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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Finnish Journalist Rauli Virtanen<1>
An Account of Gwangju’s 5.18 Democratic Uprising:
광주 5·18 민주항쟁에 대한 이야기
핀란드 저널리스트 라울리 비르타넨<1>
설윤희
기사 게재일 : 2019-12-04 06:05:01
▲ Virtanen covers Tiananmen Square Protests at the end of May 1989. 1989년 5월말의 천안문 광장 시위를 취재하는 비르타넨.
 Rauli Virtanen’s career as a Finnish journalist is that of a seasoned veteran. Having globe-trotted all 194 independent countries, he has witnessed and reported upon history’s greatest conflicts and wars. His works include those of the Vietnam War, the Gulf wars, and the wars in Afghanistan and Syria. Pertinently, among his works is also South Korea’s Democratic Uprising in Gwangju, which took place beginning on May 18, 1980.

 The event is commonly called 5.18 (o-il-pal, 오일팔), a popular uprising by citizens calling for democracy. The assassination of president Park Chung-Hee abruptly terminated his 18-year authoritarian rule, leaving social and political voids in South Korea. However, power was seized by Army Major General Chun Doo-Hwan via a military coup d’etat, after which he declared martial law.

 May of 1980 was the beginning of a new semester for Chonnam National University’s professors and students. They fought in opposition to Chun’s martial junta and called for pro-democratic reforms. Gwangju quickly became a hotbed of political opposition to the dictatorship through which Chun exercised his fierce militaristic suppression. Casualties were estimated to be 4,369 with 154 killed, 74 missing, and 4,141 wounded. 5.18 is now remembered as an event that engendered the national voice for democracy across Korea and Asia.

 Recently, Mr. Virtanen visited Gwangju for the first time since the uprising. He described the city as “unrecognizable” to him. The Gwangju News had the pleasure of hearing about his career and his personal account of 5.18.
 
 Gwangju News (GN): Could you tell us a little about how you got started in journalism?
 
 Rauli Virtanen (Virtanen): It was quite easy for me. At school, my Finnish teacher told me I was good at expressing myself. So he encouraged me to get involved in journalism. I was already interested in the world, global affairs, and foreign countries. I was very lucky to go to university in the city of Tampere to study a combination of journalism, mass communications, and international politics. I was working night shifts for a local newspaper and got my first assignment there. I soon left by cargo ship for my first trip to Brazil and then traveled for ten months in South, Central, and North America, backpacking and sending stories and reports to provincial newspapers in Finland. I got so excited about this job that I quit university after two years. So that was basically the start. Now I have reported for almost 50 years.
 
 GN: During the democratic uprising from May 18 to 27, there was a blockade that prevented communications into and out of Gwangju. How were you able to be present at the scene?
 
 Virtanen: So that is a funny story. On Sunday the 25th, I was coming by car from Seoul with Eddie Adams, a famous photographer known for his work from the Vietnam War and Associated Press. At the time, Eddie was older than me, as I was quite young. We came to the roadblock around Gwangju and the military told us, “No, no one can pass through Gwangju.” But then Eddie told the young officer, “Listen, I was here during the Korean War when you were a little boy, and I gave you chewing gum - the first chewing gum ever in your life!” So the officer said, “Yes. Please, you can go.” So that was how we managed to enter.

 Once we arrived, we were able to go around and interview the students near the provincial government building, which had been barricaded. I remember a student surnamed Kim who told me, “We have two choices, either to surrender and give up, or die.” He told me that he “will never surrender.” I also remember students using cars as ambulances to bring the wounded to the hospitals, as many were injured by bullets. You would hear from the loudspeakers calls for blood donations.
Interviewed by Seol Yun-Hee

Photographs courtesy of Rauli Virtanen
 
 THE INTERVIEWER
 Seol Yun-Hee recently returned to South Korea after studying abroad in the States. She is enjoying connecting with her Korean culture and is exploring her passion for writing.
 
 *This article was originally published in Gwangju News September 2019 issue.
 Gwangju News is the first public English monthly magazine in Korea, first published in 2001 by Gwangju International Center. Each monthly issue covers local and regional issues, with a focus on the stories and activities of the international residents and communities. Read our magazine online at: www.gwangjunewsgic.com

-<원문 해석>-
Virtanen (right) meets Nelson Mandela in South Africa the spring of 1990, to interview him soon after his release from prison. 1990년의 봄, 남아프리카에서 석방 직후의 넬슨 만델라를 만나는 비르타넨(오른쪽).

 핀란드 저널리스트인 라울리 비르타넨의 경력은 바로 경험많은 노련한 베테랑의 그것이다. 그는 194개의 독립국가를 모두 여행하면서 역사상 최대의 갈등과 전쟁들을 목격하고 보도했다. 그는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그리고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의 내전을 보도했다. 특히, 그의 보도들 중에는 1980년 5월18일에 시작된 한국의 광주 민주화 운동도 포함되어 있다.

 이 사건은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들의 항쟁인 5·18로 보통 불리운다.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로 인해 18년간의 권위주의 통치가 갑자기 끝나게 되었고 대한민국에는 사회적, 정치적 공백이 남게 되었다. 하지만 육군 소장인 전두환이 군사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했고, 이후 계엄령을 선포했다.

 1980년의 5월은 전남대학교의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새 학기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전두환의 계엄군에 맞서 싸웠고, 친민주적 개혁을 요구했다. 광주는 빠르게 전두환의 독재정권과 군국주의 탄압에 대한 정치적 저항의 온상이 되었다.

 사상자는 사망자 154명, 실종자 74명, 그리고 부상자 4141명으로 총 4369명으로 추산되었다. 5·18은 이제 한국과 아시아 국가들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전국가적 목소리를 불러일으킨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비르타넨 씨는 민주화 운동 이후 처음으로 최근에 광주를 방문했다. 그는 광주를 “알아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광주 뉴스는 그의 경력과 5·18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광주뉴스 (GN): 어떻게 저널리즘을 시작하셨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라울리 비르타넨(비르타넨): 저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었어요. 학교를 다닐 때, 핀란드어 선생님께서 제가 제 생각을 잘 표현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그는 제게 저널리즘에 종사해 보라고 하셨죠. 전 이미 세계, 국제 문제, 그리고 외국에 관심이 많았어요. 저는 운 좋게 탐페레에 있는 대학에서 저널리즘, 매스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국제 정치를 배울 수 있었어요. 제가 첫 과제를 받게 되었을 때는 제가 지역 신문사에서 야간 근무를 했을 때였어요. 저는 곧 화물선을 타고 브라질로 떠나 10개월 동안 아메리카 전역을 배낭 여행하며 핀란드 지방 신문사에 기삿거리와 보도를 보냈습니다. 이 직업에 너무 신나서 저는 2년 후에 다니던 대학을 그만뒀어요. 그렇게 시작이 됐죠. 이제 보도를 한 지 50년이 다 되어갑니다.
Military on watch. 경계 감시 중인 군대.
 
 GN: 민주항쟁이 발생한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를 드나드는 모든 통신이 막혀있었습니다 어떻게 현장에 참석할 수 있었나요?
 
 비르타넨: 이게 좀 재밌는 이야깁니다. 일요일이였던 25일에 저는 베트남 전쟁과 관련 신문에서 기자활동으로 알려진 유명한 사진 작가 에디 애덤스와 함께 광주로 향하는 차를 타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에디는 저보다 나이가 많았고, 전 아주 어렸죠. 광주로 향하는 도로를 막고 있는 바리케이드에 도착하자 군인들이 말하더군요. “안됩니다, 아무도 광주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에디는 젊은 장교에게 이렇게 말했죠. “이봐요, 난 당신이 어린 아이였을 때 한국전쟁 동안 한국에 와 있었어요. 그리고 그때 당신에게 껌을 줬죠. 당신이 생애 처음 먹어본 껌 말이에요!” 이에 장교는 “네, 들어가셔도 됩니다.”라고 했어요. 우린 이렇게 겨우 광주에 진입할 수 있게 되었어요. 도착하자, 바리케이드가 쳐진 도청 주변에 모인 학생들을 인터뷰할 수 있었습니다. 김씨 성의 학생이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에겐 항복과 포기, 혹은 죽음,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습니다.” 그는 나에게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이 승용차를 응급차로 이용해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을 목격한 기억도 있습니다. 확성기에서는 헌혈을 요구하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글=설윤희

사진=라울리 비르타넨

번역=이유니 (광주국제교류센터 자원활동가)
 
 기자
 설윤 희씨는 최근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한국 문화와 교류하는 것을 즐기고 있으며, 열정적으로 글쓰기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글은 광주뉴스 2019년 9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광주뉴스는 광주국제교류센터가 2001년에 처음 발행한 대한민국 최초의 영문 대중월간지입니다. 매월 발행되는 각 호에는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지역민의 활동과 지역사회의 이야기 및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도 잡지를 볼 수 있습니다. (www.gwangjunewsg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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