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리마다 심었대서 도로의 이정표

▲ 동구 관내 노거서 조사 사업을 진행중인 광주생명의숲이 동구 육판리 당산나무인 시무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80년대에는 바로 앞 가운데 샘 옆 산밭(텃밭)에서 자랐지만 지금은 내지마을 마을회관 앞 옹벽에서 자라는 시무나무로 광주광역시에서 자라는 가장 큰 노거수로 보호가치가 귀중한 나무이다.

 빛고을은 연일 폭염에 갇혀 폭염경보 또는 폭염주의보가 발령 중입니다.

 ‘삼복지간(三伏之間)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속담이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말복(末伏)이 16일이었으니, 더위도 이젠 한풀 꺾이리라 기대해봅니다.

 음력 7월15일인 17일은 백중절입니다. 이 햇빛을 받아 곡식의 결실이 이뤄지면 농부들 일손이 한가해지기에 ‘흙 묻은 호미를 씻어둔다’는 호미씻기 행사도 하고, 사찰의 4대명절인 백중절(百中節), 우란분절(盂蘭盆節)법회가 열리기도 합니다.

 가을 절기가 시작되는 입추(立秋)가 지났고, 칠석(七夕)이 몰고 온 소나기도 내렸지만 도심의 열기를 피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나무그늘을 찾아갑니다.

 광주생명의숲은 2016년도에 광주광역시 관내에서 두 건의 노거수 조사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키엘(Kiehl’s) 화장품 지원사업인 소나무류(잣나무, 백송, 테에다, 대왕, 인디안로지) 노거수·마을숲 조사 사업과 동구 관내 보호수(10그루)와 노거수 조사 사업입니다.

 광주광역시 동구 관내에는 모두 10그루의 보호수가 지정돼 있습니다.

 광주광역시 5개 자치구에 77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돼 있기에 4개 자치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은 편이나, 조사 중에 만났던 육판리 내지마을 시무나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광주시내버스 52번 종점마을인 육판리(六判里) 내지(內池) 마을은 도심에서 20여분 거리이지만, 너무나도 외진 시골 마을로 산수가 좋다보니 이 마을에서 나오는 각종 채소들은 남광주시장 좌판에 올리기 전에 다 팔려나갔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크게 자라는 속성 당산나무·이정표

 

 내지마을에는 80년대까지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로 이용되었고, 오늘에는 주민들에게 한여름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는, 마을의 랜드마크 기능을 하고 있는 마을 입구 당산나무 느티나무(보호수:1982-1, 수령:약455년, 흉고:501cm, 수고:21,5m)가 있습니다. 이 노거수(老巨樹) 덕분에 내지마을의 인재(人材)들이 커왔고, 마을의 문화(文化)도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오래된 노거수는 언어(言語)입니다. 그 나무 속 결(나이테)에는 나무가 살아온 삶의 무늬인 역사가 들어있습니다.

 내지마을 가운데 샘 옆 산밭(텃밭)에서 자라는 시무나무(느릅나무과:Hemiptelea davidii Planch. 수고:18m. 흉고:180cm. 수령:약 120년 정도)는 우리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나무로, 잎 떨어지는 큰키나무이고, 암·수 한그루 나무입니다.

 꽃은 4∼5월에 피고 열매는 6월부터 익기 시작하여 엽전모양의 열매는 가을까지 달려있고, 어린 가지에는 10cm내외의 가시가 달려있기에 가시가 있는 느릅나무라는 뜻인 자유(刺楡)라고도 부릅니다.

 우리나라에는 약 1000여 종의 나무가 있고 남한만 해도 약 600∼700여 종이 자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나무 이름을 옛 조상들은 어떻게 붙였을까요? 처음 나무의 이름을 붙일 때는 그 나무가 갖는 독특한 특성에 근거를 두고, 나무마다 의미를 가진 연유에 따라 이름을 명명했습니다. 그래서 나무이름에 숫자를 붙인 나무들을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오리마다 심은 오리나무, 십리마다 심은 시무나무, 잎이 세 개로 갈라지면 세손이, 잎이 다섯 개면 오갈피, 잎이 일곱 개면 칠엽수, 여덟 개면 팔손이, 향기가 백리(百里)까지 퍼지는 백리향(百里香) 등등.

 이처럼 수를 나타내는 글자가 들어간 식물명처럼, 오리나무는 5리마다 지표로 심은 뜻이 있고, 시무나무는 십리마다 한 그루씩 심어 두어 거리의 이정표로 삼았습니다.

 시무나무는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金炳淵:1807~1863)의 풍자시에도 표현돼 있습니다.

 二十樹下三十客 / 四十村中五十食

 (시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가 / 망할 마을에서 쉰밥을 주네)

 人間豈有七十事 / 不如歸家三十食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오 / 집으로 돌아가 식은 밥을 먹는 것만 같지 않네)

 

재질 단단 배·차·가구 등 재료로

 

 시무나무는 재질이 단단하고 치밀하여 배나 차·가구·기구 등의 재료로 쓰입니다. 수레의 심장부분인 차축(車軸)의 중요한 재료로도 쓰였습니다. 박달나무를 초유(楚楡)라 하여 가장 좋은 재료로 삼았고 그 다음을 시무나무인 자유(刺楡)로 만들었습니다.

 시무나무는 크게 자라는 특징이 있기에 마을의 당산목이나 먼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이정표나무로 많이 심었습니다. 시무라는 말은 스무, 즉 스물(二十)을 뜻하기에, 시무나무를 이십리목(二十里木)이라고 부흡니다.

 마을의 시무나무는 농사의 풍흉을 알려주는 농업목 구실도 합니다. 봄철 시무나무 잎이 활짝 피면 풍년이 들고, 그렇지 못하면 흉년이 든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봄에 새로 나오는 어린 시무나무 잎은 밀가루나 쌀가루, 콩가루 등 여러 가지 가루를 묻혀서 떡으로도 만들어 먹습니다.

김세진 <광주생명의숲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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