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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고전을 만나다]최명란 ‘아우슈비츠 이후’ & 윌리엄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선의 얼굴을 한 이중성
박혜진
기사 게재일 : 2018-12-03 06:05:02
▲ 샤일록과 외동딸 제시카.
 아우슈비츠를 다녀온
 이후에도 나는 밥을 먹었다
 깡마른 육체의 무더기를 떠올리면서도
 횟집을 서성이며
 생선의 살을 파먹었고
 서로를 갉아먹는 쇠와 쇠 사이의
 녹 같은 연애를 했다
 역사와 정치와 사랑과 관계없이
 이 지상엔 사람이 없다
 하늘엔 해도 없다 달도 없다
 모든 신앙도 장난이다
- 최명란 ‘아우슈비츠 이후’
 
▲법치주의의 맹점

 ‘사람에 의한 지배’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를 근간으로 하는 법치주의. 법치는 민주주의와 함께 절대왕정의 전횡에 반발해 일어난 근대 시민국가의 기본 이념이다. 이로써, 인간은 힘이 아닌 보편성을 기준으로 자신의 행위에 의한 처우를 예측 가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법이 일반적이며 추상적인 개념으로 존재하는데 반해 인간의 삶은 개별적이며 구체적이다. 법의 적용가능성 속에는 따라서 항상, 어떤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주 아감벤은 법을 집행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주권자가 법의 예외를 받는 상황을 만들어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하는 사태를 목격한 후 ‘호모 사케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호모 사케르’는 권력이 스스로를 작동시키고 유지해가는 메커니즘이다.

 호모 사케르(Homo Sacer)의 기원은 고대 로마어로 ‘법적 권리를 박탈당한 자, 사회로부터 배제된 자, 따라서 어떠한 시민적 권리도 주장할 수 없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호모 사케르’로 규정된 개인 혹은 무리는 생물학적으로 죽임당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회, 정치, 교육, 문화의 맥락에서 배제되었으며 정치적 영향력도, 법적으로 보호받는 경제적 활동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심지어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다. 잔인하다고“ 언제 어디서나 호모 사케르는 존재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앙갚음이 정의였던 고대 국가에서 노예와 검투사, 전쟁포로들이 그러했으며 종교가 지배한 중세는 같은 기독교 내에도 이단이, 그리고 시대가 어수선할 적마다 특정 무리의 여인을 희생 제물로 삼는 마녀사냥이 존재했었다. 2차 세계대전,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서 죽어간 400만 명의 유대인도 ‘호모 사케르’였다. 자칫했으면 그저 선박 사고로 묻힐 뻔한 세월호도, 비만 오면 해마다 잠기지만 대책은 없다는 수해지구도,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모두가 호모 사케르다. 그러나 법을 집행하는 주권은 눈 깜짝하지 않는다. 도리어 주권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자와 보호를 받지 못하는 예외적 상태를 나누는 힘이 자신에게 있음을 통해 무소불휘의 힘을 드러낸다. 자신의 휘하에 있는 무리의 정체성을 규정하기위해서라도, 권력 혹은 권력자는 호모 사케르들이 필요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은 이러한 권력과 법의 맹점에 저항하는 인간, 유대인 샤일록의 고군분투를 보여준다.
 
▲유럽 안의 호모 사케르, 유대인

 그는 나를 모욕했소 내 일을 수없이 훼방 놓으며 내 실패를 비웃고 내 성공을 조롱했소, 내 민족을 멸시하고 내 영업을 방해하고 친구들을 이간하고 원수를 선동했소, 왜냐고? 내가 유대인이라서! 유대인은 눈이 없소? 유대인은 손이 없소? 오장육부도 없고 형체도 없소? 감각도 감성도 열정도 없소? 먹는 게 다르오? 흉기에 다치지도 않소? 같은 병에 걸리지도 않소? 같은 처방으로 치료도 안되고? 더위도 추위도 타지 않는단 말이오? 당신들이 찔러도 우린 피가 안 나오? 간질여도 웃지 않고? 독약을 먹여도 안 죽는답니까? 부당한 짓을 당해도 복수도 못하고? 기독교가 부당한 짓을 하면 당연히 우리도 그들처럼 해야지!!그래서 복수할 거요, 당신들이 가르쳐준 악랄함을 교훈삼아 무슨 일이 있어도 뼈에 사무치는 교훈을 남겨줄 거요.
- ‘베니스의 상인’ 중 샤일록의 대사
 
 셰익스피어가 극작가로 이름을 떨쳤던 16세기, 유럽인의 유대인 핍박과 차별은 세계대전 전후와 다르지 않았다. 유대인은 ‘게토’라 불리는 보호구역에서 살아야했으며 외출할 때는 유대인임을 나타내는 붉은 모자를 써야했다. 유대인은 부동산을 소유할 수도 없고 마땅한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다. 그들이 살기위해 발견한 블루 오션이 은행업 즉 고리대금업이었던 셈이다. 유럽법이 규정한 예외자 호모 사케르로써 그들이 의지할 것은 ‘돈’뿐이었다. 베니스를 노략질하러오는 해적들로부터 재산을 지키기 위해 돈으로 이슬람 용병을 산 베니스인처럼, 베니스의 유대인은 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돈을 모았다.

 그러나 베니스인은, 다르게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두고, 자신만의 해법을 찾은 유대인에게 다시 기독교의 규범을 적용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당시 교회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활동을 불로소득이라 하여 금지했다. ‘베니스의 상인’ 첫 시작에서 베니스 청년 안토니오가 고리대금업으로 살아가는 유대 노인 샤일록에게 침을 뱉는 이유다. 그러나 안토니오와 바사니오, 포셔 등 베니스인의 주요 수입원은 자본(돈)을 근간으로 하는 중개무역이었다. 베니스인은 귀족과 평민 모두 상업에 종사했으며 베네치아공화국의 화폐인 더카트(Ducat)가 유럽과 이슬람을 잇는 교역에서 700년 동안 공식화폐로 쓰일 만큼 베니스는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였다. 중개무역이 무엇이던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물건이 필요할지를 알아 이익을 챙기는 것이 중개무역이다. 이곳에서 싸게 산 물건을 저곳에 가서 팔아 수십 배의 폭리를 취하는 것이 성공한 상인의 논리였다. 때로는 이익을 위해 매점매석이 행해지는 곳, 상인의 세계. 이렇듯 직업적 입장에서는 철저한 자본의 논리에 귀속돼 살아가는 베니스인이 돈으로 돈을 불리는 유대인은 신앙과 불경을 들어 단죄한다. 약속한 날짜대로 빚을 갚지 않으면 계약서대로 살1파운드를 베겠다는 샤일록의 분노와 법정에서의 포효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포샤의 판결.
 
▲샤일록의 패배

 당연히 재판의 결과는 참혹하다. 원고였던 샤일록은 피고가 되었다. 그에게는 자국민인 베니스인을 살해하려한 죄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기독교로 개종하라는 판결이 내려진다. 빚을 갚지 못한 안토니오에게 자비를 베풀 수는 없겠느냐며 재판관(변장한 포샤)이 샤일록에게 간청하던 ‘자비’는 베니스인을 위한 자비일 뿐 샤일록에게는 내려지지 않았다. 샤일록이라는 벌거벗겨진 생명, 그리고 안토니오의 배 3척이 돌아온다는 소식과 함께 바사니오와 안토니오 포샤의 미래는 연두빛으로 막을 내린다.

 신분이 엄혹하던 엘리자베스1세 치하의 영국에서 문재를 떨친, 그럼에도 여전히 귀족에게 마땅한 경의를 표해야했던 평민 셰익스피어의 유대인에 대한 감정은 어땠을까.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수전노 샤일록의 모습은 유럽인의 머릿속에 존재한 유대인의 전형이다. 그럼에도 극중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말은 유대인의 삶이 얼마나 곤궁했는지를 보여주는 일말의 진실이다. 나는 셰익스피어가 교묘하게 용감했다고 믿는다.
 
▲2019년의 호모 사케르

 몸을 위한 삶과 정신과 영혼을 위한 삶이 철저하게 괴리된 베니스인과 21세기 현대인의 모습은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샤일록이 살아갔듯 우리 또한 언제 그리될지 모르는 ‘잠정적 호모 사케르’로 살아간다. 종종 찾아드는 알 수 없는 불안과 뒤쳐질 수 없다는, 뒤쳐져서는 안 된다는 집념은 동전의 양면이 아니던가.

 1948년 이스라엘은 옛 가나안 땅인 지금의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이스라엘을 재건하고 독립을 선포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2000년의 디아스포라를 청산하고 영토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유대인과 다른 종교를 가진 팔레스타인인은 이제 새로운 호모 사케르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오늘날 법을 집행하는 주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국민인가, 국가인가. 국가가 법을 집행하는 주권자라면 현재의 주권은 누구를 보호하려 하는가. 그리하여 제도 밖으로 밀려나는 호모 사케르는 누구인가.
박혜진 <문예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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