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4.18.’

 토방에 ‘쎄멘’을 새로 올린 그날이렷다!

 굳이 기록해 두었다. 기념할 만한 거사의 완성으로 여겼을 흐뭇한 마음도 거기 한데 실렸다.

 신소남(80·순창 적성면 석산리 강경마을) 할매 댁. ‘1973’이란 연도에서 새마을운동 휘몰아치던 시절 시골마을 곳곳 파고들었던 ‘쎄멘’의 위력도 문득 돌아보게 되니, 그 기록엔 이 집의 역사만 아니라 시대도 슬쩍 들어와 담겼다. 숫자 옆에 희미해진 글자는 아마도 ‘壽’와 ‘福’. ‘수복’의 기원 덧붙여져서 숫자는 객관적 사실의 기록에서 나아간다. 집에 깃든 애틋한 소망까지를 품는다.

 “여그는 산중이라 먹고살 것이 없응게 포도시 살았어.”

 김병수(81·순창 적성면 석산리 강경마을) 할아버지가 걸어온 생은 ‘포도시’라는 한마디로 함축된다.

 “땅이 없응게 그전에는 뭐이든 키왔어. 소 키우고 맴생이 키우고 닭 키우고 벌도 키우고 누에도 키우고….”

 그 모든 것들을 키운 것은 오로지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서.

 “소도 닭도 뭣도 키울 적에 사료를 며칟날 얼매나 사오고 얼매나 믹였는지 거시기 헐라고 써둔 거여, 잊어부릴까비.”

 필부가 헤쳐나온 생애의 한 굽이가 거기 벽에 남은 짤막한 기록에도 새겨져 있다.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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