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사랑을 잊으리라, 추한 나를 세우리라
좁디좁은 캐비닛 속 부속품 된 소녀의 자아

▲ 비슷비슷한 얼굴의 디즈니 공주들은 소녀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존재. 그러나 그들의 외모에는 분명 기준이 존재한다.
 “소녀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목을 길게 빼고 혼이 빠져나올 듯한 눈으로 그들을 보고 있어. 사랑! 오오, 그들을 사랑해! 이 끓어오르는 거대도시 전체가, 이 재미난 미래 전체가 자기네 신들을 사랑해.” … “하지만 그러려면 넌 다시는 네가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없어. 절대. 넌 법적으로는 죽는 거야. 경찰도 알지 못할 것이고. 해보고 싶니?” 남자가 묻자 소녀의 거대한 턱이 천천히 열려. “내가 어느 불구덩이에 뛰어들어야 하는지 보여만 줘요.”
 -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접속된 소녀’

 번쩍번쩍한 미래도시 속에서 추물로 태어난 슬픈 소녀 버크에게 누군가 다가와 손을 뻗으며 말한다. ‘불쌍한 아이야, 따라오렴. 예쁜 소녀가 되어 멋진 인생을 살게 해줄게.’ 누구라도 이 달콤한 유혹에 흔들릴걸? 그래서 버크는 기꺼이 자아를 버리고 조그만 캐비닛에 들어간다.

대기업 상품의 광고용으로 만들어진 예쁜 홀로그램 소녀의 원격조종자가 되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아니, 그보다는 정말로 ‘사랑’해서. 사랑이 없다면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일이 가능할 리가.
 
▲사랑없이 불구덩이에 뛰어들 수 있나?

 미를 사랑하면 추를 증오하게 되고 추를 사랑하면 미를 증오하게 된다. 이상적이고 통속적인 논법들은 치우자. 그런 꿈같은 얘기를 보거나 듣더라도 정말 그게 내 경험이 되진 않잖아. 대부분의 미에 대한 찬미는 추를 향한 폭력의 말로 촘촘히 엮이고, 소녀들은 그 화법을 어릴 때부터 체득한다.

입이 딱 벌어질 만큼의 성취를 이뤄낸 피겨선수와 역도선수는 그들의 대단한 명성에도 불구, 어느 골목 하룻밤 술자리에서 안줏거리로 전락하곤 한단 말이야. 그 왁자지껄 외모품평회를 가만히 듣는 소녀는 처음으로 자신 앞에 펼쳐질 미래를 어렴풋이 짐작해. 소녀는 뭘 사랑하고 뭘 증오하게 될까.

 증오는 힘든 감정이다. 왜냐면 그건 나를 갉아먹는다. 따뜻한 거짓말로도 쉽게 다리가 풀리곤 한다. 전투력 부족인가? 하긴, 삶이란 어떤 장애물도 뚫고 나를 세우기 위한 투쟁의 과정일 텐데, 그래서 이리도 힘든 것일 텐데. 하지만 똑같은 싸움을 해도 시원하고 달콤한 성공을 몇 걸음마다 맛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걸음걸음이 단지 괴롭고 무덥기만 한 여름인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이건 미래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버크는 그래서 사랑을 택한다. 신들을 증오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고, 어쨌거나 아름다운 것은 마땅히 사랑받을 만 하잖아.

 지옥 속에서 소녀는 간절히 바란다. 나도 승리와 행복을 경험하고 싶어. 하지만 지금의 나로는 불가능. 새로 태어나야 해! 질투와 증오를 사랑으로 바꾸는 일은 사실 간단하다. 세상은 어차피 미의 편이니 나도 그들을 사랑하는 게 이치에 맞다. 그러니 에너지를 깎아먹는 열등감이나 자존심 따윈 버리자. 게다가 미래 사회에서는 정말로 그들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캐비닛에 들어가 몸에 전극 몇 개 꽂는 동안의 수치심만 참는다면. 그 다음에 오는 달콤함을 당신이라면 마다할거야? 상처만 가득한 무거운 자아를 지키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눈부신 행복이 여기 있는데.
사회는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강요하고, 수많은 소녀들은 거기에 선망, 희망, 사랑, 열망을 투영한다. ‘주먹왕 랄프 2’에 출연한 디즈니 공주들.

 “훈련은 그녀의 방에서 이루어지지. 걷고, 앉고, 말하고, 코를 풀고, 비틀거리고, 오줌을 누고, 딸꾹질을 할 때마저도 ‘상큼하게’ 보이도록 하는 훈련. 다만 반짝이는 머릿결을 흔들며 웃으면서 발을 내딛는 건 P. 버크 본인은 아니야. … P. 버크는 그 캐비닛 안에 있지 않아. P. 버크는 콜로라도의 멋진 소고기 사육지에 멈춘 에어밴에서 내리는 중이고, 그녀의 이름은 델피야. 누구든 델피를 보면 알 수 있지.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물론 실제로 일하는 건 카본데일 지하에 있는 P. 버크지만, 누가 그 산송장을 기억하겠어?”
 -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접속된 소녀’
 
▲겉껍질 예쁜 소녀, 알맹이는 추한 괴물

 이 모든 것의 원동력은 우습게도 사랑이다. 난 사랑을 이렇게 말로 처참히 망가뜨리지만 그 사랑 진심이란 거 안다. 그녀의 열망을 마음 깊이 공감한다고. 그리고 이 얘기는 그 문제 다분한 사랑과 더불어 천문학적 액수의 돈과도 관계가 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와 광고의 문제다.

버크가 있는 미래로 갈 것도 없다. TV를 켜보면 눈부신 이미지들이 넘쳐나지만, 미학적으로 훌륭하다고 해서 다 통과가 아니다. 포인트는 ‘순종’과 ‘상큼’. 상큼하게 순종적임을, 순종적으로 상큼함을 척척 연기해낼 수 있어야 피그말리온들의 열렬한 사랑과 그들의 돈을 끌어 모을 수 있다.

 소녀들은 이 질서를 어릴 때부터 깨닫는다. 빛나는 파티에서 누군가는 배를 채우고, 누군가는 사랑을 채우고, 또 그 와중에 내 상처도 치유가 되는 거구나. 사실은 불구덩이일 뿐인 이 파티에서 말이다. 인간은 뭔가 만들어내고 그걸 선망해야 하나봐. 반박하려 해도, 시대마다 그 시대를 상징하는 비너스를 만들어온 역사가 있다. 파티가 결국 불구덩이였다는 것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분노하고, 필사적으로 증오의 표적을 찾지. 그럴 때 갈라테이아는 쉬운 표적이고. 사랑이 강렬한 만큼 미움도 강력하니까. 그런데 이 질서를 만드는 이들은 누구지?

 ‘미감’이 나를 지배한다. 자본가와 다수의 피그말리온들이 아주 어릴 적부터 주입시킨 미감이 말초신경까지 뻗어있고 이 미감으로 씻긴 뇌가 내 온몸을 조종하고 온 인생을 설계한다.

모두들 많든 적든 어떤 형태로든 갖고 있다. 게다가 아직도 그 미감을 열렬히 사랑하잖아? 아직도! 내 손으로 구현해낸 아름다운 갈라테이아를 나는 평생 간절히 열망한다. 그러나 저 어두운 구석에서 추한 몰골을 한 버크가 언제나 나를 바라본다.

그녀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단 하나의 진리처럼 존재하며 투영된 허상과 충돌한다. 미감은 얄팍하고 사랑은 약하다. 그리고 저만치 악몽의 옷을 입고 이리로 걸어오는 자의 이름은 ‘현실’이다.

 “그래서 분노와 사랑에 지친 눈으로 상처 입은 새를 내려다보는 그의 머릿속에 지금 안고 있는 것이 그녀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은 스쳐 지나가지도 않아. 지금 그의 마음속에 굳어지는 미치광이 같은 결심을 설명해줘야 할까? ‘델피를 풀어주겠다는 결심.’ … 그리고 아무도 P. 버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P. 버크도 죽음 저편에 낙원을 보고 있어. 그 낙원의 이름은 ‘폴’이지만, 바탕에 깔린 생각은 같아. ‘죽어서 델피 안에서 다시 태어나리라.’ 헛소리지. 어림없는.”
 -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접속된 소녀’
 
▲막장 디스토피아? 무섭토록 닮은 현실의 변주

 소설은 슬픈 사랑 얘기다. 예쁜 소녀 델피가 폴이라는 멋진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얘기. 물론 알맹이는 추한 괴물 P. 버크지만. 폴은 첫눈에 반한 예쁜 델피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투영했고, 그녀의 겉껍질과 함께 그것을 사랑했다. 그다지 절망적일 것 없는 이야기다. 우리의 사랑도 대부분 이런 모습 아니겠어? 그래서 모든 추악한 사실이 밝혀졌을 때 사랑이 더 이상 사랑일 수 없다는 건 좋아. 빌어먹을. 정신 나간 희망은 애초에 품지도 않았으니까. 그런데 요는 그가 두 개로 쪼개진 각각의 그녀를 인정할 생각이 요만큼도 없었다는 거다. 폴은 격노와 비탄에 빠져 소리친다. ‘그런 괴물을 작은 델피의 두뇌에 비끄러맸다니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
스스로 자아를 버리게 하려고 혈안이 된 이곳에서 자아를 가질 수 있을까. 뭔가에 접속하지 않고서. Muse, ‘Plug in baby’ 뮤직비디오.

 버크는 폴의 사랑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그것이 지탱하던 희미한 자아의 부스러기가 모조리 산산조각 나는 순간에 죽었다. 그래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았을 거야. 이런 비참한 꼴이 사랑이라니. 예쁜 소녀가 겉껍질이고 추한 괴물이 알맹이라는 걸 알았다면, 사랑은 못해도 인정은 해야지. 암울한 현실에 불편함이라도, 얄팍한 사랑에 죄책감이라도 느껴야지. 그러나 폴은 뻔뻔하고 지혜롭게도 GTX에 입사해 추상적인 악과 열심히 싸웠다. 그래 평생 잘 먹고 잘살라지. 이 거지같은 사랑 얘기 잊으면 된다. 그런데 이런 사랑이 가득한 세상을 생각하니 절망이 찾아온다.

 왜냐면 이건 막장 디스토피아에 대한 기발한 상상이 아니다. 소설은 현실과 무섭도록 닮은 변주의 거울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개성의 시대라 했었다. 아니 실은 시대와 상관없이 본모습을 당당히 드러내는 여자들은 있어왔다. 누가 인정하든 안하든 그들은 개성을 가진 인간들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TV 화면에는 짧은 교복 치마를 입은 예쁘장한 소녀들이 불특정다수의 선택을 기다리며 도열해있다. 이런 이미지는 해롭고 진부하다고 옛날 옛적에 쓰레기통에 처박은 거 아니었어? 게다가 프로필을 찾아보면 더 이상 교복 같은 거 안 입어도 되는 성인 여자들도 섞여 있고. 현실에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기꺼이 그녀들처럼 되고 싶은 진짜 미성년 소녀들이 잔뜩 있다.


 지긋지긋하다. 대체 누가 이런 질서를 되돌리는 걸까? 무대에 선 그녀들은 델피 같은 인형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꿈을 가진 살아있는 인간이다. 하지만 그녀들의 꿈은 굴욕적인 방식과 수동적인 여성성을 통해서만 성취된다. 사회는 정형화된 꿈을 강요하고, 수많은 소녀들은 저 화려한 무대에 선망, 희망, 사랑, 열망을 투영한다. 끝없이 허상을 만들고 거기에 맞출 것을 은근히 강요하고 그 질서로 돈을 버는 세력이 강건한데다 사람들은 또 그런 놀음에 매번 열광한다. 홀로그램 보컬로이드 소녀의 콘서트에서 야광봉을 흔들며 울고불고 하는 일본인들을 우린 은연중에 멸시한다. 하지만 우리가 좇는 꿈이, 우리가 하는 사랑이 도대체 무엇에서 우월하다 자부하지?

 버석버석 말라비틀어진 영혼이 넘쳐나는 여기를 봐. 앞 다투어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자존감을 가지라 말해.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어. 이렇게나 화려한 거리에서 자기를 사랑하라니. 변변찮은 무기도 없이 투쟁을 하라니. 번쩍번쩍한 이미지들과 돈들이 가득한 유령도시에 사는 하층민 소녀가 어느 날 달콤한 제안을 받는다면, 어렵고 힘들게 자기를 사랑할 것 없이 그냥 캐비닛에 들어가고 말지 않겠어? 먼 미래의 얘기가 아냐. 이미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는 캐비닛은 차고 넘치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행복을 공급하는 전극을 꽂고 있어. 스스로 자아를 버리게 하려고 혈안이 된 이곳, 사람의 영혼을 폐허로 만들 준비가 된 이곳에서 우리 자아를 가질 수 있을까? 뭔가에 접속하지 않고서.

 비너스라는 이름의 전시회에 걸린 수많은 그림들과 조각들을 지나친다. 오랜 시간 여자의 맨몸은 비너스만이 허락되었고, 그 이름은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미의 정답을 만들어 예술을 하고 장사를 한 유구한 역사. 뚱뚱한 여자를 비너스라 부르는 빌렌도르프에서 태어났어야 했다는 우스갯소리를 떠올리며 생각한다. 불량품 취급 받고 폐기된 얼마나 많은 자아들이 방랑했을까? 악마 같은 웃음이 세상을 메우고 있다. 탐욕스러운 사랑만이 가득하다. 이윽고 나는 전시회의 끝에서 버크가 있는 어두운 나락으로 추락하는 나의 자아를 목격한다.
캐비닛은 이미 다양한 형태로 차고 넘치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행복을 공급하는 전극을 꽂고 있다. 일본 보컬로이드 소녀 하츠네미쿠 콘서트.
 
▲제발로 지옥에 들어간 그녀, 비난할 수 없어

 내 장난감은 내가 주는 것에 지쳐갈 때 나의 적들을 무참히 박살내버리지
 My plug in baby crucifies my enemies when I'm tired of giving
 내 장난감은 아직도 깨지지 않은 유치한 현실 속에서 사는 데 질려버렸어
 My plug in baby in unbroken virgin realities is tired of living
 난 너의 사랑을 보았지만 나의 연인은 가버렸고 난 계속 괴로워하지
 I've seen your love but mine is gone and I've been trouble
 - Muse, ‘Plug in baby’

 폴이 우악스런 손길로 전극을 끊어버리자 버크는 죽어가며 저만치 쓰러진 델피를 바라본다. 버크가 정말로 사랑한 것은 델피였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인간은 날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아름다움을 갈망한다. 운명일까? 아름다움은 대체 뭘까? 모르겠다. 단지 한 가지 사실만이 분명하다. 이토록 처절히 갈망하는 아름다움은 내 것이 아니라는 것. 지금의 미와 추에 관한 논법들은 모두 어떤 방향에서는 누군가를 찌르게 되는 칼이다. 그럼 인간은 아름다움을 향유하고 사랑하는 자격조차 박탈인가? 맞아. 안타깝지만 거의 모두 자격 박탈이야. 갈라테이아가 행복했을 리 없다. 델피가 되는 것이 해방일 리가 없다. 질서 있는 지옥일 뿐이야.

 그런데 제 발로 지옥으로 걸어 들어간 그녀를 도저히 비난할 수가 없다. 끔찍하다. 거짓말은 오래전에 탄로 났다. 그러나 한 발짝 앞으로 내디디면 힘이 센 누군가가 더 크게 한 발짝 회귀한다. 그리곤 체념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날선 증오를 비굴한 사랑으로 바꾸어 영혼을 파는 짓거리를 그만 둬야 한다. 노예 혹은 죽음을 택하게 하는 추악한 미의 성을 부숴야 한다. 끊어진 전극들, 피가 흐르는 구멍 난 몸뚱이를 부여잡고 황폐한 도시를 헤매며 중얼댄다. 난 당신들이 제시하는 미래에 더 이상 접속하지 않을 거야. 모든 적들을 다 때려 부수리라. 추한 그대로의 자아를 세우리라. 그리고 이제 네 사랑을 잊을 차례야.
김연우 <조선대 국문과 3년, 인문학공간 소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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