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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설을 만나다]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 유시주 ‘거꾸로 읽는 그리스로마신화’
박혜진
기사 게재일 : 2017-09-11 06:05:01
▲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풍경의 진정한 소유는
 그 요소들을 살피고 그 구조를 이해하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에 달려있다.
 
 우리는 눈만 뜨면 아름다움을 잘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이 기억 속에서 얼마나 살아남느냐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의도적으로 얼마나 파악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이 아무리 느리게 걸으면서 본다고 해도,
 세상에는 늘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이야기와 신화는 진실을 담는다

 “이 사람 진짜예요?” 홍길동전을 들고 와서 아이가 묻는다. 이탈리아 베로나에 가면 아직도 500년 넘은 줄리엣의 집을 볼 수 있다는 나의 말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던 아이는 또 묻는다. “정말로 있었던 일이에요?” 그럴 때는 어찌 대답해야할지 난감하다. 아이가 무엇을 묻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해둔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와 비슷한 일들은 자주 일어난단다.”

 실제 있었던 일과 머릿속에서 태어나는 상상을 구분하려는 태도는 아이에게 이성적 사유가 탄생하고 있다는 의미다. 가르고 나누는 분별은 이성의 가장 큰 능력! 아이는 이제 곧 나와 타자를 구분하게 되리라. 사람의 생각이 왜 항상 꼭 같지만은 않은지 궁금해 할 것이며, 나의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을 때 과연 그 마음은 있는 것인가, 의아해하게 되리라. 의문은 사유의 지평을 넓힌다. 의문, 인간다움의 시작이다.

 덧붙여 스스로 발견하기를 바라며 아이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이 있다. 한편의 오래된 이야기는 사실과 허구, 참과 거짓을 넘어서는 진실과 진리의 영역을 다루고 있다는 것. 그것을 깨달을 때 다가오는 모든 이야기는 단순한 흥밋거리를 넘어 비밀을 간직하고 해석되기를 기다리는 신비로운 경전이 되리라는 것. 이야기는 한 시대를 살아갔던 많은 이들의 공통된 정서와 생각을 담고 있다. 가령 그림형제가 수집한 독일의 민담에는 새엄마가 자주 등장한다. 그 이유는 고대와 중세를 걸쳐 아내가 남성에 비해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영주의 장원에서 농노생활을 했던 유럽의 평민은 아내의 노동량이 남편에 비해 무거웠다. 아내들은 밭일 외에 가축을 돌보는 일과 자녀양육, 가사노동까지 도맡았다. 쇠약한 그녀들에게 출산은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였을 것이다. 그렇게 기혼여인의 절반이 삼사십 대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으니 아이들에게 두 번째, 세 번째 엄마는 흔한 일상이었던 셈이다. 이렇듯 백설공주도, 헨젤과 그레텔도 옛 독일의 문화라는 사실을 내포하며, 고난을 이기는 용기와 힘이라는 보편적 진리까지 드러낸다. 그렇게 이야기는 사실과 허구를 넘어서는 ‘진실’이다. 드러난 사실들의 이면을 담는, 사실들의 이데아(본질)가 바로 이야기이다. 신화도 그렇다.

 하늘과 땅을 분리시키자 시간이 생겨났다

 태초에 카오스, 혼돈이 있었다. 카오스로부터 가이아(땅)가 생겨나 우라노스(하늘)와 폰토스(바다)를 낳았다. 처음에 우라노스와 가이아는 서로 딱 붙어있어 둘 사이에는 공간이 없었다. 따라서 가이아가 우라노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수많은 아이들이 가이아의 뱃속에 머물러있을 수밖에 없었기에 가이아는 고통스러웠다. 어머니 가이아의 고통을 해결한 건 아들 크로노스다. 아버지 우라노스의 남근을 잘라버린 크로노스는 하늘인 우라노스가 땅인 가이아로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만들었다. 공간의 펼쳐짐 즉 빅뱅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크로노스의 낫이 우주라는 무한한 공간을 연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우주와 삼라만상을 지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시간이다.

크로노스라는 신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시간이라는 뜻이다. 탄생에서 소멸까지 우리를 데려가는 것이 이 크로노스인 것이다. 과학은 증명하지만 신화는 보여준다. 과학은 논리적이고 의식적이나 신화는 직관적이며 무의식적이다. 둘은 진리의 쌍둥이, 인간의 좌뇌와 우뇌다.

 그리고 우라노스의 남근이 바다로 떨어져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물거품에서 ‘거품에서 태어난 자’라는 재미있는 뜻을 가진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태어났다.
 
 사랑과 아름다움은 거품이다

 최초의 민주주의 창시자로 알려진, 소크라테스와 아폴론 아리스토텔레스와 소피스트에 이르는 걸출한 철학자 무리를 배출한 그리스인들은 왜 아름다움과 사랑이 물거품의 속성을 닮았다고 생각했을까? 사랑은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지속시키기도 어렵다. 사랑은 조심조심 다루지 않으면 물거품처럼 둥둥 떠나버리거나 ‘펑’ 하고 사라지기 일쑤다. 아름다움은 또 어떤가. 투명한 물방울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이 아름다움 아니던가.

그래서 아름다움은 표현하려는 뭇 예술가들을 애먹인다. 머릿속으로 선명하게 떠오르는 관념도, 왜 그리거나 쓰면 언제나 2% 부족할까. 르네상스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괴롭힌 것도 ‘아름다움’에 대한 완벽한 구현이었다. 다빈치는 의뢰받은 작품을 시간 내에 마치지 못하는 습벽으로 당대에 유명했다.

1503년부터 그리기 시작해 사망하는 1519년까지 17년 동안 끊임없이 수정하고 수정했던 그림, 신비한 미소를 가진 모나리자도 미완성 작이지 않은가. 다빈치를 괴롭힌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본질’을 드러내려는 갈망이었을 터. 그러나 그 갈망은 채워질 수 없는 것이다. 모나리자는 다 빈치의 아프로디테였기 때문이다. 사랑과 아름다움에 ‘충분’이 어디 있을까. ‘충분히 사랑했다’거나 ‘충분히 아름답다’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랑과 아름다움은 완고한 거짓의 냄새를 풍긴다. 사랑과 아름다움을 ‘거품에서 나온 자’라는 아프로디테로 묘사하고 비유한 그리스인들의 직관은 놀랍다. 보관할 수 없는 것이 아름다움이자 사랑이기에.

 그런데 왜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움과 사랑 둘 다의 신일까! 그리스의 신들 중 여러 역할을 겸임했던 몇몇 신들이 있다.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그렇고, 전령과 상인과 도둑의 신이었던 헤르메스, 태양과 의술, 음악을 담당했던 아폴론이 그렇다. 얼핏 보면 상호간에 맥락이 없어 보이나 조금 더 살피면 공통점을 눈치챌 수 있다. 태양과 의술, 음악은 규칙성을 강하게 갖는다. 음악은 음 하나에 곡 전체의 무게가 실리기에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태양의 공전이나 의사의 집도도 마찬가지. 세 임무가 가진 공통적 특성은 엄격함과 완결성이다. 아폴론의 성격을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겠다.

그렇다면 사랑과 아름다음의 연결고리는 뭘까? 아름다움의 어원 중 하나는 ‘알음’, 앎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조선의 문장가 유한준이 남긴 문장을 나는 좋아한다. 사랑하면 그것이 지닌 아름다움이 보이기에, 사랑과 아름다움은 불가분의 관계다. 아름다워서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었다. 반 고흐가 프로방스에서 자라는 사이프러스를 그리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그저 드문드문 있는 사이프러스를 보았을 뿐이라고, 휘슬러가 런던의 안개를 그리기 전에는 사람들은 런던의 안개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고흐와 휘슬러는 사이프러스와 안개를 사랑했기에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고흐와 휘슬러의 그림을 접하고 난 후 우리가 보는 프로방스와 런던의 풍경은 그전과는 다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게 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과는 다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이곳저곳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면 그는 사랑이 무척 많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박혜진 <지혜의숲 연구원장>
윌리엄 블레이크 리치몬드의 ‘아프로디테와 안키세스’.
에로스와 프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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