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같은 내 마음에 파란 의자가 놓여있다면

▲ ‘파란 의자’ 중에서.
 그림동화를 아이들만 보는 것으로 알고있다면 그건 ‘위대한’ 착각입니다. 인류는 글 이전에 그림을 발명하여 그들의 감정과 사상을 후세에 전했습니다. 그림은 여전히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막강한 힘이 있습니다.

 동심을 ‘분실’하셨나요? ‘어른들이 다시 보는 그림책’은 그림으로 읽어보는 그림동화 이야기입니다. 자,그림책 속으로 날아가 볼까요? Magic chair ride!<편집자주>
 
 이 책의 표지 그림에는 사막 한 가운데에 파란 의자가 놓여 있다. 그리고 두 친구 ‘에르카르빌’과 ‘샤부도’가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의자에 기대어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그림책 ‘파란 의자’의 작가 클로드 부종은 1930년 파리에서 태어났고 1972년까지 앙팡틴 프레스의 주필로 일했다. 그 후 그림과 조각은 물론 포스터, 무대 장식, 인형극 등으로 영역을 넓혀 활동했다.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어린이 책을 쓰는 그는 주제, 구성, 소재 등을 자유롭고 신선하게 구상해 보여 준다. 다소 무겁고 교훈적인 주제라도 특유의 유머와 재치로 부담 없이 풀어내는 것이 부종의 특기이다. 진한 선으로 크로키처럼 그려낸 경쾌한 그림은 이야기의 분위기를 더욱 잘 살려 준다. 더불어 익살맞은 캐릭터들의 과장된 표정과 독특한 성격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며 특히, 곳곳에 묻어나는 아이다운 발상은 아이들에게는 공감대를, 어른에게는 풋풋한 자극을 준다. ‘아름다운 책’을 비롯해 ‘강철 이빨’, ‘맛있게 드세요! 토끼 씨’, ‘보글보글 마법의 수프’, ‘도둑맞은 토끼’ 등 수십 권의 책을 직접 쓰고 그린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다.(책 소개 인용)
 
 ▶“뭐든지 할 수 있어! 의자는 요술쟁이”

 어느 날, 에스카르빌과 샤부도는 사막을 걷고 있었습니다.

 “누구 하나 얼씬도 안 하네.” 에스카르빌이 말했습니다.

 “‘삭막하다’고 그래야지!” 정확한 걸 좋아하는 샤부도가 핀잔을 주었어요.

 “어! 저기 뭐가 있다.” 에스카르빌이 멀찌감치 보이는 푸르스름한 걸 가리켰습니다.

 둘이 다가가 보니, 의자였습니다.

 “의자네.”

 “파란 의자네.”

 샤부도가 덧붙이더니만… 냉큼 위가 아니라 밑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앉았습니다.

 “난 의자가 좋아. 밑에 들어가서 숨을 수 있잖아.”

 에스카르빌이 끼어들었습니다.

 “에이, 그 정도는 진짜 시시하지. 의자는 거의 요술이야. 개 썰매가 되기도 하고, 불자동차, 구급차, 경주용 자동차, 헬리콥터, 비행기, 음, 또 하여튼 뭐든지 될 수가 있거든. 굴러 가는 거나 날아다니는 거… 그리고 물에 둥둥 떠다니는 것도.”

 “어, 그럼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상어를 조심해야겠네.”

 놀이가 재미있어진 샤부도는 한술 더 떴습니다.

 “그 뿐인 줄 아니? 요리조리 조금만 움직이면 책상도 되고 계산대도 돼. 가게 놀이하는 데는 아주 그만이지.”

 샤부도도 맞장구쳤지요.

 “맞아, 의자는 요술쟁이야. 굉장히 편리하기도 하고, 또 그 위에 올라가면 가장 키 큰 친구만큼 커질 수도 있잖아… 사나운 짐승이 나타났을 때는 이걸로 막을 수도 있어. 야생동물이 조련사를 물지 못하게 하는 데에도 이만한 방법이 없을 걸. 서커스에 보면 이런 게 나오잖아.”

 샤부도는 내친 김에 말을 계속했습니다.

 “서커스에서는 곡예사나 어릿광대가 아주 멋진 재주를 보여줄 때 쓰기도 해! 그러니까, 이렇게.”

 에스카르빌도 잠자코 듣고만 있기는 싫었어요.

 “내 차례잖아. 내 차례! 공중 곡예를 빼놓을 수 없지!”

 이러면서 훌쩍 뛰어 올라 직접 해 보였습니다.

 두 친구가 이렇게 놀고 있는 동안 저만치서 낙타 한 마리가 인상을 쓴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사막에서 낙타 만나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의자는 말야! 그 위에 앉으라고 있는거야!”
 
 낙타는 조용히 두 친구에게 다가가 갑자기 소리를 빽 질렀습니다.

 “아니, 머리들이 어떻게 된 거 아냐! 뭐가 서커스야? 서커스는!”

 우당탕, 콰당탕 쿵. 이제 놀이는 끝.

 “의자는 말이야. 그 위에 앉으라고 있는 거야.”

 그러더니 낙타는 의자 위에 자리를 떡 잡고 앉았습니다. 여간해선 꼼짝도 하지 않을 기세였어요.

 “에이, 우린 가자. 이 낙타는 상상력이라고는 통 없는 거 같다.”

 에스카르빌이 친구를 잡아끌었습니다.

 “그래. 거기다가 그냥 낙타도 아니야. 혹이 하나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단봉낙타야.”

 정확한 걸 좋아하는 샤부도가 한마디 더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책 내용이다.

 과연 에스카르빌과 샤부도는 어떤 아이일까? 부종은 두 아이를 귀여운 강아지로 표현했다. ‘샤부도’는 키가 작고 황토빛에 가까운 앙증맞은 개로, ‘에스카르빌’은 이름처럼 기-인 팔다리를 가진 검은 개로 그려져 있다.

 왜 하필, 두 아이는 강아지로, 낙타는 낙타로 그렸을까?

 의자 하나로 온갖 신나는 놀이기구를 만들어내는(물론 상상이지만) 두 아이는 어린 시절 우리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그 때는 길가의 작은 돌멩이 하나도, 찢어진 우산 하나도 충분히 멋진 장난감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아직 세상을 모르는 강아지는 누가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인지, 누가 자신의 친구인지 경계를 갖고 있지 않아 누구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때로 고양이와 함께 노는 강아지의 사진도 올라오고, 새들과 장난을 치곤하는 사진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책 속 주인공 샤부도와 에스카르빌도 생긴 모습이 전혀 다르지만 처음부터 자연스런 친구로 나온다. 외모로 차별하지 않는 어린 아이. 게다가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역시 우리를 강아지라고 부르지 않았는가. 단지 우리의 어린 시절 모습이 귀여워서가 아니라, 하는 짓이 강아지마냥 철이 없고 순진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셨을 것이다.

 아이의 상상력은 동양과 서양을 가르지 않아서 프랑스 파리의 클로드 부종 역시 그 시절의 추억을 강아지로 대신 그려 책 속에 잘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럼 왜 낙타는 낙타일까? 사막에 낙타가 있는 건 당연한 법! 그렇다. 상상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주인공 에스카르빌과 샤부도 역시 낙타는 상상력이라곤 없다며 그곳을 떠나 버린다. 부종이 그린 낙타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면 고지식한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무엇이든 안돼!를 먼저 외치는 사람, 다른 방법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 자기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 다리를 꼬고 앉아 팔짱을 낀 채로 자기 주장만 외치는 깐깐한 아버지 말이다. 테이블을 손가락 끝으로 탁탁 두드리며 상대가 언제 자기에게 굴복할지 시간을 재고 있는듯한 권위적인 사람은 이 책을 즐겁게 읽지 못할 것이다.
 
 ▶에스카르빌·샤부도를 강아지로 그리다
 
 만약 우리 앞에 파란 의자가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낙타처럼 그냥 떡 버티고앉아 여간해선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을까? 의자가 앉는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라도 아는 것이지만 (심지어 에스카르빌과 샤부도도) 의자를 다른 것으로 볼 수 있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에 초대받고 싶다면, 의자는 이제 다른 것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 모든 것이 의자로 보인다는 다리 아픈 노모의 마음을 시로 표현한 시인의 감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상에 의자는 참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돌멩이는 개미들의 의자, 가로등은 고양이의 의자, 전기줄은 새들의 의자, 엄마는 아기의 의자, 나뭇잎은 아침 이슬의 의자….

 그래서 의자는 이 세상 어떤 것이든 대신 할 수 있으며 꼭 앉는 것만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모든 것도 되고, 바다 위를 안전하게 건네줄 배도 되고, 서커스 곡예단도 되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생긴다면 이제 의자로 정말 신나게 놀아보자. 책에 나오지 않은 다른 많은 상상으로 가장 멋진 의자를 만들어보자.

 침대도 되고, 동굴도 되고, 정글짐도 되고, 피아노도 되고, 식탁도 되고, 무서운 동물도 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변신의 귀재를 만들어보자. 그래서 의자는 그리고 아이는 파란색 꿈을 가지고 사막같은 삭막한 곳에서도 아무 걱정 없이 또 다른 모험을 즐길 배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 스토리의 공간적 배경이 사막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왕자’에서 비행기 조종사와 어린왕자가 만나는 첫 장면 역시 사막이다. 왜 그 둘은 하필 사막에서 만났을까?

 지구의 많은 장소 중에서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영혼을 지닌 어린왕자를 만난 곳이 사막인 이유는 분명 따로 있을 것이다. ‘파란 의자’의 공간적 배경 역시 같은 이유일 것이라 감히 추론해본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곳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감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막같은 우리의 삶에서 푸른 오아시스를 닮은 어린 왕자, 그리고 파란 의자의 등장은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인 것이다. 알아보는 눈이 없는 자에게 그것은 그져 신기루일 뿐. 보았다고 해서 그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어린왕자와 비행기 조종사가 처음 만난 곳이 바다 위나, 깊은 산 속이었다면 어땠을까? 또 만약 v파란 의자’의 배경이 놀이터였다면 어땠을까? 당연히 우리의 흥미를 끌어당기기는 어려웠으리라. 책을 보는 사람은 사막이 주는 단절감과 막막함, 무력감 속에서 두 주인공이 헤쳐나갈 앞으로의 이야기에 기대를 모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배경을 사막으로 설정한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다.
 
 ▶‘어린왕자’ 처럼 사막이 배경인 이유

 단순한 줄거리에 단순한 그림이지만 참 의미있는 이야기이다. 이 책뿐만 아니라 다른 책을 보아도 부종의 스토리가 가진 힘과, 유머는 계속해서 책을 읽게 만든다. 읽어도 읽어도 또 읽고 싶은 책 말이다. (그의 또 다른 그림책 ‘아름다운 책’도 꼭 함께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림책은 어린 아이들만 보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림책은 어른이 먼저 읽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은 ‘첫 독자’가 `아이’가 아닌, 내 아이를 위해 좋은 책을 골라주고 싶어하는 ‘부모’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먼저 어른의 마음을 움직일 스토리를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그림책을 공부하고 읽는 어른들도 많아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그림책이 단지 아이만을 위한 책은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한 것이다. 내 아이를 위해서건 부모를 위해서건 그림책을 읽는 어른이 많이 생길수록, 나는 아이의 세계에서만 가능했던 많은 일들이 더 생명력을 가지고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우리가 간직했던 아름다운 꿈들이 그림책을 통해 세상과 만나고 우리 아이들과 만나 서로 공감하고 소통의 끈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그러기에 누구라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파란 의자’를 첫 번째 그림책으로 기꺼이 선정한다.
이하늘 <인문학공간 소피움 연구원>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