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리 우물 동무
낯선 사람이 기웃거리니 제 밥값을 하노라고 웡웡 짖는 ‘흰둥이’.
“그러마소 그러마소”
점순 할매 타이름에 이내 짖는 소리가 잦아든다.
“그리하지 마오”라고 점잖게 이르는 그 말을 알아듣기까지 점순할매는 흰둥이한테 얼마나 많은 마음을 건넸을까.
흰둥이 제 집 앞에 앉고, 동네 우물 곁 나무숲 아래엔 할매 둘이 나란히 앉는다. 오래된 우물을 여전히 찾는 두 사람이다.
“나는 빗지락 들고 우물 씻고 닦는 사람”이라는 숙이 할매.
“요 할매는 우물 쓰는 사람. 밥그륵 하나도 숟가락 하나도 들고 나와. 걸레 하나 갖고 와서 빨고 버선 두 짝 갖고 나와서 빨고.”
우물 애호가인 방점순 할매. 시방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한 3년 전부터는 정신줄을 어디다 놓아 버렸는지 사리분별도 흐려져 버렸다. 할매와 해로하는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오늘 낮에도 가보니 영감 할멈 둘이 접시에다 밥 퍼 놓고 물 한 그륵 놓고 상추 이파리를 뜯어먹고 있어. ‘아 왜 이렇게 먹고 있어’ 내가 속이 상해서 생된장을 얼른 퍼다 준게 맛나다 맛나다 하고 먹어.”
세상 사는 법을 다 잊어버린 동무.
“글도 인정은 그대로여. 뭐 먹을 것이라도 생기먼 자기 입에 안 넣고 우리집으로 갖고 달려 와.”
강숙 할매는 함흥에서 피난 나온 피난민이었다. 꽃 같은 각시가 전쟁통에 남편을 잃고 네 살짜리 아들 하나를 데리고 남한으로 넘어와 어찌어찌 곡절 끝에 이 골짝으로 흘러들었다.
“굶고 앉아 있는데 이 사람이 아랫집 산다고 험서 고구마를 쪄서 갖고 왔어. 끼니 때가 되문 꼭 두 개씩을 갖다 주드라고. 우리 아들하고 둘이 그 고구마 먹음서 사흘을 살았어. 그 고구마를 갖다 줘서 내가 살았어.”
뒤를 돌아보아도 앞을 보아도 천지가 캄캄막막하던 때였다.
“나중에 보니 이 집이도 그때 참 어려웠어. 넘의 식구 입을 챙길 형편이 아니었어.”
남아서 나눈 게 아니라 부족한데 나누어 준 그 인정을 잊지 않는다.
“나는 이 사람 공을 평생 갚아도 못 다 갚아.”
전쟁이 나기 전까지는 병원장집 딸로 혼인해서 호의호식하던 세상 물정 모르는 새각시였다.
“돈벌 궁리가 막막해. 근디 이 집 아저씨가 순창장에를 간다고 그려. 나 좀 데꼬 가라고 했지. 여기까지 끌고 온 옷가지라도 팔아야겄다고 보따리에 챙겼지. 밍크오바에 가죽잠바에 그런 고급옷을 한 보따리 싸서 들으니께 무거워. 근디 이 집 아저씨가 보따리에다 밀빵을 혀서 질끈 메더니만 암 말도 않고 앞장을 서. 장에 옷을 펴놓고 있으니 어떤 여자가 들여다봐. 다 산다고, 돈은 도란장에 준다고 그래. 그러라고 헐 판인디 이 집 아저씨가 옆에서 어서 집에 가자고 서둘러. 걸어갈라문 밤 되야부린다고. 그래서 도로 싸서 짊어지고 왔지. 그 담에 가 보니께 난리가 났어. 곗돈을 다 갖고 도망갔다고. 그 여자가 ‘밤밥’을 묵은 거여. 아이고 이 집 아저씨 덕에 물견 외상으로 안 줬지. 내가 글케 덕을 봤어.”
세상 물정 모르고 갈팡질팡하는 굽이굽이를 함께 건너 준 이웃이었다.
“그때는 내가 이 할머니를 의지했지. 인제 이 할머니가 나 따라댕겨.”
내가 저 사람에게 건넨 것은 물에 쓴 듯 지우고, 벼랑 끝에 서 있던 그이에게 손을 내밀어준 그 사흘의 공은 돌에 새긴 듯 간직하고 산다.
“아직 덜 갚았지. 죽을 때까지도 다 못 갚지.”
한 길 사람의 속으로 마중와 희망의 ‘마중물’을 품어준 그 사람에게 이제는 그이가 마중물이다.
연못이 말라서 물 한 방울이 절박할 때, 물고기들이 서로를 침(거품)으로 적셔주는 것을 상유이말(相濡以沫)이라 한다 했다.
‘나의 슬픔을 함께 지고 가는 사람’ 이 이웃해 사는 오래된 우물가. 오늘 또한 청정하다.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최성욱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