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산막마을 할매들
물 한 방울 물 한 줄기, 물과 더불어<3>
어떤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적 받은 성적표의 행동발달사항에 그런 글귀가 써져 있었더란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언제 어디서나 ‘주전자에 물이 떨어지지 않게 잘 떠다 놓는 사람’이 되려 하였다.
품이 들어가는 일, 생색도 안 나는 일, 하지만 그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는 일.
마치 굳은 맹세나 한 것처럼 그런 일을 거듭하는 사이 그 아이는 목마를 때 꼭 그 자리에 있는 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시방 어느 시암가에서 길어올리는 물 한 방울을, 어느 텃밭을 어느 들녘을 적실 물 한 줄기를, 생각한다.
메마른 자리를 희망으로 바꾸는 물의 행로에 깃든 몸공들이 거룩하다.
<편집자 주>
“요리 와. 여기 걸터서 앙거. 여가 시원헌 자리여. 섬진강 바람이 올라온 자리여. 존 공기 좀 쐬고 가.”
임실 강진면 문방리 산막마을에 들어선 자, 이 고급진 의전을 피하지 못하리.
신선마냥 지팽이 짚은 할매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은 산막마을회관 앞이다.
이 마을의 올 여름 화제는 ‘상수도’.
“작년 9월에 들왔어. 그 놈 갖고 추석 쇠았제. 전에는 물 없어서 개울물만 묵고 살았어. 이 동네가 우물을 파도 물이 안 나와. 아홉 간딘가를 파고 그만 팠어.”
섬진강 줄기가 퍼렇게 굽어보이는데 물을 눈 앞에 두고도 물 없는 동네로 살다가 처음 수도꼭지에서 물이 퐁퐁 나오는 여름을 맞은 것이다.
“전에는 군에서 면에서 질어다 줘. 큰 물통 갖다놓고 채와주문 거그서 질어다 묵어. 우리는 흐른 물 못 묵고 썩은 물 묵고 산다 우리까정 그랬어.”
물 귀한 마을의 아낙으로 사는 제일 큰 고생은 겨울빨래였다.
개울은 꽝꽝 얼어 있기 십상이었다.
“방맹이로 얼음장 깨고 얼음물에서 빨아. 고무장갑도 없고 손이 땡땡 얼어. 그럴 직에 신랑이 꺼멍솥에 불 때서 통에다 떠서 갖다주문 그 놈으로 녹여감서 적셔감서 빨아.”
그리 따숩던 김순덕(83) 할매 ‘신랑’은 오십 살에 깨 폴러 가셔불었다 한다.
“우리 신랑이 나헌티 잘히 준 것이 그거여. 물 디어다 준 거.”
2017년도에 처음으로 세탁기를 돌려본 마을.
“그동안은 모셔놓고 쳐다보고만 살았제. 미느리들이 옴서 시집이 이런 중을 모르고 사와. 전에 물 안 나올 때는 미느리들 못 오게 혀. 멀라고 옹삭시럽게 혀. 여그는 밥해묵기도 소지허기도 빨래허기도 모든 것이 옹삭시롸. 인자 조깨 핀허게 되았는디 갈 때가 돌아오네.”
시집 온 이래로 물 고생을 함께 한 동지들.
“전에 개울에서 이어다 묵을 때는 가뭄에 물이 몰를 때가 있어. 그럴 직에는 잠 안자고 지킴서 물을 모타. 차례대로 물 한 바가치썩을 퍼내. 두 바가치를 못 퍼. 뒷사람 생각허문 염치가 있은게.”
산막마을 할매들한테 염치란 물 두 바가치를 욕심내지 않는 것. 물 한 바가치에도 염치를 지켜온 할매들이니 옹기종기 대여섯 가구 모여사는 마을에 큰소리 날 일이 없다.
“나는 넘한티 나쁜 소리 안혀. 나는 힘든 일 있어도 얼굴에 안 써. 넘이 알게 안혀.”
그리 살아온 김순덕 할매가 깨밭 매고 와서 흙 묻은 꺼멍고무신을 씻고 계신다.
“이거이 농민신발이여. 씻거 노문 금방 몰르고 찔그고.”
고무신 씻는 할매의 손가락 절반이 하얗다.
“나는 장갑을 못쪄. 만날 손구락을 오그리고 풀 뽑은께 오그린 반틈은 희고 빛에다 내논 반틈은 꺼매.”
“우리는 물 밑에 항시 그륵을 받쳐. 이러고 말강물을 그냥은 못 내뿔어.”
‘물 쓰데끼’ 물을 써 보지 못한 할매.
“열아홉 살에 와갖고 물 애끼는 습관이 평생 뱄어. 전에는 물항아리 한나 까뜩 채와노문 안심이고 행복이여.”
그때, 물항아리 가득 채우는 행복은 얼마나 가까이 있었던 것인가.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최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