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노고단길에서 만난 숲의 친구들

▲ 개다래(위)와 함박꽃나무.
 그리움이 참을 수 없게 밀려든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다.

 일정하지 않은 근무로 피로감이 누적되었으나 밀려든 그리움은 만나야만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래서 늦은 밤에 준비를 한다. 컵라면을 몇 개 사고 냉장고에 잠들어 있는 쵸콜릿을 꺼내 둔다. 설레어서 쉽사리 잠이 들지 않는다. 때론 그리움이 삶의 원동력이 된다는 걸 다시 느낀다.

 

 성삼재에 도착하니 8시 50분이다.

 나무도 만나고 숲도 만나고 사람도 만나는 좋은 날이다.

 나무를 좋아하고 숲을 좋아하고, 나무와 숲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공통분모를 지닌, 별난 사람들 몇과 지리산 노고단의 지금 현재~를 만나기로 한다.

 지난 삶의 갈피에 끼워둔 퇴색된 첫사랑을 생각한들 이보다 더 좋을까~

 내게 관심을 가져준 지난 청춘들을 떠올린들 이보다 더 좋을까~

 푸른 팔을 내밀며 말간 얼굴로 맞아주는 숲의 식구들~

 나도 또한 맑은 마음으로 말간 미소로 응답한다.

 ‘참으로 그리웠고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 나무 저 나무를 만져보고 들여다보고 쓰다듬어보고 향기를 맡아보며 정말정말 느리게느리게 한 발짝씩 옮긴다. 숲과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입꼬리는 시종 올라붙는다.

 

▶곰취·호랑버들·함박꽃나무…

 

 탐방안내소에 심어진 곰취는 잎이 몇 장 남지 않았다.

 곰취인 줄 알아보는 탐방객들이 한 장 씩 뜯어 갔을까?

 잎이 어느 정도 남아 있어야 노란 꽃을 피워 곰취의 또 다른 화사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텐데…. 하기사 잎이 꽃보다 더 알려졌으니 사람 탓만은 아니다.

 붉은병꽃이 붉은 색보다 더 붉은 모습으로 맞아준다.

 그 곁에 말발도리가 하얀 색 꽃을 터트리려 준비하고 있다.

 호랑버들은 솜털 같은 씨앗을 바람에 실어 나르고 있는데 마치 눈발이 흩날리는 것 같다. 겨울날 호랑이 눈 같은, 붉은 겨울눈을 달고서 숲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던 모습은 간데없고, 피부가 민감한 사람들이 싫어하는 솜털 같은 종자를 만들어 바람에게 후손의 운명을 맡기곤 나 몰라라 한다. 탐방로 양쪽에 반질거리는 큼직한 잎과, 낭창거리지는 않으나 탐방로 쪽으로 약간 휘는 가지 끝부분과 줄기 양 옆으로, 갓난아기 주먹만 하고 목련을 닮은 하얀 꽃이, 향기까지 그득 담고 코앞에 다가온 여름이라는 계절에 한 발을 담그고 있다. 자기를 만날 생각에 전날 밤부터 뒤척이며 날이 새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온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향기를, 가지를, 몸체를 바람에 내맡기고 있다. 그 아래 한참을 머무르며 목마름을, 그리움을 해소한다. 상대가 알건 모르건 우리는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문득문득 청춘을 그리워한다. 나무들도 그럴까? 봄을 그리워할까? 겨울을 그리워할까? 계절을 앞서가며 준비하는 나무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무얼까? 모든 것에 결론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함박 웃고 있는 함박꽃나무를 만난다. 돌아 내려올 때도 여전히 반갑다. 산을 내려서면서 아쉬워한다. 아쉬움이 그리움으로 남는 것이리라.

 

 무성한 초록이파리들 사이로 가장 눈에 잘 띄는 색이 흰빛일까?

 함박꽃나무도 그렇고 말발도리도 그렇고 물참대가 그렇다. 마가목의 꽃도 가지 끝에 큼직한 우산모양인데 그 또한 흰빛이다. 다래도 그렇다. 초록색 잎사귀를 흰색 꽃으로 둔갑시키는 나무는 개다래이다. 꽃은 초록 잎사귀 겨드랑이에 작게 만들고 중매쟁이 눈에 띄지 않을까봐 노심초사하며 꾀를 쓴 것이 초록색 잎사귀를 잠시 동안 하얗고 큼직한 꽃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리라. 참으로 꾀보다.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다 보이는 개다래는 정말 크고 하얀 꽃을 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웃나무에게 신세지는 덩굴나무이면서 후손을 만드는 일에는 참으로 적극적이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커다란 흰색 꽃이 더욱더 손짓한다. 중매쟁이 곤충에게는 꿀이 그득 담긴 큰 꽃으로 보일 것이다. 성공이다.

 

 한 발짝 더 가니 계곡 사이에 노란 물결이 인다.

 반색을 하고 버선발로 내려서니 매미꽃 밭이 펼쳐져 있다.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바라본다.

 어수리랑 큰괭이밥이 어깨를 마주대고 있구나!

 참꽃마리랑 관중과 십자고사리도 이웃하여 사는구나!

 하늘말나리도 삿갓나물도 있구나~

 큰 나무들 아래 그늘진 곳에서 살아가는 풀꽃들이 너희들이구나!

 진범도 투구꽃도 큰나무인 신갈나무, 물들메나무, 당단풍나무 아래 어울려 대를 이어 살고 있구나! 철쭉도 있고 물참대도 있네. 서로를 배려하고 경계하며 살고 있구나!

 사람들과 다르지 않겠지. 서로 배려하다 경계하고, 경계하다 배려하고.ㅎ

 계곡물은 양을 불렸다 줄였다 하겠으나 주변의 초록생산자들에게 공급하는 수분량에 변동은 많지 않을 것이다. 워낙 산이 높고 넓고 깊어서 품는 물이 어마무시할터이니. 그 주변에 살아가는 많은 생명들을 풍요롭게 하면서도 자신은 조금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더 큰 풍요로 되돌아옴을 알테니까…

 

 ▶떼려야 뗄 수 없는 신갈, 철쭉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란 무엇일까?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는 3km 남짓한데 꼭 붙어사는 나무가 있으니 신갈나무와 철쭉이다.

 신갈나무의 톱니 날카로운 잎사귀를 만나면 그 옆에 꼭 보이는 나무가 철쭉이다. 둘은 땔 수 없는 사이인가보다. 그 길을 걷다보면 신갈나무 순림이 많은데 그 곳이 온통 신갈나무 아래 철쭉 그림! 이다. 소나무 숲에 진달래가 그러더니 신갈나무 숲에 철쭉이 그런가보다.

 서로 이웃하여 살아가는 나무들이 많을 터이나 오늘 만나는 이곳의 가장 친한 이웃은 진정으로 신갈나무와 철쭉인 듯하다. 초록색 신갈나무 잎사귀들을 머리에 두르고서 분홍색 꽃물결을 수줍은 듯 물들이고 있는 절친이다. 어찌 그리 다정한 절친이 되었는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터이다. 내 절친은 누구일까? 나를 절친으로 생각하는 이가 있을까? 오늘 노고단 길을 걸으면서 내 삶을 되돌아본다.

박계순<숲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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