 모습에 숨겨진 ‘아이’ 같은 심성
100명 이웃 중 ‘50명’ 분 해내는 아이들의 ‘사부님’

▲ 꺽정이 관장님은 돈을 꺼내기라도 할 것처럼 지갑을 열고는 명함을 그 담뱃불지진 흉터에게 전했다.

 내가 꺽정이관장님을 처음 만난 것은 큰 애가 일곱 살 되던 해였다. 아들과 같은 유치원에 다니던 친구의 엄마가 친척이라며 소개해줘 유치원 친구들 서너 명이 전통무예 택견을 배우러 전수관에 다니게 되었다.

 관장님의 무술단수를 합하면 무려 18단이 넘어간단다. 무술합계가 18단이지만 무술만 연마한 것이 아니다. 호남좌도풍물 전수자이며 서예와 그림에도 조예가 있다.

 관장님은 농구를 하다가 요즈음에는 예능으로 뜨고 있는 구척장신 서장훈 만큼이나 덩치가 좋다. 키 크고 덩치 좋은 사람들이 그렇듯 관장님은 모든 것이 `사각형’이다. 온몸이 커다란 양문형냉장고라면, 얼굴은 구리빛 도는 네모난 쟁반이다. 머리는 깍두기처럼 짧게 스포츠해 전자렌지고, 가슴이 잘 발달한 상체는 나이 살에 허리가 약간 굵어져 김치냉장고다.

 관장님을 처음 본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 큰 사람은 처음 본다고 말한다. 우리의 전통무예와 풍물을 전수해주는 일을 하기 때문인지 관장님은 일 년 내내 사시사철 개량한복을 입고는 단정하게 대님을 치고 가죽으로 만든 미투리를 신고 다닌다.

 옷차림만 떠올리면 곱상하고 날렵한 홍길동을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놉!’(절대 아님)이다. 투박하고 육중한 임꺽정을 그려 보았다면 `ㅇㅈ!’(인정)이다. 턱에 수염만 기른다면 조선 명종 때 황해도와 경기도를 호령하던 의적 임꺽정이 환생이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다.

 

 임꺽정이 환생한 듯한 모습

 

 그런데 꺽정이관장님은 덩치만 산만큼 컸지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이어서 별난 이야기도 아닌데도 대화하면서 엄마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지 못했다. 안면을 튼 지 일 년 정도가 지난 다음에야 이야기하며 겨우 힐끔힐끔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꺽정이관장님을 정말로 좋아했다. 애들이 꺽정이관장님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나는 혹시 뇌물 같은 것 (과자를 준다든 지, 영화를 보여 준다든 지, 선물을 준다든 지)으로 애들의 환심을 사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쓸데없는 기우에 불과했다.

 꺽정이관장님의 인기비결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련시간에 항상 애들과 같이 매트에서 구르고, 명상시간에는 함께 명상하고, 풍물을 치는 날이면 같이 어깨 들썩이며 박자를 맞추고 그러다 보니 정이 든 것이다. 아이들을 두 팔로 안아서 차에서 내려주는 몸짓 하나에도 다정함이 듬뿍 배어있다. 엄마들과 이야기 할 때면 수줍어 말을 더듬으면서도 정작 아이의 엄마보다 더 아이들을 염려하고 아이들이 인성이나 성장에 도움이 될 만 한 내용을 조언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예의에 어긋나거나 버릇없이 굴면, 또는 운동을 게을리하면 눈물 콧물 쏙 나오게 혼을 내는 무섭고 엄한 훈장님이기도 하다. 특히 고학년들은 조금이라도 꺽정이관장님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할 경우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한다.

 택견은 우리의 전통무예인데 태권도의 겨루기를 택견에서는 `대걸이’ `맞서기’라고 한다. 간단하게 규칙을 말하면 `대걸이’는 상대방을 넘어뜨리면 이기고, `맞서기’는 상대방을 넘어뜨리거나 발길질로 얼굴을 가격하면 이긴다.

 이크! 에크! 이크! 에크! 하며 굼실 굼실 거리는 것을 품(品)밟기라고 하는데, 오른 발은 품(品)자의 오른쪽네모에 왼발은 품(品)자의 왼쪽네모에 두었다가, 품(品)자의 앞쪽네모를 한 발씩 춤추듯 번갈아 밟으며 몸의 균형을 잡으면서 상대방의 허점을 노리는 기본동작이다. 이때 물레방아 돌리듯 하는 손동작을 활개짓이라 한다.

 이 품(品)밟기를 하다가 틈이 보이면 전광석화처럼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다. 택견은 상대방을 때려 눕히는 공격적인 면보다 방어적인 면을 중시한다. 그래서 상대방을 넘어뜨릴 때도 다치지 않도록 배려한다. 공격하고 난 다음 상대방이 넘어지면 상대방을 잡아주어 다치지 않게 배려하고 발길질에 상대방이 얼굴을 정통으로 맞으면 얼른 다가가 상대를 위로한다.

 태권도나 다른 무술에서는 일단, 이단, 하는 것을 택견은 한 동 두 동이라 한다. 즉, 동으로 급수를 매긴다. 방어와 자기수련을 위한 무술이므로 두 동이 안 된 수련생들에게 주먹기술을 가르치지 않으며 주먹기술은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

 

 인정 넘치지만 무섭고 엄한 훈장님

 

 택견의 묘미는 굼실거리며 활개짓하는 품(品)밟기와 걷어차기, 후려차기, 째차기, 곧은발질, 는질러차기, 내어차기, 덧걸이, 낚시걸이, 안우걸이, 뱅뱅이질, 딴죽등 화려한 발기술에 있다. 꺽정이관장님이 가르치는 전수관에, 지금은 대학생이 된 큰애는 일곱 살에 시작해 초등 5학년까지, 작은애는 네 살 때 덤으로 형을 따라 다니다가 이년 뒤부터 정식관원이 되어 중학교 2학년말까지 되도록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녔으니 작은애는 여남은 해 동안이나 수련하였다.

 당시, 작은 아이는 나이는 어렸지만 어른들도 제법 많은 꺽정이관장님의 전수관에서는 경력으로는 제일 고참이었다. 그러다 보니 작은애는 관장님과 정이 들어 부자지간 이상으로 친근하게 지냈다. 전수관에서 우리집이 제일 멀다 보니 전수관을 오가는 차안에서 이얘기 저얘기 하지 않는 이야기가 없단다. 그때 꺽정이 관장님이 작은애한테 들려준 무용담이 하나 있다.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다고 한다. 시내에 있는 어떤 공원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시간이 남아 먼저 도착해 벤치에 앉아 철쭉이며 목련등 화사하게 핀 봄꽃들을 바라 보며 봄날을 만끽하며 있었다.

 그때 팔뚝에 담뱃불로 지진 흉터와 참을 인자를 새긴 문신, 하트모양에 꽃힌 화살 문신등을 새긴 사내들 대여섯 명이 껄렁껄렁 건들거리며 꺽정이 관장님 앞에 터억 서드란다. 마침 꺽정이관장님이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어서 그의 얼굴을 살피지는 못했던 것 같았다.

 `엣지’있는 꺽정이관장님을 보고 흠칫하더니만 자기들은 쪽수가 있는지라 그것을 믿었는지 참을 인자 문신의 사나이가 용감무쌍하게 나섰단다.

 “형씨! 담배좀 빌립시다!”

 꺽정이 관장님은 울컥했지만 화창한 봄날 기분을 잡치기 싫어 점잖게 대답했다.

 “미안 합니다만.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하트에 꽃힌 화살문신이 나섰다.

 “담배를 안핀다고라우. 그라믄 담배값이라도 주셔야지!”

 원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더란다.

 “무어라고요? 돈을 달라구요?”

 그러자 이번엔 팔뚝을 담뱃불로 지진 흉터의 사나이가 나섰다.

 “이 양반아 귓구녕은 뽄으로 뚫어놨소? 입 아픈 디 몇 번을 말해야겄소.”

 

 싸우지 않고 껄렁껄렁 패거리 물리친 사연

 

 조무래기들 다섯 명쯤이야 못해볼 것도 없지만은 그렇다고 전통무예를 가르치는 택견인인 꺽정이관장님이 이 양아치들과 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난감해 하다가, 순간 그들의 시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돈을 꺼내기라도 할 것처럼 지갑을 열고는 명함을 그 담뱃불지진 흉터에게 전하고는

 “제가 이런 일을 하느라고 돈이 없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라며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이야기 했단다. 얼떨결에 명함을 받아든 담뱃불지진흉터가 명함을 찬찬히 보더니 당황해하며 참을 인자와 하트에 꽃힌 화살에게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옆에서 얼쩡거리고 있던 놈들에게까지 그 명함이 한 바퀴 다 돌았다.

 담뱃불 지진 흉터가 먼저 슬슬 뒤꽁무니를 빼기 시작했고 뒤이어 참을 인자와 하트에 꽃힌 화살이, 그리고 나머지 사내들이 줄줄이 도망가더란다. 이 이야기를 하며 작은 애는 꺽정이관장님을 정말로 자랑스러워했다.

 작은 애가 대회에 나가 응원하러 갔다가 꺽정이관장님이 맞서기 시범을 사범들과 하는 것을 몇번 보았는데 시나리오를 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리얼’로 했다. 이크! 에크! 품밟기를 하다가 순식간에 나오는 그 큰 덩치의 꺽정이관장님의 발길질에 차이거나 걸이기술에 걸리면 상대방은 퍽퍽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나가 떨어진다.

 낙법을 하여 충격을 줄이기는 한다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 나는 살벌하고 무섭기도 했다. 매트위에서는 한 마리 야수 같지만 전수관을 벗나나면 단 한 번도 완력을 쓴 적이 없었다. 도복을 벗으면 야수 같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어진다. 오히려 정반대로 그가 유하고 아이 같은 심성의 소유자임을 느꼈다. 그래서 아이들이 꺽정이관장님과 함께 있으면 해맑아지고 즐거워 하는 것 같았다. 또 자상하게 아이의 심성을 어루만지는 손길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가끔 꺽정이관장님께 내가 놓칠 수 있는 아이들의 장점이나 단점, 인성이나 성품등을 묻기도 하고 때론 아이들의 장래에 관한 이야기들도 툭 터놓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꺽정이관장님도 “자기 아들이나 진배없다”며 우리 아이들의 세밀한 모습까지 미주알 고주알 사소한 것까지 모두 이야기해주었다.

 “아이 하나 키우는데 이웃 백 명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서양속담이 있다. 꺽정이관장님은 백명의 이웃 중 오십여 명 정도의 몫을 해내는, 우리 애들의 몸과 마음의 사부님이었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 남자라면 누구나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그런데 진짜로 강하다는 것은 무엇을 이르는 것일까?

 

 자상함·인자함 속 느껴지는 진짜 강함

 

 화창한 봄날 공원에서 시시껄렁한 건달 대 여섯 명을 줄행랑 치게 하고 자기보다 한참이나 젊은 사범들을 매트에 꽂아 버린 꺽정이관장님은 남자들이 동경하는 강한 남자가 틀림없다. 그러나 강한 남자 꺽정이관장님은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거들먹거리며 다니지 않는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꺽정이관장님은 그저 우리 애를 비롯한 아이들과 제자들에게 정성과 애정을 쏟아 붇는 자상하고 인자한 모습의 사내일 뿐이었다. 이런 꺽정이관장님을 지켜 보며 나는 강하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독수리나 호랑이 같은 맹수들이 평소에는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을 드러내지 않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시퍼런 눈빛만으로도 상대방을 혼비백산하게 만들듯, 결정적인 순간이나 반드시 필요한 순간에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어야 진짜로 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꺽정이관장님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나는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진짜로 강한 것은 자상함과 인자함같은 우리가 흔히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들과 같은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홍은숙<웃음꽃도서관 소피움 연구원>

일러스트=정혜원<살레시오여중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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