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그냥 내앞에 놓여진 것에 감사!

▲ `사노라면 언젠가는, 100만 번 산 고양이’ (사노요코 글/그림, 김난주 옮김. 비룡소)
 얼룩무늬에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고양이가 이번 책의 표지 모델이다. 엉성하게 그려진 그림같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 눈동자 속으로 빠져든다.

 백만 년이나 죽지 않는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이나 살았던 것이죠. 정말 멋진 얼룩 고양이었습니다.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를 귀여워했고,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 울었습니다.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한 때 고양이는 임금님의 고양이었습니다. 고양이는 임금님을 싫어했습니다. 임금님은 싸움 솜씨가 뛰어나 늘 전쟁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양이를 멋진 바구니에 담아 전쟁터에 데리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임금님은 전쟁이 한창인데도 고양이를 껴안고 울었습니다. 임금님은 전쟁을 그만두고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성의 정원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중간 생략>

 한때 고양이는 홀로 사는 할머니의 고양이었습니다. 고양이는 할머니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할머니는 매일 고양이를 껴안고 조그만 창문으로 바깥을 바라보았습니다. 고양이는 온종일 할머니의 무릎 위에서 꼬박꼬박 졸았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고양이는 나이가 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쪼글쪼글한 할머니는 쪼글쪼글하게 죽은 고양이를 껴안고 하루 종일 울었습니다. 할머니는 정원 나무 아래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 “난 백만 번이나 죽어 봤다고!”
 
 한때 고양이는 어린 여자 아이의 고양이었습니다. 고양이는 아이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여자 아이는 고양이를 업기도 하고 꼭 껴안고 자기도 했습니다. 울 때는 고양이의 등에다 눈물을 닦았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여자 아이의 등에서 포대기 끈에 목이 졸려 죽고 말았습니다.
 머리가 덜렁거리는 고양이를 안고 여자 아이는 온종일 울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를 뜰 나무 아래에다 묻었습니다.

 고양이는 죽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한 때 고양이는 누구의 고양이도 아니었습니다. 도둑고양이였던 것이죠. 고양이는 처음으로 자기만의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자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어쨌든 고양이는 멋진 얼룩 고양이었으므로, 멋진 얼룩무늬 도둑고양이가 되었습니다. 암코양이는 모두들 그 고양이의 신부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커다란 생선을 선물하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먹음직스런 쥐를 갖다 주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진귀한 개다래나무를 선물하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멋진 얼룩무늬를 핥아주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말했습니다.

 “나는 백만 번이나 죽어 봤다고, 새삼스럽게 이런 게 다 뭐야!”

 고양이는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좋아했던 것이죠.

 그런데 딱 한 마리, 고양이를 본 척도 하지 않는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곁으로 다가가, “난 백만 번이나 죽어 봤다고!”라고 말했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그러니?”라고만 대꾸할 뿐이었습니다. 고양이는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안 그렇겠어요, 자기 자신을 가장 좋아했으니까요.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너 아직 한 번도 죽어 보지 못했지?”

 하얀 고양이는 “그래”라고만 대꾸할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앞에서 빙그르르, 공중 돌기를 세 번 하고서 말했습니다. “나 서커스단에 있었던 적도 있다고.” 하얀 고양이는 “그래”라고만 대꾸할 뿐이었습니다. “난 백만 번이나…”하고 말을 꺼냈다가 고양이는 “네 곁에 있어도 괜찮겠니?”라고 하얀 고양이에게 물었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으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곁에 늘 붙어 있었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귀여운 새끼 고양이를 많이많이 낳았습니다. 고양이는 이제 “난 백만 번이나…”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들을 자기 자신보다 더 좋아할 정도였습니다. <중간 생략>
 
 ▶“하얀고양이는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와 함께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하얀 고양이는 곁에서 조용히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고양이는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또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울었습니다. 아침이 되고 또 밤이 되고, 어느 날 낮에 고양이는 울음을 그쳤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곁에서 조용히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그리고는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습니다.

 이 그림책은 고양이를 통해 삶의 기쁨이 무엇이고 삶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준다. 작가 사노 요코 씨는 1938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무사시노 미술 대학 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베를린 조형대학에서 석판화를 공부했다. 독특한 발상을 토대로 깊은 심리를 잘 묘사하고 유머가 가득한 그림과 리듬 있는 글이 조화를 이루는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 `아저씨 우산’, `하늘을 나는 사자’등이 대표작이다.

 `백만 번 산 고양이’와 참 많은 닮은 점을 가진 그녀의 에세이 두 권이 떠오른다. 한 권은 `사는 게 뭐라고’, 또 한 권은 `죽는 게 뭐라고’이다. 그녀의 그림책을 좋아해서 에세이까지 읽게 되었는데, 간결하지만 긴 여운을 주는 책이다.

 `사는 게 뭐라고’는 2003년부터 2008년, 저자 사노 요코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까지 쓴 꼼꼼한 생활기록으로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을 담고 있다. 2년 뒤에 죽는다는 시한부 암선고를 받았음에도 `죽는 날까지 좋아하는 물건을 쓰고 싶다’며 당당히 쇼핑에 나서는 사노 요코. 이 책에는 아주 간단한 진실이 담겨있다. `인생은 번거롭지만 먹고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어떻게든 된다.’ 이렇듯 사노 요코의 냉소적이고 염세적인 면, 뜨겁고 감성적인 면이 뒤섞인 이 매일 매일의 기록은 읽는 이의 마음을 소소하게 위로해준다

 `죽는 게 뭐라고’는 `훌륭하게 죽기 위한 기록’이다. “훌륭하게 죽고 싶다”는 사노 요코의 삶처럼, 이 책 어디에서도 저자는 `살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녀의 죽음 철학을 담고 있는 책이다. <책 내용소개 인용>

 그녀의 시크한 일본에서의 삶은 독거 노인의 외로움에 빠져있지 않다. 누구나 맞이하게 될 죽음 앞에서 한순간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에 읽는 이는 희망을 떠올린다.

 백만 번이나 다시 살았지만 결코 누구와도 진정한 관계맺음을 하지 못했던 얼룩 무늬 고양이가 마지막 순간에서야 진실을 사랑을 만날 수 있었다는 내용은 얼마나 아련한가! 삶의 기쁨을 얻는 마지막 순간 사랑을 잃는 아픔을 겪게 되고, 그동안 한 번도 울지 않았던 얼룩 고양이는 마치 토해내듯 울고 또 울어 백만 번이나 운다. 백만 번이나 운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슬픔일까. 슬픔을 다 토해내고 나면 더 이상 슬픔은 남지 않게 되는 걸까? 고양이는 모든 슬픔을 다 쏟아냈다는 듯 드디어 울음을 그치고 움직임도 그쳐 조용히 숨을 거둔다.

 세상이 일시에 동작을 멈춘 듯 정적이 감도는 순간이다. 과연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반추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마지막인 듯 사랑하라
 
 나는 이 책을 읽고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참 궁금하다. 고양이가 백만 번이나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할까? 흰 고양이를 만나기 전까진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기할까? 아님 고양이가 목놓아 슬피 울 때 아이들도 같이 울까?

 산다는 것은 자기 몫의 무언가를 충실히 해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그림책이다. 그림책이 주는 교훈이라기에는 너무도 깊고 무거운 주제일지 모르지만, 사노 요코 씨의 에세이처럼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너무 징징대지 말고 그냥 내 앞에 놓여진 것에 감사하고 마지막인 듯 사랑하면 되는 것이리라.

 이미 고인이 된 사노 요코 씨의 그림책이나 에세이를 이제 다시 볼 수 없겠으나 그녀가 남긴 교훈은 우리 의지대로 얼마든 되새김질할 수 있다.

 우린 물론 백 만 번씩이나 다시 태어날 수 없지만 백만 번이나 다시 살아났던 고양에게 배울 수는 있다. 아직 책을 읽어 줄 나이의 아이가 있다면 백만 권은 아니어도 백 권의 책은 읽어주자. 아직 사랑하는 이가 내 곁에 있다면 백만 번은 아니어도 백번은 사랑한다고 고백하자. 백번은 안아주자. 백번은 양보하자. 그리하여 내 사랑이 상대에게 온전히 전해지기를 기뻐하자. (백 번을 다 채우지 못했다면 그 빚을 갚기 위해 다시 태어나야 할지도 모른다.^^)

 사노 요코 씨가 `사는 게 뭐라고’라는 책에서 독거 노인으로 일본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일본의 현 주소일수도 있겠지만 그녀만의 문체가 무거운 상황을 참 위트있게 넘기게 한다.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찰리 채플린은 말했지만 사노 요코 씨는 자신의 삶을 결코 비극으로 만들지 않았다. 2년이라는 시한부 선고 앞에서도 그녀의 삶은 오히려 더 유쾌했다. 백만 번이나 살았던 고양이처럼 그녀의 마지막 삶의 시간은 원도 없이 한도 없이 열심히 사는 것으로 장식하고 싶었던 것이다. 전인권의 `사노라면’ 노래처럼 우리 이제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고 살자.
 
 사노라면-전인권 (들국화)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비가 새는 작은 방에 새우잠을 잔데도
 고운 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
 오손도손 속삭이는 밤이 있는 한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이하늘 <인문학공간 소피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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