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전라도닷컴’

 “오메! 뭔 이런 잡지가 다 있다냐?”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은 그러했다. 그동안 봐 온 잡지들과는 사뭇 다른 뭔가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우선 따옴표 안에 들어있는 생생한 전라도 입말이 눈에 걸린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무장무장 `촌스럽다’는 느낌을 받는다.

 전라도 골골샅샅 오래된 마을들의 풍경, 논과 밭에서 허리를 굽혀 일하는 흙투성이들, 갯벌에 엎드려 조개를 캐내고 해초를 따는 아낙들, 오일장 한켠에 난전을 펴고 쭈그려 앉은 할매들의 주름진 얼굴로 가득하다.

 

 위대한 전라도 할매할배들이 주인공

 그렇다. `전라도닷컴’은 화려하고 세련된 도시 말고 소박하고 촌스러운 시골을 담아낸다.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풍정, 천하절경 따위의 구경거리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시근한 땀 냄새가 확 풍겨나는 노동의 현장과 그 속에서 오고가는 순정한 사람들의 정겹고도 진한 입담들을 촘촘하게 기록한다.

 모름지기 매체란 성공한 사람들, 모두가 우러러 보고 부러워해야 할 1%의 이야기를 상품으로 팔아야 하거늘…. `전라도닷컴’은 언제나 99% 평범한 사람들의 삶속에 담긴 고만고만한 이야기들을 소중하게 여긴다.

 권력과 돈, 분야별 전문가들의 기록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결코 후세에 물려줄 온전한 역사가 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만 성공한 인생이 되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매체에 기록되어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면? 그건 임금 한 사람을 하늘처럼 모시고 소수 권력자들이 대를 이어 군림하며 떵떵 거리던 봉건시대와 다를 게 없지 않나. 개명천지 민주국가라면 의당 천차만별 직업을 가진 만백성이 모두 자긍심을 갖고 고루 행복하고, 마침내 역사의 주인공으로 기억되어야 마땅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리하여 `전라도닷컴’은 파란과 굴곡의 시대를 꿋꿋하게 이겨낸 위대한 전라도 할매할배들이 주인공이다. 그 분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 진진한 인생철학을 오롯이 기록하자면 단어 하나도 훼손하지 않고 받아 적는다. 펄펄 살아있는 전라도말을 18년 째 기록하고 있는 이유다.

 흥미로운 건 독자들의 반응이다. 전라도가 고향이 아닌 분들도 좋아한다. 전라도 이야기를 배타적인 지역성으로 싫어하기보다는 “영락없이 우리 어머니”라거나 “경상도말도 비슷하다”거나 하며 공감한다. 또 전라도 어르신들의 삶과 시골 마을 공동체의 정경에서 저마다의 두고 온 부모님과 고향을 떠올린다.

 출신 지역이 무슨 상관이람. 순정한 사람들의 꾸밈없이 진실한 이야기는 지역을 초월해 두루두루 소통된다. 전쟁 같은 세상에 따숩고 아름다운 온기를 주고 인간존엄의 향기를 퍼트린다. 경상도사람 서울시장 박원순, 충청도사람 판화가 이철수, 제주도사람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 씨 등도 전라도의 소박한 잡지를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하며 후원하는 까닭이다.

 

 “참 요상한 책이네. 순전히 전라도말로 써불었네.”

 도서출판 `전라도닷컴’이 묶어 낸 단행본 `오지게 사는 촌놈’(서재환 지음, 2003)의 책장을 넘기면 책 한 권이 온통 전라도말 덩어리임을 알게 된다.

 광양 진상면에서 3대가 오순도순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월간 전라도닷컴’에 `농부네’라는 이름으로 다달이 연재해오던 서재환씨의 산문집이다. 전라도닷컴이 배출한 또 한명의 작가는 전북 임실군 진뫼마을 명예이장 김도수씨다. 섬진강 상류인 두메산골이자 강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는 우연히 인터넷 전라도닷컴에 공모한 글이 뽑히면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평범한 회사원인 그는 어린시절 추억과 고향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매달 구수한 전라북도 입말로 풀어냈다. `섬진강 푸른물에 징·검·다·리’(2004)와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2015)라는 두 권의 책을 펴냈다.

 팔도 곳곳 어느 지역이든 마찬가지다. 저마다 발 딛고 사는 지역의 사람과 문화를 널리 알리고 소통하며 나중엔 역사가 되는 지역책, 지역잡지가 필요하다.

 순 전라도말로 된 책, 농사꾼과 갯일 하는 할매들의 말씀, 오백년 묵은 당산나무를 품고 사는 마을의 가치를 누가 기록할 것인가. 지혜의 원천, 문화의 근간인 출판을 오로지 자본과 시장에만 맡겨둘 순 없는 이유다. 돈벌이가 되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공동체의 건강성을 위해 필요한가를 생각한다. 후대에 대물림할 역사로서 가치가 있는가를 따지는 것이 지역출판이다.

 1980년 광주항쟁 당시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저항하다 쓰러졌던 곳을 찾아 글과 그림으로 엮어 낸 `오월꽃 피고지는 자리’(2006), 세월호 참사 이후 진신을 인양하고 세상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만들자는 시민운동에 뛰어든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 100명의 사연을 담은 `사람꽃 피다’(2016) 등 두 권의 책이 좋은 사례다.

 

 전라도를 넘어서는 보편타당한 이야기

 지난 2000년 인터넷 사이트로 출발, 2002년부터 월간지를 펴내고 도서출판 사업을 해온 `전라도닷컴’의 지향은 한결같다.

 <높은 데보다 낮은 데를 주목할 것/ 화려한 것보다는 소박한 것을 찬미할 것/ 책상머리가 아니라 현장을 찾아갈 것/ 그 자신의 삶이 도서관이고 박물관인 노인들의 삶을 존중할 것/ 순 전라도말을 귀하게 받자올 것/ 개발보다 보존의 편에 설 것/ 인간과 생태계 전체의 온생명의 목소리를 동등하게 받아들일 것/ 장애인 여성 어린이 등 소수자들의 의견에 귀 기울일 것/ 이 땅의 이른바 `또라이들’의 대변인이 될 것/ 들에서 바다에서 일하는 이들의 삶을 으뜸으로 받들 것/ 전라도 안에 취재의 근거를 두되 반드시 전라도를 넘어서 보편타당한 이야기를 할 것/ 단지 박제된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오래된 미래를 이야기할 것>

 `전라도닷컴’의 취재 및 제작 기준이자 기자들의 다짐이다.

 돈과 권력의 기록이 아니기에 살림살이는 늘 팍팍하다. 잡지에 실렸다고 다량으로 구매해줄 할매도 없다. 광고를 약속하고 기관이나 단체, 기업을 홍보한 적도 없다. 책과 잡지의 생존은 오로지 `눈 밝고 맘 따순 독자’들에게 있다.

 지난 2007년 11월 후원사가 끊기면서 폐간 위기에 처했을 때 일이다. 당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향토잡지 전라도닷컴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글을 기고하면서 구독캠페인을 벌였다. 광주 지역의 화가들은 전시회를 열어 그림 판 돈을 잡지기금으로 보내왔다. 전국적인 구독과 모금운동으로 전라도닷컴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전라도닷컴뿐이랴. 팔도 곳곳의 지역책들에게 `눈 밝고 맘 따순’ 독자들의 응원이 절실하다. `2017제주한국지역도서전’을 통해 지역의 가치를 지키는 방방곡곡 작은 책들이 큰 힘을 얻길 바라본다. 지역출판인들이 책을 만드는 일의 기쁨과 보람을 나누고 용기를 얻는 자리가 되길 희망한다.

황풍년<전라도닷컴 발행인 겸 편집장>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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