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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눈, 청년의 인문학]뮈리엘 바르베리 ‘고슴도치의 우아함(L’Elegance du herisson)’
우아함은 그녀들의 은신처에서 피어오른다
나를 보호한다는 것, 너를 존중한다는 것
김연우
기사 게재일 : 2017-12-18 06:05:01
▲ 돌아오는 생일날 자살하기로 결심한 팔로마. 매일 한 알씩 엄마의 수면제를 훔치던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수위실 한켠에 숨겨진 르네의 작은 은신처를 발견한다.
 낙타는 원래 초원에서 살았다고 한다. 오랫동안 낙타는 북아메리카 대륙에 서식했다. 그러다 빙하기로 접어들면서 크고 힘센 동물들이 나타났고, 이들과의 경쟁에서 낙타는 턱없이 불리했다. 낙타는 마침내 사막으로 떠난다. 육교가 된 베링해협을 따라 아시아 서쪽까지, 일부는 아프리카까지 갔다고 한다.

 나는 가위바위보가 싫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애들이랑 잘 놀다가도, 뭔가를 걸고 가위바위보든 묵찌빠든 하자고 하면 그냥 포기했다. 내가 이럴 때마다 애들은 김빠진 얼굴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왜냐고? 음…. 잘 모르겠다. 굳이 사탕 하나 더 먹으려고 심장이 쪼그라들어야 하나 싶었던 것 같다. 나를 뺀 가위바위보가 진행되는 동안, 난 그저 멍하니 딴 곳을 바라보곤 했다.

 동물들의 진화에 관한 책을 읽다 어쩐지 낙타에게 동질감을 느껴버렸다. 아무래도 내 이런 성향은 낙타와 닮은 점이 있다. 초록빛 초원을 떠나 거칠고 황량한 사막을 택한 낙타는, 물질적 풍요를 잃었지만 정신적 고요를 얻었다. 무언가를 얻는 것보다 마음의 평화가 더 중요하다! 나름 내 삶의 방식이다. 낙타만큼 훌륭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누가 가위좀 달라고 부탁할 때 당신은 어느 쪽을 내미는가? 플라스틱 손잡이 쪽, 아니면 금속으로 된 자르는 쪽? 별 생각 없이 잡히는 대로 건네는 타입일지도. 보통은 받는 사람이 다칠 것을 염려해서 자신이 날카로운 쪽을 잡고 상대에게는 손잡이 부분을 내민다. 이건 일종의 매너다. 종종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는. 성급하다고? 억울할 거 없다.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서 큰 거울이 되곤 하니까.
 
가위를 건넬 때 어느 쪽을 쥐는가?
 
 C와는 중학교 3학년 때 만났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한 때 아주 친했다. 언젠가 같이 수다를 떠는데 이 ‘가위 매너’에 대한 얘기가 나온 것이다. C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이거 누가 알려줬어?” “글쎄…. 기억 안 나는데.” 솔직히 한 번도 생각 안 해봤다. 처음으로 이걸 나에게 알려준 사람은 누구였을까? 기억을 곱씹는데 C가 대답했다. “난 우리 아빠가 가르쳐줬어.”

 C는 이상하게 이 매너가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한다. “내가 차갑고 날카로운 부분을 잡아서 건네면, 상대는 부드럽고 안전한 부분을 받아. 그런 배려심이 좋은 거야. 상대가 고마워하면 왠지 뿌듯하고…. 그럴 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져.” C는 이렇게 사소하지만 빛나는 것들을 가르쳐주는 아빠를 좋아했다.

 “…사람들은 별을 보며 간다고 믿지만, 결국 어항 속 빨간 금붕어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인생이 부조리하다고 처음부터 애들한테 가르쳐주면 진짜 간단한데 왜 그러지 않는지 이상할 뿐이다. 물론 그게 어린 시절의 좋은 순간들을 앗아가긴 하지만, 어른이 되었을 때 시간을 벌게 해주지 않는가. 그렇다고 어항 트라우마를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중학교 졸업 후 우린 각자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만나는 날도 뜸해졌다. 그 무렵 C의 가정사는 복잡했다. 대충 돈 문제로 인한 친척들 간의 다툼, 뭐 그런 이유였다고 한다. 아빠가 먼저 집을 나갔고, 엄마는 매일 밤 울어댔고…. 3월 모의고사가 끝나고 오랜만에 C가 찾아왔다. 우리는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C는 말했다.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지? 게다가 아빠는 어떻게 그런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할 수가 있는 거지? 추운 밤, 우리는 새우깡 봉지를 부시럭대며 엄마 아빠를 욕하고 친척들을 욕했다. “어른들 전쟁놀이 징글징글해.” C가 말했다.

 C는 조금씩 변했다. 돌이켜보면 단지 가위들을 하나씩 반대로 뒤집어놓았을 뿐이었던 것 같다. 남에게 건네는 안전한 부분을 자신이 잡았고, 뾰족하고 위험한 부분을 남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더 이상 베이든 말든 상관 안했다. 원래 좀 쓸데없다 싶을 정도로 모두에게 친절했던 C는 갈수록 삐죽삐죽하고 날선 사람으로 변해갔다. 그해 봄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낙타는 사막으로 떠났고, 고슴도치는 가시옷을 입었다.
 
방해받지 않기 위해 숨기고 살다
 
 “아줌마는 평범한 수위가 아니에요…. 완벽한 은신처를 찾으셨네요.”
 파리 그르넬가 7번지에는 부자들만 사는 고급 아파트가 있다. 뚱뚱하고 못생긴 수위 아줌마 르네. 아파트 주민들은 그녀를 가난하고 무식한, 그저 별 볼일 없는 여자로 여긴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똑똑하고 식견이 높으며, 문학과 예술을 사랑한다. 수위실 한쪽 구석의 작은 방에는 책들이 가득하다. 그곳에서 그녀는 차를 마시고 책을 읽는다. 르네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완벽히 숨기고 살아간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기 위해.

 또 한 명의 주인공은 6층에 사는 열두 살 소녀 팔로마. 그녀는 주위 모든 한심한 어른들의 모습을 자신의 캠코더에 담는다. 소심하고 세속적인 아빠, 정신과 약물에 의존하는 엄마, 허영심 가득한 언니…. 팔로마는 돌아오는 생일날 자살하기로 결심한다. 매일 한 알씩 엄마의 수면제를 훔치던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수위실 한켠에 숨겨진 르네의 작은 은신처를 발견한다.

 “바둑은 체스랑 완전히 달라요. 체스에서는 이기기 위해 죽여야 하지만, 바둑에서는 이기기 위해 살아야 하면서도 동시에 반대편도 살게 해야 해요. 그게 바둑의 제일 멋진 점 중 하나고요. 바둑에서 살고 죽는 것은 잘 지었는지 잘 못지었는지로 판가름되고, 중요한 건 잘 구축하는 거예요.”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중학교 때 소설로 읽었고, 최근에 영화를 봤다. 새삼 인상 깊었던 것이 팔로마가 바둑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다. 잘 모르지만 조금 알기로, 바둑에는 집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같은 색의 바둑돌로 둘러싸인 영역. 이 집을 잘 짓는 것이 승부의 관건이다. 바둑은 ‘너 죽고 나 살고’의 강력한 공식이 통하지 않는 게임이다. 살아남으려면 일단 내 공간을 잘 구축해 나가야 한다.

 상대를 향한 무조건적인 공격 또한 똑똑하지 못하다. 예를 들면 문을 열고 닫을 때, 남의 공간을 함부로 침범하면 나의 공간도 딱 그만큼 파괴된다. 공존이란 어떤 공간에도 피해를 주지 않으며 연결되는 미닫이문 같은 것. 서로를 존중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건 이토록 어렵고도 중요하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가 한데 어우러지듯 우리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셸 아줌마는 고슴도치 같아요. 겉으로는 가시로 뒤덮인 철옹성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고슴도치처럼 세련됐어요. 무기력한 척 하면서 고집스럽게 홀로 있고 지독하게 우아한 생명체요.”

 사람의 우아함은 어디에서 나올까? “당연, 돈에서 나오지.” 팔로마의 캠코더 안에서 내가 말한다. 말은 이렇게 해도, 사실 돈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다. TV만 틀어도 추하고 불쌍한 부자들 쌔고 쌨잖아. 우아함은 어쩌면 그 사람 은신처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가 만약 은신처를 갖고 있다면, 누가 아무리 날 손가락질해도 난 그 사람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웃을 수 있다. 내가 돌아갈 곳을 생각하며.
 
은신처, 남의 세계 존중하는 공간
 
 은신처라는 단어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있다. 도피의 의미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이는 결코 도피가 아니다. 은신처는 지친 자아를 쉬게 하는 곳이다. 남을 함부로 재단하고 조각내려는 이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은신처를 짓는 일은 곧 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요, 남의 세계를 존중하는 행위다. 은신처는 ‘자기’다.

 “…우리의 우주 안에, 만일 아직 되지 않은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난 그걸 잡을 수 있을까? 부모님들의 정원과는 다른 정원을 내 인생에서 만들 수 있을까?”

 눈 뜨면 학교로, 밤 되면 집으로. 매일 쳇바퀴를 돌았다. 좋아하는 책을 읽을 시간도 없었고, 뭔가 열심히 끄적였던 일기장엔 먼지가 가득 쌓였다. 입시 3년을 거치면서 나는 종종 무언가 잃어간다고 느꼈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깨달았다. 결코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집이 부서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춥고, 삭막했다.

 저마다 각자의 이유로 가시 돋친 사람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제복 제 발로 차고 황량한 땅으로 떠난 사람들이 진정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세상은 이미 너무도 춥고 삭막하다. 이런 곳에서 도피는 죄목이 될 수 없다. 단지 우리 영혼이 더 이상 다치지 않기를. 어떤 자괴감도 죄책감도 느끼지 않기를. 자기 것을 온전히 지키고 마음껏 누리기를. 감히 부수려 해도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을 당신의 멋진 은신처 안에서.

 고슴도치 하면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부모는 사랑한다는 말. 근데 왠지 이렇게도 들린다. ‘가시 돋친 사람만이 가시 돋친 사람을 이해한다.’ 뾰족뾰족한 가시 속에 둘러싸인 부드럽고 섬세한 피부를 알아보는 건, 결국 또 다른 고슴도치 한 마리. 우리, 서로 안에 자리한 아픔을 보자. 예쁨을 보자. 그때 어쩌면 삶이 더 확고해질 것이다. 세상은 어쨌든 함께 사는 곳이니까.

 “별을 좇아라. 어항 속 금붕어로 끝나지 말자.”

 뼛속까지 얼어붙는 겨울의 한 구석에서,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부서진 집을 다시 짓는 일이야.’ 혼자 생각한다. 다 지으면 난로에 불을 때서 따뜻하게 해야지. 누구라도 얼어붙은 몸을 녹일 수 있도록. 또 차를 끓이고, 책을 읽어야지.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종이 위에 무언가 끄적일 것이다. 나를 알아줄, 또 내가 알아줄 다른 한 마리의 고슴도치를 위해.
김연우 <조선대 국문과 2년, 청년인문학 소피움 연구원>
미셸 아줌마는 고슴도치같아요. 겉으로는 가시로 뒤덮인 철옹성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고슴도치처럼 세련됐어요.
별을 좇아라. 어항 속 금붕어로 끝나지 말자.
체스에서는 이기기 위해 죽여야 하지만, 바둑에서는 이기기 위해 살아야 하면서도 동시에 반대편도 살게 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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