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고 가서 이윽고 만나다

3대를 잇고 4대로 전승되는 중

 여느 시골아이들이 그렇듯 새참거리로 술주전자 심부름을 하면서 주전자 뚜껑에 따라 입을 대보았던 것이 생애 첫막걸리의 기억. 술 익는 냄새는 늘 친근한 일상이었다.

 한동안 도시에 나가살던 그가 다시 고향살이를 한 지는 스무 해째.

 “회사생활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돌아왔어요. 인건비가 안 나오니까 일꾼들을 들일 수도 없고 어머니랑 둘이 힘들게 꾸리셨죠. ‘인자 니 살림이지 내 살림 아니다’ 항시 그 말씀을 하셨는데 당신 생전에 ‘제가 대를 이을랍니다’ 그 말을 못한 아쉬움이 늘 제 맘에 남아있어요. 우리 아들 철호가 이제 4대째 대물림을 할 판인데 나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더라고요. ‘인자 니 살림이지 내 살림 아니다’는 말을. 이제사 아버지 맘을 알 것도 같아요.”

 독아지 늘어선 마당은 살림집 같은 소박한 모습이다. 가족이 하는 일이니 규모도 소박할밖에. 작업실이 안채와 마주보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낭도막걸리의 전성기는 할아버지대에서였다.

 “화정면은 물론 화양면과 고흥에까지 우리 술이 갔으니까요.”

 양조장 통폐합이나 탁주공급구역 제한, 양곡관리법 시대의 밀가루막걸리 등등 시대에 얽힌 막걸림의 부침과 변천은 낭도막걸리에도 새겨져 있다.

낭도 둘레길에서 바라본 바다. 신비롭고 장엄한 주상절리도 볼 수 있다.

 ‘낭도젖샘생막걸리’라는 상표가 붙은 라벨. 성분 표시를 본다. ‘정제수, 쌀(국내산), 소맥분(수입산), 입국, 곡자, 종국, 효모, 아스파탐, 젖산’. 특별하달 것은 없다. ‘값싼’이란 막걸리의 미덕을 지키는 선에서 맛의 최선을 기했다.

 “쌀이 부족했던 시대에는 밀가루막걸리를 권장했잖아요. 막걸리를 둘러싼 시대 상황이나 입맛의 변천에 따라 밀가루로도 하고 옥수수로도 하고, 다시 쌀로 하다 밀가루로 하다 이제 쌀과 밀 각각 50%로 바꾼 지가 2년입니다. 밀가루 술도 맛있어요. 노인들은 그 술을 좋아해요. 근디 밀이 많으면 술이 좀 거매요. 맛은 좋은디 술색깔이 왜 이렇냐는 소비자들의 의견에 색깔과 술맛을 다 잡으려고 고민을 거듭한 결과가 지금의 술입니다.”

 쌀에 밀막걸리의 구수함과 걸죽함이 더해진 막걸리는 약간 묵직하면서도 부드럽고 목넘김이 좋다.

“독에서 빚은 술은 맛부터 차이가 나요. 시간이 많이 걸려 발효되면서 숙성이 잘 되죠.”

 낭도막걸리가 내세우는 또 하나의 장점은 물.

 “술맛이 물에서 와요. 막걸리는 무엇보다 물이 좋아야죠.”

 이 섬의 심층지하수로 만드는 낭도막걸리. 3년 전부터 상표에 ‘젖샘’을 넣었다.

 “이웃인 사도에 있는 젖샘바위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요. 옛날에 애기 낳은 산모가 치성드리고 그 물을 묵으문 젖이 많이 난다고 그래서 젖샘이예요.”

 낭도젖샘막걸리를 마신 소회를 임연태 시인은 이렇게 풀어냈다.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잦아드는 파도 끝에 앉은 사내들/ 빈 젖 물고 자라난 탓에/ 유난히 배고픔을 참지 못한다는 사내들/ 밥 삼아 들이켜는 술/ 이름만 들어도 어머니 젖내가 느껴지는 술// 이름만 들어도 저절로/ 배가 불러지는 술>( ‘젖샘막걸리’ 중)

손맛 좋은 안주인 박선숙 씨가 차려내는 밥상겸 술상.

 젖샘에 깃든 이야기를 상표에 담아 알리고 싶은 그 마음처럼, 강창훈씨는 지키고 싶은 게 많다. 섬의 전통이자 무형의 자산인 당제도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앞장서 치르며 맥을 잇고 있다. 그때 꼭 올려지는 것, 특별히 더 정성껏 빚은 막걸리다. 틈틈이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며 낭도 곳곳을 알리는 일도 하고 있다.
 
안주인의 손맛 배인 밥상과 어우러져

 낭도막걸리 도가의 또 하나의 자랑은 함께 꾸리는 ‘100년도가’ 식당의 밥상이다.

 손맛 좋은 안주인 박선숙(60)씨가 막걸리와 어울리는 전라도상을 차려낸다. 제철 나물들이며 전라도식 배추김치며 갓김치며 올리고 뱃일 겸하는 강창훈씨가 잡아오는 우럭 민어 같은 생선구이도 올린다. 이 도가의 막걸리로 만든 식초로 무쳐낸 서대회도 인기. 최불암의 ‘한국인의 밥상’에도 출연, 막걸리식초를 넣은 각종 음식을 차려냈다.

낭도의 어매들. 한평생을 일로 이어온 세월이 그 몸과 걸음에 새겨졌다

 이웃인 홍명자(75) 할매가 감이 가득 든 양동이 하나 들고 마실 왔다.

 “나만 묵으문 쓰가니. 여그는 감나무 없응께.”

 오가는 인정. 감을 비워낸 양동이에 박선숙씨는 답례로 막걸리 세 병을 담아 건넨다.

 “유재가 술도가라 술꾼 되겄어, 하하. 이거는 인자 아저씨랑 둘이 묵어야제.”

 할배 김옥성(77)씨가 마당 바닥에 앉아 감을 반들반들 닦고 있다가 할매가 들고 온 막걸리를 반긴다.

 “나는 술을 들고는 못가, 무거와서. 근디 묵고는 가, 하하.”

 “먹을만 혀. 요 집 막걸리가.”

낭도주조장으로 접어드는 골목.

 점잖은 인사치레인가 싶었는데 할배는 “○○막걸리는 우리는 못 묵겄습디다. 너무 달아. 근디 요 술은 내 입에 맞아”라고 취향을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밭일 하고 뱃일 할라문 막걸리가 좋은 벗이제. 특히 뱃일은 더 되아. 그럴 직에 막걸리를 한두 잔 묵으문 배가 후울떡 인나. 기운도 나고. 그 기운으로 또 일하는 거여.”

 오랜 세월 섬사람들과 함께 하며 쉴참의 위로가 되고 다시 일할 흥이 되어온 낭도막걸리. 생산량도 적고 육지로 보내기도 어려워 낭도나 백야도손두부집 아니면 그 맛 보기 어렵다.


 “인자 다리가 생기문 택배도 가능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강창훈씨. 낭도 근처에 수많은 다리들이 세워지고 있다.

 고흥과 적금도를 잇는 팔영대교, 적금도와 낭도를 잇는 낭도대교, 낭도와 둔병도를 잇는 둔병대교, 둔병도와 조발도를 잇는 조발대교, 조발도와 여수를 잇는 화양대교 등등.

 술맛이야 변하지 않으련만, 배 타고 가서 먹는 맛을 더하려면 지금이 좋겠다.
글=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최성욱 <다큐감독>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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