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 없으면 안될 것처럼 지니고 다니는 것들이 있다.

 면허증 신분증 명함 카드 지갑 그리고 휴대폰.

 주머니 속을 채운 것들의 목록이다.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이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

 (윤동주, ‘호주머니’ 중)

 가난한 사람의 호주머니를 갑북갑북 채워주고 싶었던 이의 마음이 읽어지는 시다.

 오늘 박연순(78·임실 덕치면 천담리 구담마을) 할매의 주머니 속엔 고추 대여섯 개가 갑북갑북하다.

 집집이 대문께부터 마당까지 흔전만전 널린 게 고추이건만, 어느 밭귀퉁이에 시들빼들 달려 있는 고추가 행여 버려질까 살뜰히 거둔 손길이다.

 “나는 무시 숭구고 와. 오늘 처서여.”

 할매의 달력에서 처서는 그런 날이다.

 다만 고추 몇 개로 주머니를 가득 채울 수 있는 할매처럼, 다 비우고 새로 채운다면 무엇을 넣어 볼까, 이 주머니에.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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