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합지고 내 것 잃어도 태연한 아이
물질 만능주의 세상을 살아가는 법

▲ 무량이의 태몽은 황소였다.
 우리아이의 태몽은 황소였다. 친정엄마가 꿈을 꾸었는데 시커먼 황소 두 마리가 사립문으로 성큼성큼 들어오더란다. 힘세고 건장한 아들이 연달아 생길 거라며 엄마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는 조금은 걱정스러웠다. 새벽같이 일어나 별이 뜰 때까지 논밭에서 써레질이나 쟁기질을 해야 하고 무거운 짐을 실은 구루마를 끌어야하는 황소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이름이었다. 이름을 잘 지어 황소에 굴레 지워진 힘든 노동을 걷어내기로 마음먹었다. 며칠 고민 끝에 무량태수란 말을 찾아냈다. 동네 어른들이 아무런 근심과 사심이 없이 마냥 편하게 띵가띵가하며 놀고먹는 사람들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 생각나자 무릎을 쳤다. 사전을 찾아 뜻을 헤아려 보니 무량(無量)이는 양을 측정할 수 없을 만큼 큰 마음을 가진 사람이란 뜻이었고 태수(泰水)는 그냥 큰 물을 말하는 것이었다. 무량의 또 다른 뜻은 끝이 없는 엄청 큰 수인 `무량대수’의 줄임말 이었다. 우리가 생활에서 접하고 있는 수는 1만 1억 조 정도 인데 그 다음이 경 해 자 양 구 간 정 재 극이다. 그리고 항하사 아승기 나유타 불가사의까지 헤아리고 나면 그 다음이 무량수이다. 각 단위는 1만 개가 모여야 다음 단위가 된다. 단위가 열 여덟이니 거칠게 계산해도 무량대수는 자리수가 50은 거뜬히 넘어가는 큰 수이다. 무량태수의 사전적 의미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아 첫째 아이는 무량이 둘째 아이는 태수라 부르기로 결정했다. 물론 나와 남편이 무량이와 태수에 담은 의미는 동네 어른들의 해석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서 누리게 될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고려해 태명과 아명으로만 쓰기로 했다.

 큰 애는, 태안에 있을 때부터 무량이가 될 소지가 다분했다. 출산예정일이 한참이나 넘었는데도 엄마인 내 배 한가운데서 놀기만 할 뿐, 자궁방향으로 내려오지를 않았다. 진통이 이어지고 양수가 터져도 나올 기미가 없자 의사선생님은 결국 제왕절개 끝에 뱃속에서 세상 모르고 놀고 있는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왔다. 나는 자연분만을 시도하느라 꼬박 하루를 부대낀 다음 수술하는 바람에, 회복하고 아이를 제대로 안아보기까지는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때 아이를 건네주며 친정 엄마가 불쑥 던진 말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야 야, 요놈은 욕심이 한나도 없을랑갑다. 요놈이 손을 쫙 펴고 있어야. 다른 놈들은 날 때부터 주먹을 꽉 움켜쥐고 지 몫을 챙길라고 용을 쓰는디, 니 애기는 손바닥을 쫙 펴고 있어야. 내가 손가락을 대니까 그제서야 내 손가락을 잡아주네.”

 

 5살 무렵, 잃기 위해 딱지는 치는 경지

 

 무량이는 큰 병치레 하나 없이 황소처럼 씩씩하게 잘 자라주었다. 어느덧 다섯 살이 되었다.

 무량이가 다섯 살 무렵 `포켓몬’이니 `디지몬’이니 하는 일본만화 열풍이 불었다. 만화의 영향으로 디지몬 캐릭터로 만든 고무딱지도 덩달아 인기가 치솟아 그 때의 아이들은 딱지치기를 하느라 모두들 정신이 팔려 있었다. 무량이도 디지몬을 좋아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후 6시면 만화영화를 보려고 집으로 달려 왔다. 그런데 어느 날, TV에서 만화를 시작해도 양손 가득 딱지를 들고 나갔던 무량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옆 동에 있는 준서집으로 찾으러 나갔다. 모통이를 돌아서자 무량이가 잰걸음을 걷다가 나를 보더니 멋쩍게 웃으며 달려오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빈손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엄마, 준서가 딱지치기를 하면서 자기가 내꺼 다 딸 때까지 집에 못간대요. 그래서 제가 힘을 빼고 살살 쳐서 다 잃어주었어요.”

 순간, 화가 난 내가 무량이에게 물었다.

 “준서가 딱지를 다 따갔는데 아깝지도 않니? 아무리 그래도 일부러 져 준 것은 바보같은 짓이지!” 그러나 무량이는 분하거나 서운한 감정이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다.

 “준서는 딱지 많이 따서 좋고 저는 빨리 와서 만화보니까 좋아요.” 나는 이 말을 속으로 삼키고 말았다.

 `무량! 으이그, 잃기 위해 딱지를 치는 경지를 어찌 알았누!’

 무량이는 `아Q정전’에 나오는 아Q의 정신승리법을 뛰어넘은 `지면서도 이기는 법’을 알고 있었고 승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어떤 나름의 도를 어린 나이에 이미 알았던 걸까?

 다음 날이었다. 준서 엄마는 준서가 어제 딱지를 두 배로 따온 것을 보고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준서가 목표의식이 뚜렷하고 승부근성 또한 대단하다고 동네 아줌마들 앞에서 목청을 엄청 높여 자랑했다.

 `지금은 모두들 일등! 일등! 자랑하지만, 우리 아이들 세상은 등수를 매기지 않고 함께 가는 한걸음이 중요해질 거야. 일찍이 승자독식의 탐욕을 벗어난 우리 무량이가 훨씬 대단한 아이로 자라날 거야.’ 나는 속으로만 되뇌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니, 탐욕을 비껴 선 우리 무량이가 더 대단하다고, 벌써부터 대인배의 싹수가 보인다고, 생각했던 나의 태도 또한 준서엄마와 다를 바 없었다. 내 자식을 자랑하며 또 다른 방식의 `일등아이’로 키우고 싶어하는 마음이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준서는 이상하게도 늘 따기만 하는 딱지치기가 더 이상 재미없어졌다. 이번에는 무량이에게 세발자전거 시합을 제안했다. 209동 준서네 집 현관 앞에서 나란히 출발해 아파트 한 중앙에 있는 공원 벤치까지 먼저 가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했다.

 

 다 잃어버려도 “괜찮아요” 천상 무량태수

 

 그런데 준서는 집이 일층이라 항상 자전거를 타고 놀았고 수시로 아이들과 자전거 시합을 했기 때문에 실력이 좋았다. 한편, 무량이는 자전거를 탈 시간이 없었다. 유치원이 끝나면 바로 차를 타고 택견도장에 나가 운동을 하고 오면 오후 6시가 되었다. 어린이날 아빠가 사 준 예쁜 노란색 세발자전거가 있었지만 베란다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니 시합은 보나 마나 뻔했다. 준서는 자전거를 잘 타지만 주로 초등학생 형들과 놀기 때문에 맨날 꼴찌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골이 난 준서는 무량이하고라도 시합해서 당당히 우승해 승부욕을 채우고 싶었다. 준서는 무량이에게 맛있는 과자도 주고 아끼는 고무딱지도 몇 개 주면서 자전거 타기 시합에 꼭 나오라고 몇 번이나 부탁했다. 준서의 부탁을 무찌르지 못하고 무량이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엄마인 나에게 허락을 받고 무량이는 택견도장을 빠지고 준서와 자전거 시합을 하며 신나게 놀았다. 내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무량이도 벌써 집에 있었다. 제일 좋아하는 디지몬 만화를 보고 있었다. 자전거 신나게 많이 탔냐고 물으니 고개만 끄덕끄덕 만화삼매경에 푹 빠져있다. 그런데 자전거는 어디다 두고 왔는지 물었더니 벤치 앞에 두고 왔다며 아빠 오면 같이 가져오겠다며 대꾸 한다.

 그런데 둘째를 놀이방에서 데려오고 저녁준비를 하느라 나도 정신이 없어서 자전거를 챙기지 못했는데 그날 자전거는 없어져 버렸다. 준서랑 신나게 시합하고 또,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랑 하다가 다시 벤치근처에서 놀았다는데 무량이의 노란 자전거는 사라져버렸다. 동마다 입구에 자전거를 모아두는 곳이 있어 무량이와 함께 샅샅이 훑어보고, 관리실에 부탁해 방송도 해보았지만 자전거는 찾을 수 없었다. 무량이가 돌 때 삼촌한테 선물 받은 붕붕자동차는 이미 동생에게 물려주어서 지금 현재로는 노란 세발자전거가 무량이의 가장 소중한 재산인데 그것이 잠깐 사이에 없어져 버린 것이다. 나는 자전거 바퀴에 흙도 몇 번 닿지 않은 새것을 잃어버린 것도 아까웠지만 솔직히 더 걱정되는 것은 아끼던 물건을 도둑맞은 아이가 느낄 세상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누군가가 남의 것을 훔쳐갔다는 것을 아이에게 설명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어서 자전거가 주인을 찾아 어디선가 돌아와 주길 기도 했다. 그런데 확실히 무량이는 무량이었다. 포기가 빠른 애인지, 욕심이 애초에 없었던지.

 “엄마, 어떤 친구나 형아가 자전거 타고 싶어서 대신 타고 있나 봐요. 나는 오늘 많이 탔어요. 그니까 다른 친구가 타도 괜찮아요.” 한 마디를 툭 던지고 미련 없이 방으로 가서 디지몬을 본다. 아이가 욕심이 없다는 것은 마음 편하려는 나의 주관적 감정이고 물건에 대한 책임감이 없고 소유욕이 너무 없어 나중에 어른이 되면 큰 문제가 될 성 싶어 걱정이 되었다. 초등학교에 들어 가자 줄넘기 같은 사소한 것부터 체육복까지 잃어버리기 일쑤다. 왜 다른 아이들이 간편하게 책상에 넣어 두지 않고 매번 가방에 꼬박꼬박 챙겨 갖고 다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니 초등학교 졸업이다. 중학교 때, 사이즈가 표시된 종이를 떼기도 전에 누군가가 체육복을 가져가 버려서 자기 용돈을 털어 다시 사야했고, 실내화는 큼지막하게 이름도 써 놓았는데 누군가가 발에 꿰고 가버렸단다. 나는 사물함 열쇠를 좀 더 튼튼한 것으로 준비해 아이들이 쉽게 열지 못하도록 하자고 몇 번을 이야기 했는데도 무량이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잃어버린 교과서는 담임선생님이 전학 가는 아이 것을 보관해 두었다가 다시 주었다. 그런 사건을 겪은 다음 무량이는 모든 학용품에 이름을 쓰는 정도의 책임성은 생겨났지만 타고난 천성을 어찌할 수는 없어, 크고 작은 분실, 실종 사건이 이어졌다.

 

 자신이 놓친 것을 억울해 하지 않는다면…

 

 무량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큰 맘 먹고 가족여행을 갔다. 개인 용돈은 10만 원 정도 였다. 여행을 마무리하며 쇼핑을 했다. 다른 식구들은 이 물건 저 물건 비교해가며 신중하게 기념품을 골랐다. 그런데 무량이는 거침이 없었다. 가게를 한 번, 쑥 둘러보더니 모차르트가 새겨진 바이올린 모양의 상자에 든 값 비싼 초콜릿을 세 개나 집어 들었다. 무량이의 용돈은 거의 바닥이 나 버렸다. 자기 물건은 한 개도 없었고 가장 친한 친구 세 명에게 줄 선물이었다.

 무량이를 처음 안아 보던 날 친정엄마가 했던 말이 다시 떠 올랐다.

 “야 야, 요놈은 욕심이 한나도 없을랑갑다. 요놈이 손을 쫙 펴고 있어야. 다른 놈들은 날 때부터 주먹을 꽉 움켜쥐고 지 몫을 챙길라고 용을 쓰는디, 니 애기는 손바닥을 쫙 펴고 있어야….”

 아~아. 무량, 무량, 감개무량!

 우리는 지금 `헬조선’이라 회자되는 살벌한 경쟁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자기 물건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아이는 어디서나 바보취급하고 부족하다 조롱할 것이다. 태초에 모든 것에 주인이 있는 것 같은 물질 만능주의 세상에서 내 것을 내놓는 것, 내 것을 잘 다지지 못하는 것은 어리숙하고 손해나는 삶이다. 그러나 자신이 놓친 것을 억울해하지 않는다면, 누군가에게 양보했거나 그것은 본래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불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헬조선을 혁파하기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겠지만 말이다.

홍은숙<웃음꽃도서관 소피움 연구원>

일러스트=이영섭<호남대 의상디자인학과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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