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몇 시야?”

 손목에 시계를 차고 있으면서도 늘 시간을 묻던 친구가 있었다. 친구의 시계는 ‘지금은 몇 시 몇 분입니다’라고 소리를 내어 말해주는 시계였다. 시각장애인인 친구는 자신이 시계를 보고 있다는 걸 주위에 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원’ 대표 김형수씨는 그래서 ‘브래들리 타임피스’라는 시계를 만들었다. 해군장교로 복무중 폭파사고로 실명했으나 1년 만에 패럴림픽 수영 종목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따며 재기한 미국인 브래들리 스나이더의 이름을 땄다.

 시침과 분침 대신 작은 구슬 두 개가 돌아가는 이 시계는 손끝으로 구슬을 만져 그 위치로 시간을 알 수 있다. 이 시계를 비시각장애인이 착용한다면 ‘시간을 만지면서’, 오직 만지는 감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경계를 무너뜨리게 되는 것이 그의 바람이기도 하다. 보는 것이 불편한 이들을 위한, 이른바 ‘이타적 디자인’의 시계인 것이다.

 ‘타인을 배려하며 타인의 행복과 복리의 증가’를 염두에 두는 ‘이타적’ 시계를 오일 장터에서 만났다. 조봉금(68)·박문규(74) 부부가 꾸리는 곡성장 그릇전 ‘광명그릇’.

 “아무리 핸드폰 시상이어도 호랑(호주머니)에서 핸드폰 내느니 여기 쳐다보는 것이 핀허고 빨라.”

 시계 하나를 점방 외벽에 높이 걸어두고 그 앞으로는 둥근 테이블과 의자 몇 개를 두었다. 난로 위 주전자에는 물이 끓고 있고, 뜨거운 차가 무료제공되는 자리.

 “할매들이 앙거서 쉬시다가 요 시계 쳐다보고 언능 인나서 차 타러 가셔. 버스가 떠불문 한 시간만에도 오고 그란께 시간을 놓치문 안되야.“

 냄비 하나를 사면서 흥정도 없이 부르는 값을 그대로 내미는 단골 강덕님(83·곡성읍) 할매의 보퉁이에 행주 몇 장을 찡개 넣어주는 조봉금 할매.

 “우리는 깎을 값 안 불러. 받을 값만 불러.”

 “요 점방 쥔네들이 참 호인이여. 넘다 호인이어서 부자는 안되겄어.”
 부자 못되겄다는 소리에 하하 웃는 쥔장 할매.

 “내 손으로 내 복을 쌓고 살문 되제. 안 그요?”

 군산 대야장 이종정(72) 할아버지의 그릇 가게 앞에도 커다란 시계가 걸려 있다.

 “장에 오는 분들이 다 주렁주렁 짐이 많애요. 손이 모지래요. 손에 시계를 차고 있어도 목에 핸드폰을 걸고 있어도 시간 보는 것이 어려워요.”

 버스 시간을 맞춰야 하는 할매 할배들한테 요긴한 시계이다.

 가게 안 난로에서 굽고 있는 군고구마는 손님용.

 “오일장이란 것이 없이 살아도 더불어 살자고 모이는 장이요.”

 더불어 사는 오일장임을 증거하는 공용시계. 쳐다보기에 참으로 좋았다. 시침이 ‘12’를 가리키고 있으니 때는 열두 시. 아까 보아둔 장터짜장집으로 가야만 하는 시각인 것이다.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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