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지인 듯 싶은 길이다. 헌데 고도계는 내내 400언저리를 가리키고 있는 땅 장수.

 신광사(新光寺)는 장수군 천천면 비룡리 성수산(1059m) 자락에 깊숙이 들어앉은 절집. 신라 흥덕왕 830년에 무염(無染)국사가 창건하였다는 고찰이다.

 저 멀리 앞으로는 덕유산 뒤로는 성수산, 그리고 굽이굽이 이어진 산봉우리들이 꽃잎처럼 오무려 안고 있는 것이 꼭 연꽃 봉우리 속에 들어앉은 것 같은 명당자리라 하였다.

 

성수산 점판암을 편으로 떠서 장만한 돌조각

 

 그 절집의 대웅전(전북유형문화재 제113호) 지붕이 특이하게도 점판암(粘板岩)을 얇고 넓적하게 편을 뜬 돌조각을 이어붙인 너새지붕이다.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 너새지붕을 올린 유일무이한 곳이다.

 깊은 그릇 속에 잠긴 듯 눈이 잘 녹지 않은 이곳에서 무겁게 쌓인 눈 때문에 대웅전 지붕이 자꾸 새는 것은 부처님 모시고 사는 스님들한테는 참으로 송구스런 노릇이었을 터다. 20여 년 전 신광사 계시던 스님이 그리 고민을 했더란다. 부처님 모신 자리가 이리 누추한 꼴이니 어찌할꼬. 그런데 꿈에 성수산에 돌조각이 그득 쌓여 있는 걸 보고 옳다구나 무릎을 쳤다.

 신광마을 사람들이 다 나서서 저어 너머 성수산에 들어가 바위를 편으로 떠서 장만한 돌조각을 줄줄이 이어 날랐다. 신광사 대웅전이 너새지붕을 이고 있는 연유다.

 한서의 차가 심한 산간지대에서 가까이서 구하기 쉬운 점판암을 지붕재로 쓴 것은 묘책이다. 틈틈이 통기가 잘 되니 여름엔 시원하고, 단단하게 지붕을 누른 돌 위로 눈이 덮이면 내부 온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니 겨울엔 따뜻하다.

 머리를 한껏 뒤로 제끼고 맞배지붕의 추녀 끝을 올려다보며 뱅뱅 돈다. 들쭉날쭉 돌조각들의 선이 이어진다. 비뚤비뚤한 돌조각 끝에서 이 겨울 눈 녹은 물이 떨어졌을 낙수 자국은 가지런하지 않다. 그 비정형이 사람의 마음을 혹하게 한다.

 늘상 단정한 품새로 살아보자 하면서도 마음 한자락은 분방함에 이끌려 있는 까닭이다. 처음 만난 너새지붕은 암만 바라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매력이 있다.

 

 “똑똑함에 가려서 어두운 걸 모르더라”

 

 수년 전 이 호젓한 절에서 뵈온 주지스님이 처음 건넨 말씀을 지금도 기억한다

 “내 젊어서 수자생활할 때 높은 스님한테 질문을 받았는기라.”

 그것이 이를테면 시험문제였다 한다.

 “니 길 가는데 돈다발이 떨어져 있다. 니 어떡헐래.”

 고를 수 있는 답은 사지선다가 아니라 삼지선다.

 1. 돌아간다. 2. 밟고 간다 3. 줍는다

 “나는 그때 ‘돌아간다’ 했다.”

 그때는 돈이 무서워 보이던 때였고, 지금이라면 ‘밟고 간다’ 말하겠다 한다.

 “인자는 돈이 돈으로 안보이거든. 경계가 없어진 거라.”

 마음공부할수록 경계가 달라지더라 했다.

 그 돈 주워가고 싶은 세상사람들은 미욱한 사람들이냐 물어본다.

 “그 사람들은 세상에 일이 많아서 그런 것이고. 나는 세상에 일 없다.”

 일없이 평정한 스님한테 나는 세상에 일이 많고 원도 많고 근심도 많다 고백한다.

 “그게 사람노릇이라. 사람노릇 하려면 공부 못한다.”

 벽창우같이, 평안북도 벽동·창성 지방의 크고 억센 소처럼 미련한 듯 외고집으로 들이밀어야 공부되더라 한다.

 “깜깜하고 답답해야 깨이는 맛이 있는기라.”

 요새사람들은 똑똑함에 가려서 어두운 걸 모르더라 한다.

 웃음소리가 참 맑으시다는 치하를 구박하던 말씀.

 “그게 몹쓸 짓이다. 어디 면전에서 단소리를 하노.”

 마음에 담아두고 드러내지 않아야 그게 참된 거라고 일러주던 ‘고경(古鏡)’ 스님.

 “노상 닦아서 맑게 하라. 한시도 흐려짐 없게 살라”는 이름이라 하였다. ‘욕되다!’는 한 줄의 참회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흔한 세상살이에 죽비소리 같은 가르침이었다.

 

 삿된 것 밀어내고 선한 것 끌어당기는 인연법

 

 신광사 대웅전 정면으로 칸칸이 그려진 세 개의 귀면은 어찌보면 호랑이를 닮은 듯도 싶은데 ‘용면문(龍面文)’이다. 한결같이 파안대소. 나쁜 맘 먹고 달겨들던 사악한 잡신들이 그 ‘햇볕정책’에 오히려 갈퀴 선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개과천선 할 듯싶다.

 “우리 용님이 매력이 있으세요.”

 오늘 이 절집에 잠시 머무르고 있는 지환(知幻)스님의 말씀에 용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세상의 오욕락(五慾樂)인 재욕(財欲)·색욕(色欲)·식욕(食欲)·명예욕(名譽欲)·수면욕(睡眠欲) 그것들이 모두 허깨비 같음을 알라는 이름, 지환(知幻)이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문제를 풀어서 백 점을 맞으려고만 해요. 그 문제 풀이 자체를 내려놓을 생각을 안해요.”

 헛일에 매몰된 삶에서 벗어나라 한다.

 나를 모르고 ‘아(我)몰라’의 잠속에 빠진 사람들이 허다한 세상.

 “자는 사람은 깨우는데 자는 척하는 사람은 못깨운다고 해요. 진짜 모르는 사람은 제도할 수 있는데 모르는 척하는 사람은 제도할 수 없어요.”

 모르는 척하는 후안무치들의 면면이 줄줄이 떠오른다.

 웃음이 해맑은 비구니 스님이 가만가만 들려준 말씀은 장터에서 고샅에서 늘상 어매들이 내어놓는 그 말씀과 한가지다.

 “네가 미우면 내가 미운지 돌아봐야죠. 미움은 쌍방과실이에요. 나의 에너지가 바뀌면 그 사람의 에너지도 바뀝니다.”

 옆엣사람이 내 거울이니 내가 웃으면 저 사람도 웃을 것이라고, 삿된 것은 밀어내고 바르고 선한 것은 끌어당기는 그런 인연법으로 살아가라는 금과옥조. 돌지붕 대웅전이 있는 절집에서 쿵 하고 내려앉는 말씀을 들었다.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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